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자료실/추석날 설교

[스크랩] 추석감사예배설교-감사가 넘치는 삶으로(마20:1-16)

에반젤(복음) 2021. 9. 18. 10:20
감사가 넘치는 삶으로
마태복음 20:1-16


우리나라 최고의 명절인 추석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올해도 추석은 간소하게 지내야 할 것 같습니다.
정부는 추석 방역지침을 발표하면서 가급적 고향방문을 자제해줄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예방접종을 마친 사람이나 진단검사 후 최소한 인원만 고향 방문을 하고,
고향에서도 가급적 오래 머물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차례도 최대한 간소하게 지내고,
성묘도 실내봉안시설 같은 경우 1일 총원제와 예약제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가족모임의 경우 예방접종을 받은 사람을 포함하여 최대 8인까지만 모일 수 있지만 다중이용시설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예년에는 명절에 고속도로 통행료가 없었지만 이번 추석에는 통행료를 징수하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모임을 자제해달라는 뜻인 줄 압니다.
코로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하여 추석 방역지침을 발표하고 모임을 자제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추석의 의미를 잊어서는 안 될 줄 압니다.
추석은 그냥 놀고 쉬는 날이 아니라 감사하는 절기라는 의미입니다.


한가위는 신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지내는 명절입니다.
금년 한해 좋은 날씨를 주셔서 풍년이 들게 하심을 감사하고 또 내년의 풍작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농경민족의 최대소원은 풍작을 이루는 일이기에 한가위를 맞이하여 신에게 감사하고,
그 감사한 마음으로 이웃과 교제가 이루어지고 그것이 즐거운 놀이로 발전하여 추석에는 여러 가지 놀이를 하면서 즐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한가위는 가족 간의 화목을 다지고 하나 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농사일에 바빴던 사람들이 추석을 기해 한자리에 만나 어른들에게 감사하고 조상들의 은혜를 생각하며 그간의 애경사를 이야기하며 서로 위로하고 축하하는 자리이며 어려운 일을 의논하는 자리입니다.
오늘날 이런 좋은 풍습들이 다 사라지고 너무 이기적인 사회풍토가 심화되어 안타깝기도 합니다.
금년추석은 더군다나 감염병으로 인해 더 모일 수 없는 형편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은혜, 가족과 친척들의 은혜만은 잊지 않는 귀한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본문의 비유는 포도원에서 일할 일군들을 들여보내고 그들에게 품삯을 주는 내용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아침 6시에 인력시장에 가서 일군들을 뽑아 포도원에 들여보냅니다.
그리고 다시 오전 9시 12시 오후 3시 마지막으로 오후 5시에 가서 일꾼들을 포도원에 들여보냅니다.
비유는 예수님께서 창작하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있는 일들을 배경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생산되는 포도는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맛이 좋습니다.
여름 건기동안 잘 익은 포도를 수확해야 하는데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비가 오는 우기가 시작됩니다.
폭우가 쏟아지면 여름 내내 애쓰고 수고했던 포도농사를 망치게 됩니다.
바로 그 순간 포도를 따야 하는데 손이 모자랍니다.
그래서 많은 일꾼이 필요합니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오늘 포도원의 이야기는 전개되고 있습니다.


오늘 비유의 초점은 아침 6시에 들어와서 저녁 6시까지 하루 종일 일을 한 농부들이 불평하였다는 내용입니다.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일면 타당한 것 같기도 합니다.
‘나중 온 사람들이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는데 그들이나 하루 종일 12시간을 일한 우리들을 똑 같이 대우한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주인의 말을 들어보면 이들의 불평은 전혀 타당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그들과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약속하였습니다.
-일을 다 마치고 약속대로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은 내 뜻이고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하는 것인데 그것이 뭐가 잘못됐느냐는 것입니다.
주인의 말은 전혀 잘못이 없었습니다. 구구절절 다 옳은 말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불평하는 자들의 문제는 처음 포도원에 들어올 때의 감사가 어느덧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처음 이들이 포도원에 들어올 때는 얼마나 감사가 넘쳤겠습니까?
-오늘도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감사가 넘쳤을 것입니다.
당시 노동자들은 하루를 일해서 하루를 살아야 했습니다.
하루를 일하지 않으면 하루의 생활이 어려운 상황에서 오늘도 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웠겠습니까?
-일을 하면 하루의 품삯인 한 데나리온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감사했고 하루 종일 일이 없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얼마나 안심이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품삯을 주고받는 시간에 이런 감사가 사라지면서 원망이 생기고 불평이 생기고 비교의식이 생겼습니다.
일을 한 시간밖에 하지 않은 사람이 자기와 똑같은 임금을 받은 것이 원망의 이유였겠습니다만 엄격하게 말하면 처음 감사를 잃어버렸고 처음 감사가 실종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모습은 우리들 가운데서도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불평과 불만을 넘어서 감사가 넘치는 삶으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먼저는, 불러주신 은혜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아침 6시에 들어와 일을 한 사람은 사실 불평할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불평보다 감사해야 할 일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 가운데 택함을 받아 포도원에 들어가 일을 했다는 것이 감사할 조건이었습니다.
당시 일을 구하는 노동자들은 이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대로 9시, 12시, 오후 3시 심지어 오후 5시까지도 일을 구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누가 데려가 쓰지 않으니까 이렇게 놀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6절)
이제라도 일자리가 생길까 기다리는 이들의 고민을 얼마나 크고 힘들었겠습니까?
가족들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메어지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하는데, 그래야 가족들이 굶지 않고 살 수 있는데,
오늘도 불러주는 사람이 없구나. 오늘도 공을 쳤구나.’
그런데 아침에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이런 걱정이 없었습니다.
‘오늘도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받았구나. 품삯을 한 데나리온 준다고 하니 저녁에 빵이라도 사갈 수 있겠구나.
눈 빠지게 기다리는 처자들에게 먹을 것을 줄 수 있으니 나는 참 행복하다.’
먼저 부름 받아 들어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축복이고 감사거리였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은 천국의 비유 중에 하나입니다만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가 천국에 먼저 부름 받고 들어온 품꾼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않고는 예수님을 믿을 수 없고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덕분입니다.
이 선택은 아무에게나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축복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고 말씀하고 있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엡1장)
하나님은 우리를 창세전에 택하셨습니다.
택하신 우리를 불러주시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하셨습니다.
그 믿음 안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불러주시니 우리는 사실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포도원으로 부름 받은 사람들이 걱정 없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자녀 된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켜주십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여주시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허락해주십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축복으로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바로 이 부름의 축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할렐루야.
많은 사람들 가운데 먼저 부름 받고 택함 받아 주님의 포도원인 교회에 들어와서 일을 할 수 있는 이 은혜를 잊지 않고 굳게 붙잡을 때 우리는 원망이나 불평을 이기고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둘째는, 기회를 주신 은혜를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노동자들 가운데 아침 6시에 들어온 사람이 먼저 부름 받았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면
그 다음에 부름 받은 사람들은 기회를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대부분은 아침에 일군을 포도원으로 데려가면 그 다음은 일꾼들을 들여보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오전9시, 12시, 오후 3시 심지어 오후5시에도 시장에 가서 일꾼들을 불러서 포도원으로 들여보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대부분은 두 가지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포도열매를 거두는 일이 급했거나 아니면 주인이 일꾼들을 불쌍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이들은 놓친 기회를 다시 받은 것입니다.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잡았습니다.
일을 하게 되었으니 하루의 품삯은 주지 않을지라도 일한 만큼은 줄 것이고 그것이라도 받으면 가족들에게 먹을 것을 조금이나마 사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하였겠습니까?
이들이 포도원에서 일을 할 때의 모습은 처음 들어온 사람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을 하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할 수 없는 자기들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교회라고 하는 포도원에도 이렇게 늦게 부름을 받아 들어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끔 언급한 제 친구는 나이 60이 되어 포도원에 들어왔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한편 강도는 죽음에 임박해서 포도원에 들어온 사람입니다.
늙어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때 들어온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병이 들어서,
어떤 사람들은 젊을 때 방탕하게 생활하다가 가진 것 다 잃어버린 다음에 들어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수필가이자 문화부장관을 지냈던 이어령 씨가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나이가 75세였습니다.
딸과 손자의 질병과 치유과정을 보며 인간의 무력함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인데요
그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심정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제 딸 민아는 암과 시력 장애 그리고 아이의 문제를 모두 신앙심으로 극복했지요.
간단하게 말하면 혈육의 아버지의 힘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이 고쳐주신 것이지요.
그래서 나는 내 딸에게 이렇게 말했지요.
‘나의 지식과 돈이 너를 구하지 못했다.
정말 네가 주 안에서 편안함을 얻었다면,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면 나도 나의 무력이 증명된 것이 아니냐.
내가 이 무력함에 매달려 지금까지 살았구나. 같이 동행하자.
지금 자신은 없지만 네가 시력을 잃어가면서 본 빛을 나에도 보이게 해 달라.’라고 말이지요.”
이런 사람들이 바로 오후 3시, 오후 5시에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뒤늦게 깨닫고 포도원에 들어온 사람들은 늦게라고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에, 기회를 주셨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합니다.
최고의 기회, 최고의 은혜를 받았다는 생각을 가질 때 감사가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사랑과 배려를 생각해야 합니다.


포도원 주인이 일꾼들을 들여보내면서 품삯을 정하게 되는데요,
아침 6시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한 데나리온을, 9시 12시 오후 3시 5시에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상당하게 주리라, 그리고 오후5시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습니다.
이제 모든 일을 마치고 품삯을 주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주인은 오후5시에 들어온 사람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중간에 들어와서 상당하게 주리라고 했던 사람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줍니다.
주인이 왜 이들에게 이렇게 파격적인 대우를 하면서 하루의 품삯을 주었을까요?
그들의 형편과 생활 속에서 그들에게도 한 데나리온의 돈이 필요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큰 배려를 베풀어준 것입니다.
주인의 사랑과 배려로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받을 때에 이들은 얼마나 주인이 고맙고 감사했을까요?
이 모습을 보자 6시에 들어온 사람들은 당연히 우리는 더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그들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기대했던 것이 무너지자 그들은 주인을 향하여 원망을 하고 불평을 하였습니다.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으면서도 어떤 사람들은 정말 너무나 고마워서 어쩔 줄 모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불평하고 원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렵고 힘든 자를 배려하는 주인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보면서 비교하고 질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 것이 주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다른 형제를 질투하고 시기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은혜가운데 살면서 늘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보다 먼저 불러주신 은혜’를 생각해야 합니다.
늦게라도 불러주셔서 구원해주시고 다시 기회를 주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울러 이런 모든 것들이 주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주님의 그 사랑과 배려에 감사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베푸신 주님의 은혜를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들과의 비교의식 가운데 살아가면 우리가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많은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기가 쉽습니다.
내게 주신 주님의 은혜가 다른 사람에게도 임하는 것을 보면서 함께 기뻐하고 함께 감사하게 될 때 우리는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내게 주신 은혜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고 감사하면서 그것으로 만족할 때 감사가 충만한 삶으로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2021.09.19.)
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권호만barnab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