의인 = 의로운 사람 = 올바른 사람 (시편 11편 1~2절)
창세기 6장 9절 가운데 “노아는 의인(義人)이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옳을 “의(義)”와 사람 “인(人)” 자인 “의인(義人)”이라고 번역되었습니다. 이 “의인(義人)”이 “올바른(righteous) 사람”, “의로운 사람”을 뜻합니다.
“올바른(righteous)”(찻디크)은 “옳고 바른”, “공평한”을 뜻하며, 하나님의 기준(norm)에서 벗어나지 아니하고 곧은(straight)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이 있다는 것입니다. “곧다”라는 말은 똑바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똑바로 걸으라고 말씀하셨는데 ‘저 싫어요’라고 하고 왼쪽으로 가든지 오른쪽으로 갈 때 하나님의 기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적합(conformity)인 상태여야 올바르다고 평가됩니다. 사람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다음부터 사람이 선과 악을 결정하게 되었는데, 선악의 기준이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선이라고 말씀하시면 선이고 악이라고 말씀하시면 악인데 선과 악, 의와 불의는 하나님의 기준으로 결정됩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기준을 만족시켜 올바른 자로 인정을 받았습니다.1) 어근 sdq의 의미는 ‘기준에 적합함’(conformity to a norm)입니다.2) 하나님의 기준에 적합한(conformable) 사람이 곧 올바른 사람입니다. 노아가 올발랐다는 것은 하나님의 기준에 적합한 자였던 것을 뜻합니다. “올바르다”라는 판단은 사람 기준이 아닌 하나님 기준에 의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기준에서 벗어나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던 때 노아는 하나님의 기준에 적합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노아 가족들만이 하나님의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그 밖에 사람들은 악인인 까닭에 하나님께서 심판을 결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신 때 노아의 가족들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1. “올바른 자”(의인)와 “사악한 자”(악인)는 반대입니다. 창세기 18장 23~25절에 “올바른 자를 사악한 자와 휩쓸어 가십니까? 그 성읍의 중앙 안에 올바른 50이 존재하면(suppose), 당신은 그 50을 위해 그 장소에 용서해 주지 아니하실 것입니까? 이 일처럼 행하시기에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시기에 당신께 멀리 있고 또 의인과 같이 악인과 같이 되었기가 당신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니 모든 그 땅을 재판하시는 분께서 정의를 행하지 않으실 것입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성경에 “의인”의 반대말로서는 “죄인”보다 “악인”이 사용되었는데 “올바른 자”의 반대말로서 “사악한 자”가 사용되었습니다(창 18:23-25). 이것이 언제 처음 나오느냐면 아브라함과 롯 이야기에 처음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 땅을 떠나 서쪽의 가나안 땅에서 살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갈 때 롯이 삼촌을 따라 가나안 땅에 갑니다. 롯이 잘한 일은 믿음의 사람인 아브라함과 함께한 사실이 잘한 일인데 믿음의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복된 일입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살아갈 때 목축업을 직업으로 가지고 살았습니다. 소와 양이 많게 되니까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이 싸웠습니다. 아브라함이 롯에 말하기를 ‘우리가 이제는 함께 살지 못하게 되었으니 땅을 선택하라 나는 네가 선택하는 반대쪽으로 가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롯이 동서남북을 둘러보다가 동쪽 땅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동쪽에 물과 풀이 많아서 가축들을 기르기에 적합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롯이 선택한 동쪽에는 소돔 시가 있었고 소돔 사람들은 악하였습니다. 그들은 동성연애도 하고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죽이기도 한 자들입니다. 롯은 이런 사실에는 관심을 두지 아니하고 동쪽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돔 시의 악한 모습을 보시려고 천사들과 함께 가시는데, 그 도중 아브라함의 집에 가셔서 이 일을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친구처럼 대하셨으므로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돔 시를 멸망시키실 것을 그에게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올바른 자를 사악한 자와 함께 휩쓸어 가지 아니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창세기 18장 23~25절에 “올바른 자를 사악한 자와 휩쓸어 가십니까? 그 성읍의 중앙 안에 올바른 50이 존재하면, 당신은 그 50을 위해 그 장소에 용서해 주지 아니하실 것입니까? 이 일처럼 행하시기에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시기에 당신께 멀리 있고 또 의인과 같이 악인과 같이 되었기가 당신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니 모든 그 땅을 재판하시는 분께서 정의를 행하지 않으실 것입니까?”라고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내가 소돔에서 의인 50명을 발견하면 모든 그 장소에 용서할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18:26). 그리고 아브라함이 대답하고 그가 말하였습니다(창 18:27). 창세기 18장 27~28절에 “내가 나의 주께 말하기에 기꺼이 결정하니. 혹시 의로운 자들 오십에서 다섯이 부족할 것이라면 당신은 다섯 때문에 그 성읍의 모두를 멸망시키실 것입니까”라고 아브라함이 말하였습니다. 그가 말씀하시기를, “만일 내가 거기에서 마흔다섯 명을 발견한다면 내가 멸망시킬 것이 아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18:28).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제발 그것이 나의 주께 성나지 아니할 것이고 내가 이야기하겠으니 아마 거기 30명이 발견될 것이면”이라고 하였으며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30명을 발견할 것이면 행할 것이 아니라.”라고 하셨습니다(창 18:30).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제발 그것이 나의 주께 성나지 아니할 것이고 내가 한 번만 말할 것이며 10이 거기 발견함을 받을 것이면”이라고 하고 그가 말씀하시기를 “그 10 때문에 내가 멸망시키지 아니할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18:32). 그런데 결과는 어떻습니까? 그 소돔 시에 의인 10명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께서 소돔 시를 멸망시키실 것을 결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소돔 시에 사는 롯을 함께 멸망시키지 아니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천사들을 보내셔서 롯을 소돔 시 밖으로 끌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올바르신 재판관이셔서 의인을 멸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올바르신 재판관이시기에 반드시 정의를 실행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좋아 그러지 말라고 말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악과 악한 자를 심판하여 벌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의하면 의인이 아니면 다 악인이며 중간은 없습니다. 의인이 가는 천국과 악인이 가는 지옥의 중간지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곡식이 있고 가라지가 있는 것이지 곡식과 가라지의 중간은 없습니다. 곡식은 하나님의 곳간이 거두어 들여지게 가리지는 불 속에 태워집니다.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올바르시고 똑바르신 하나님이십니다(신 32:4). 레위 사람은 주 하나님을 올바르신 분으로 찬양한 자들입니다(느 9:33). 하나님께서는 올바르십니다(스 9:15, 렘 12:1, 단 9:14, 습 3:5, 슥 9:9). 출애굽기 23장 6~9절에 “너의 빈핍한 자의 재판을 굽히지 말 것이며. 거짓말의 일로부터 멀리하며 결백한 자와 올바른 자를 죽이지 말 것이니 내가 사악한 사람(the wicked)을 옳다고 하지 아니하겠음이고. 뇌물을 취하지 아니할 것이니 눈멀게 하고 의인들의 말을 뒤틀겠음이고. 거류민을 너는 압박하지 말 것이고 너희가 그 거류민의 영혼을 알았으니 이는 너희가 이집트의 땅에서 거류민들이 되었음이고”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그 동무에게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여야 합니다(레 19:11). 거짓의 일로부터 멀리하며 올바른 자를 죽이지 말아야 합니다(출 23:7). 시편 1편 5~6절에 “사악한 자들이 그 재판 안에 일어나지 아니하겠고 죄 있는 자들이 의로운 자들의 회중 안에 그러하지 아니하겠노라. 하나님께서 의로운 자의 길을 아시고 사악한 자의 길은 멸망하리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철저히 의인과 악인을 둘로 구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둘 중에 한군데에 속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재판을 받으면서 이재명이 ‘나 죄 없어’ 말할 수 있으나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죄 없습니다’라고 변명하거나 변호하지 못합니다. 사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 때에 일어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재판 안에 일어나지 못한다는 말은 사면받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3) 사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판결을 감당하지 못합니다.4) 죄 있는 자들은 의로운 자들의 회중 안에 일어나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마지막 심판 때는 가라지가 곡식 틈 사이에 살짝 끼어 있을 수 없습니다. 가라지, 즉 죄 있는 자들은 거두어져서 불태워진다는 것입니다. 천국에는 의인들만 있는 곳이지 죄인 한 명이 끼어 있을 수 없습니다. 죄인 한 명 때문에 천국은 오염되고 천국은 천국이 더 못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정확하기에 죄인 한 사람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재판하시는 때에 악인들은 그 심판에 일어날 수 없습니다. 악인들은 의인들의 사회에서 영원히 추방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올바른 자의 길을 보호하시고 아십니다(시 1:6). “의인들의 길”은 “죄인들의 길”이나 “악인들의 길”과 반대되는 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의로운 삶을 살 때 세상은 우리를 몰라줄 수 있으며, 악인들이 더 잘나가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악마가 이 세상에서 자기의 아들들에게 이러한 것들을 준다는 것입니다. 의인의 일은 세상에서 감추어져 있고 세상 사람이 알아주지 않습니다. 의인은 고난 겪으면서 세상에서 살다가 죽고 없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세상이 의로운 자의 길을 알아주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르나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길을 아신다고 말씀하셨으므로 우리는 의로운 자의 길을 걸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의인들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아 참 잘하였다’라고 하시며 상으로 가득 안겨 주시는 것입니다. 반면에 본문은 사악한 자의 길은 결국은 멸망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세상 100년 부귀영화 누리면서 건강하게 살았지만 결국은 멸망하겠으며 결국은 영원한 지옥 불 속에 던져지리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인생길을 걸을 때 앞에 늘 갈림길, 둘로 갈라지는 길이 있으며 그것을 가리켜서 ‘갈림길’이라고 합니다. 갈림길 앞에 있을 때 오른쪽으로 갈지 왼쪽으로 갈지 선택하여야 하며 오른쪽 길은 좁고 왼쪽 길은 넓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넓은 길, 편한 길을 선택해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좁은 길, 오른쪽의 의로운 자의 길을 선택하여야 합니다. 좁은 길도 아니고 넓은 길도 아닌 중도(中道)는 존재하지 아니합니다. 넓은 길을 걸어가면 걸어갈 때는 편하지만 결국에는 지옥에 도착합니다. 의인의 길은 좁고 고생스러운 길이지만 좁은 길을 선택하여여 합니다. 우리가 좁은 길을 걸어가야만 마침내는 천국에 도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의인들과 악인들이 존재합니다. 의인들의 길은 하나님께서 아시고, 악인들의 길은 멸망합니다. 우리는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의인들의 길에 서야만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이 걸어가는 길을 아시고 지켜보십니다. 하나님께서 아시는 의인들만이 영원한 생명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알지 아니하신 자는 영원히 그와 상관없게 됩니다(마 7:23). 인생의 항로를 율법과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사는 자가 악인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다니므로 자유로운 것 같지만 암초에 걸려서 멸망합니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믿고 율법이 제시하는 길로만 걸어야 하겠습니다. “믿음”의 유무가 의인과 악인을 나누게 되는 기준이 되며, “믿음”의 유무가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습니다. 시편 1편에서 시인은 복된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을 대조하고 있는데, 인류에게 중도는 없으니 둘 중에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그 말씀에 따라 걷는, 의인들의 길을 걷는 올바르고 복된 자들이 됩시다! 2. 하나님께서 올바른 자(의인)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시편 5편 11~12절에 “당신께 피난하는 모든 자가 기뻐하게 만드시고 당신은 그들에 가리시고 당신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이 기뻐 뛰놀리니. 이유는 야훼여, 당신은 올바른(righteous) 자에게 복을 주실 것이고 방패처럼 호의로 당신이 그를 에워싸실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7편 11~13절에 “하나님께서는 올바른 재판하는 분이시고 모든 날 안에 분개하시는(has indignation) 신(God)이시라. 그가 그의 칼을 날카롭게 하시며 그의 활을 구부리셨으며 준비하셨노라. 그가 죽음의 물품들을 준비하셨고 그 화살들을 불타는 것들에 하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올바른 재판관인 분이시고(시 7:11), 모든 날 안에 분개하는 신(God)이십니다. 우리의 하나님 야훼께서는 올바르십니다(신 32:4, 스 9:15, 느 9:33). 그는 올바른 자에 그 올바름처럼 주시기 위해 재판하십니다(왕상 8:32). 하나님께서 의인은 의롭다고, 악인은 악하다고 재판하여 주실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재판하여 주실 것을 기다립니다(삼상 24:12-15). 다윗은 그의 올바름과 같이 재판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시 7:8). 하나님께서는 올바르신 재판관이 되십니다(시 7:11). 올바르신 재판관이신 하나님께서는 올바르게 판단하시고 재판하십니다. 권선징악의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인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시편 11편 1절에 “야훼 안에 내가 피난하였다”라고 신뢰를 말합니다. 시편 11편은 일반적으로 ‘신뢰의 시’로 여겨집니다.5) 11편에 “올바른”이라는 용어가 3번 반복되어 중요성을 나타냅니다.6) 시인은 하나님께 피난하였으며 피난하는 장소를 “피난처”라고 하는데 시인은 하나님을 그의 피난처로 생각하고 하나님 안에 피난한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피난하였는데 하나님보다 안전한 곳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 안에 피난하다”라는 말은 실제 장소 안에 피난한 뜻이 아니라 위험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영적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7) 하나님의 백성은 어려움이 닥칠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립니다.8) 시편 11편 1절 끝에 “도망하라, 너희의 산, 새.”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시인의 조언자들은 시인에게 빨리 “도망하세요”라고 충고하였습니다. 시인은 하나님 안에 피난하였는데 조언자들은 “도망하라”라고 말합니다. 악인이 가하는 육체적 위협과 조언자가 가하는 영적 위협이 있습니다. 조언자들은 시인의 영혼에 “도망하라”라고 권고하며 명령하였습니다.9) 그에게 위기와 맞서지 않고 산에서 도망가라는 유혹이 있었습니다.10) 원어에 의하면 조사가 없고 “산”인데 “산으로”가 아니라 “산에서”입니다. 유혹은 선의를 가진 친구의 조언이라는 형태로 찾아왔을 것입니다.11) 나라에서 하나님이 말씀에 어긋나는 일을 하라고 명령하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 계좌를 다 동결시키겠소. 국가의 명령에 불복종한 까닭에 계좌 사용 못 하게 할 것이오.’라고 하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마트에 가서 결제할 수 없게 되면 마트에서 물건을 사지 못하게 되며, 어디 가서 결제하려고 해도 그것 다 막혀 있습니다. 이미 현금이 없는 사회가 되어서 현금으로 아무것도 사고팔 수 없는데 그 전자 결제를 나라에서 막아 놓으면 쌀도 사지 못해 굶어 죽게 됩니다. 그러면 주위 사람들이 ‘당신 그러지 마시오, 어찌하여 고집 피우시오? 나라에서 하라고 하는 대로 하면 되지 왜 안 하는 것이오?’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굶어 죽는 한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든지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나라에서 하라는 대로 하시오. 그러지 않으면 감옥에 집어넣는다고 하지 않소. 왜 감옥에 들어가려고 합니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위에 사람이 ‘당신의 신앙으로부터 도망하라’라고 우리에게 말해도, 우리는 ‘나는 주 안에 피난하였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시편 11편 2절에 “보라 사악한 자들이 화살을 줄에다 준비하였음이니 어둠 안에서 마음이 똑바른 자들에게 쏘기 위해서라.”라고 하였습니다. 악인들의 특성은 악인들은 항상 어떻게 하면 마음이 똑바른 자들에게, 하나님을 잘 믿는 자들에게 쏘아서 해롭게 만들까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어디서 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다는 것입니까? “어둠 안에서”입니다. 밝은 곳에서 쏘기 위해 준비하면 그 겨누고 있는 것이 다 보이잖습니까? 그러므로 악인들은 어둠 안에서 은밀하게 쏘기 위해 겨냥하고 있습니다. 악인의 특성은 악인은 밝은 곳에서 공격하지 않고 뒤에서 공격합니다. 그래서 그 공격이 더 치명적이라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친하게 지내자’라고 말하면서 뒤에서는 전쟁을 준비합니다. 김일성이 그랬습니다. 평화조약 맺자면서 안 보이는 땅속에 굴을 파서 전쟁을 준비했습니다. 이런 모습이 악인들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악인들은 안 보이는 곳에서 의인을 해치려고 화살을 겨누고 있습니다. 이것이 악마의 특성입니다. 악마는 사람을 지옥에 끌고 가기 위해서 우는 사자처럼 돌아다닙니다. 그런데 악마가 사람에게 나타날 때는 머리에 뿔 두 개 달고 나타납니까? 그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악마가 나타날 때는 천사를 가장해서 천사의 가면을 쓰고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악마가 천사인 줄로 알고 악마에게 속아 넘어갑니다. 드러나는 모습은 천사의 모습인데 가면 뒤에는 악마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에게 “거짓 예언자들을 삼가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은 겉에는 양의 옷을 입고 있어서 양처럼 보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믿으면 복 받고 건강해진다는 번영 복음, 가짜 복음의 전달자들, 그런 목사들이 겉으로 볼 때는 양의 옷을 입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노략질하는 이리, 즉 늑대입니다. 거기 속아서 넘어가면 늑대 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악마의 특성은 드러나는 모습과 감추어져 있는 모습이 다른 것입니다. 민주당에는 민주가 없습니다. 민주를 외치지만 민주가 없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내거는 표어와 속으로 의도하고 있는 목표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인권 변호사들은 사악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며 열심히 죄인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 죄인들이 변호 받고 풀려나면 길가다가 사람들을 칼로 찔러 죽이면 그 억울하게 칼에 찔려서 죽은 사람의 인권은 누가 보호해 줄 것입니까? 인권 변호사들의 논리가 엉터리라는 것입니다. 죄인들의 인권을 보호하여야 한다며 ‘사형제도 없애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을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음으로 갚으라고 말씀합니다. 사형제도를 없애니 살인자들이 그 복무 기간을 바치고 밖으로 나온 후 또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여자들을 강제로 섹스하고 죽인 사람들이 전자 발찌 달고 밖에 나오나 그 전자 발찌를 전기톱으로 잘라내고 다른 여자들을 강간하는 것입니다. 악인들이 인권 보호받고 죽지 않고 감옥에서 나와서 돌아다니게 되니, 제2의 피해자, 제3의 피해자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피해를 겪은 피해자들의 인권은 어떻게 보상되어야 하는가요? 피해자가 되어 죽거나 순결을 잃게 된 자들이 다시 회복될 수 있습니까? 사악한 자들이 겉으로 내거는 표어는 좋으나 실상은 사악한 것입니다. ‘차별금지법’이라는 법의 이름은 좋으나 실상은 들여다보면 사악합니다. 이렇게 악인들은 겉모습과 실상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대표적인 집단이 천주교입니다. 보육원 사업 하잖습니까? 사람들이 천주교를 좋은 종교로 생각하여도 그 실상은 어떻습니까? 고아들의 약점을 잡아서 평생 그 사람을 이용하여 먹는다는 것입니다. 모범택시 2라는 드라마에 이런 내용이 잘 나오고 있습니다. 천주교 사제가 어떤 아이를 키웠는데 그 아이에게 나쁜 짓을 시켰으며 양심에 가책이 되어서 ‘이 일을 하기 싫어요’라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옛날에 잘못한 일을 세상에 다 알릴 것이야’라고 협박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잘못한 일이 드러나기 싫으므로 시키는 대로 하여야만 합니다. 과거의 잘못과 실수를 약점으로 잡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예배 시간에 하나님께 참회하는 기도를 하잖습니까?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께 용서를 구합니다. 하지만 천주교는 죄를 범하면 신부를 찾아간 후 죄를 고해성사합니다. 그러면 신부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을 죄를 용서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살다가 그 사람이 천주교를 떠나거나 다른 종교 믿으려고 하면 그는 자신이 고해성사한 내용으로 협박을 당해 발목이 잡히는 것입니다. 과거의 죄가 드러나지 않으려고 천주교를 떠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평화를 주장할지라도 그 겉과 속이 완전히 다릅니다. 이것이 바로 악마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사악한 자들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설마 사람이 그 정도까지 사악하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은 소설이고 영화에 나오고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호르몬 중에 테스토스테론, 도파민, 엔도르핀, 아드레날린 등이 있고, 엔도르핀은 자연 진통 물질로 신경전달물질을 차단하는 역할을 합니다. 아드레날린이 혈류에 분비되면 몸은 빨리 위협에 반응할 준비를 하며, 아드레날린은 산소와 포도당 공급을 뇌와 근육에 촉진하는 일을 합니다. 혈당의 수준을 높이고 지방 세포의 지질을 붕괴시키는 일을 시작합니다. 아드레노크롬은 신체 내에서 아드레날린의 산화로 생성되는 화합물로 국소적인 지혈작용에 아드레노크롬이 관여한다고 합니다.12) 아드레노크롬은 체외에서 화학적으로 얻을 방법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이것은 사람의 신체 내에서만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13) 세계 각 나라 의원, 기업가, 할리우드 스타, 교황 등 초(超)엘리트들이 전 세계에서 아동을 납치해, 인신 제사, 고문, 학대, 성 착취를 자행하고 죽기 직전 뇌에서 분비되는 아드레노크롬을 두개골에 구멍 뚫어 추출해, 그 아드레노크롬을 자기 신체에 주입하여 황홀감을 느낀다고 합니다.14) 블랙 아이 클럽(Black Eye Club)은 아드레노크롬 투여를 중단했을 때 부작용이자 투여의 증거라고 합니다.15) 아동 시체 처리와 관련된 것은 맥도날드에서 인육이 발견된 것을 엮어 전 세계에서 소비하고 있다고 합니다.16) 큰 두려움이 임한 때 사람이 그 두려움을 정신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 몸에서 그런 호르몬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것일수록 효과가 좋다며 어린아이들을 납치한다는 것인데 미국에 가면 디즈니랜드가 있는데 여기서 많은 아이가 유괴를 당합니다. 아이들을 납치하여 고문하고 죽임으로써 아드레노크롬을 뽑아냅니다. 이 땅 위에 이런 사악한 사람들이 인생을 잘 먹고 잘살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이 도망한다면 화살의 사정거리 밖으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17) 1절 후반부터 계속된 2절의 말하는 자는 모사들이라고 추정됩니다. 시인의 친구들이 볼 때 그의 적들은 너무나 잔인하며 음흉하기 때문에 이들을 피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조언합니다. 사악한 자들은 사냥꾼 혹은 무장 군인의 영상으로 묘사되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화살을 쏘기 위해 줄 위에 그 화살을 준비한 것입니다. 사악한 원수들은 화살을 쏘려고 화살을 줄 위에다 준비하였습니다.18) 만약 어떠한 악행도 저지르지 아니한 시인이 단호히 버티고 서 있다면 그는 숨어 있는 사악한 자들의 공격을 받게 되기 매우 쉬울 것입니다. 어둠 안에서 쏘는 것은 비밀스럽게 목표를 달성하려는 의도입니다. 이것은 시인이 처하여 있는 위기를 시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입니다.19) 시인은 사악한 원수들의 화살에 맞아서 죽을 위기에 처하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악인들의 팔을 움직이지 못하게 잡고 계십니다.20) 1) 송병현, 『엑스포지멘터리 창세기』 (서울: Exposimentary, 2010), 181. 2) Alister E. Mcgrath, 『하나님의 칭의론』, 한성진 역 (CLC, 2008), 27. 3) 김정우, 『시편 주석 Ⅰ』 (서울: 총신대학교출판부, 2005), 158. 4) 김정우, 『시편 주석 Ⅰ』, 159. 5) Nancy L. deClaissé-Walford, Rolf A. Jacobson and Beth LaNeel Tanner, 『NICOT 시편』, NICOT 성경주석, 강대이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9), 188. 6) Jacobson 외 2명, 『NICOT 시편』, 189. 7) Jacobson 외 2명, 『NICOT 시편』, 191. 8) 김서택, 『시편 강해 1』 (서울: 도서출판 이레서원, 2018), 135. 9) Jacobson 외 2명, 『NICOT 시편』, 191. 10) Peter C. Craigie, 『시편 1-50』, WBC 성경주석 19, 손석태 역 (서울: 솔로몬, 2008), 174. 11) Craigie, 『시편 1-50』, WBC 성경주석, 174. 12) https://namu.wiki/w/%EC%95%84%EB%93%9C%EB%A0%88%EB%85%B8%ED%81%AC%EB%A1%AC 13) 위 사이트. 14) 위 사이트. 15) 위 사이트. 16) 위 사이트. 17) Craigie, 『시편 1-50』, WBC 성경주석, 175. 18) 김정우, 『시편 주석 Ⅰ』, 335. 19) Craigie, 『시편 1-50』, WBC 성경주석, 175. 20) 김서택, 『시편 강해 1』, 138. |
출처: 생명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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