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창세기 강해

창세기 3장 강해설교

에반젤(복음) 2019. 7. 7. 05:47



뱀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의 타락!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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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늘 세 가지를 살피며 살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첫째는, '나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입니다. 그 무엇보다 나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그분의 피조물'입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지식은 나를 바로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칼 바르트'는 말하기를 '하나님을 아는 자만이 나를 알 수 있고, 나를 아는 자만이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나를 알면 겸손해집니다. 또한 나를 알면 괜한 열등의식에 빠지지도 않습니다. //

둘째로는, '내 나이 몇 살인가?'하는 질문입니다. 자기 나이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실제로 자기 나이에 걸맞게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이를 안다는 것이 뭡니까? 내 나이에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가질 수 있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 추구해야 할 것과 포기해야 할 것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

나이를 바로 알면 기회를 상실하지 않습니다. 또 과욕과 허욕에 눈멀지도 않습니다. /아멘!/

셋째로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하는 질문입니다. 10년 후, 20년 후 나는 무엇을 할 것인지, 인생의 황혼기에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지, 그리고 인생의 종착역은 어디인지, 죽음 이후에는 어떤 일이 있는지를 알고 살아야 합니다. //

벌써 올해도 12월 한 달만을 남기고 여기 11월 마지막주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나는 누구인가?, 내 나이 몇 살인가? 내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면서 한해를 정리하시기를 바랍니다. //

본문의 배경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그들이 살 수 있는 에덴동산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정말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동산을 만들어서 아담과 하와를 살게 했습니다. 그곳에는 보기에도 아름답고 먹기에도 좋은 실과 나무가 나게 하시고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나 인생들에게 꼭 유의시킬 것은 인간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받들고 사는 관리자지 주인과 주권자는 아니라는 것을 늘 기억하며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동산 중앙에 선악과라는 실과를 만들어 놓으시고 '이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에덴동산은 아담과 하와가 늘상 사는 집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선악과라는 실과를 두고서 밤낮으로 그것을 보도록 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손대면 죽는다. 먹으면 죽는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너희 가운데 주권자가 계신다. 너희 가운데 우주의 주인이 계신다. 너희들은 하나의 관리자에 불과하다.' 이 사실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아담과 하와에게 시험거리가 된 것입니다. 뱀으로 분장한 마귀가 와서 약점을 알고서 아담과 하와를 꾀어서 말하기를 '이 실과를 먹는 날에는 네 눈이 밝아져서 너희도 하나님처럼 선악을 알게된다. 주권자가 된다. 주인이 된다. 관리자로 있을 필요가 없다.'고 유혹을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하와의 마음속에 탐욕이 들어오매 그가 손을 내밀어 그 실과를 따먹고 남편에게도 주어 먹게 해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한 죄를 짓게 되어 이 땅에 원죄가 들어오게 된 사건을 본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가 대표성의 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죽습니까? 아담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병이 듭니까? 아담 때문입니다. 아담이 대표적으로 불순종한 것이 나의 불순종이 된 것입니다. 아담이 죄인 되어서 우리도 다 죄인이 된 것입니다. 이 사건에는 대단히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그 원리는 대표성의 원리입니다. 5:19절에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

아마존 강의 둑을 따라서 걷다보면 화려한 색채를 입은 가지각색의 거미들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거미들 중 어떤 거미는 마치 빛살 좋은 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는 것처럼 몸을 활짝 드러내 놓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벌이나 나비, 그밖에 다른 곤충들이 꽃으로 착각하고 꿀을 좀 따기 위해 앉으면 꿀 대신 독을 내 뿜어 그 곤충들은 여지없이 자기 먹이로 삼아 버린다고 합니다. 여러분, 마귀는 이렇게 화려한 위장술로 우리를 접근합니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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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는 여러 가지의 근원, 또는 시작을 밝히고 있습니다. 세상의 시작에 대해서, 인간의 시작에 대해서, 또는 가정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최초의 살인자는 누구였는지 등, 시작, 근원, 최초의 사건과 사실 등을 말해줍니다.

오늘 이 본문에서는 특별히 인간의 불행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1장에서 반복해서 사용되고 있는 단어는 '좋았더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들이 모두 선했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거기에는 분노나 증오나 염려나 위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3장의 사건에서 인간의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첫 사람 아담에게 화려한 위장술로 변장한 사단이 들어와 그들을 자기 먹이로 삼아버린 그런 이야기입니다. //

성경 중에 '3장의 사건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은 모든 믿는 사람의 한결같은 마음입니다. 본문은 인류의 최초의 비극과 불행이 이곳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에덴동산을 볼 수 있습니다. 생명의 에덴동산, 평화의 에덴동산, 자유와 행복의 에덴동산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동산에 선악과나무를 두었습니다. 그 나무를 두신 것은 이 세상에는 모든 악의 기원이 되는 마귀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이며, 죄가 존재함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허락하신 에덴동산에서 축복을 누릴 수도 있고, 상실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며,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의 교제를 언약에 기초를 두고 있음을 보여주신 것이며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는데 그 자유를 선용되어질 때만이 복을 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또 이 동산에 주인공인 첫 사람 아담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아담이란 말은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또 이곳에서 인류의 최초의 사람인 아담을 유혹하는 간교한 사탄도 불 수 있습니다. 도대체 사탄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하나님을 반역하다가 타락한 천사'가 사탄입니다. 사탄이라는 말은 '시기, 반역, 대적'이라는 뜻이 그 안에 들어있습니다. 본문에서는 뱀으로 나타납니다. // 본문을 상고하면서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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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교한 뱀의 유혹(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기서 ''이라는 것은 상징적으로 말한 것이지 마귀가 뱀의 형상을 입고 나타난 것입니다.

여기 '간교하다'는 말은 '교활하다'는 말로 '기회를 아주 잘 포착하고, 다른 사람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아주 적절한 때를 이용할 줄 아는 지혜를 가졌다'는 말입니다.

딤전4:4절에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뱀이 왜 간교하고 악합니까? 원래 악한 것이 아닙니다. 원래 하나님께서는 뱀을 모든 들짐승 중 가장 영리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10:16절에서 오히려 예수님은 뱀의 지혜를 배우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한 지혜로운 뱀에게 불순종과 파괴의 화신인 사단이 자신의 악한 목적을 달성키 위한 도구로 뱀의 지혜를 사용함으로 뱀을 유혹자인 사단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고후11:3절과 계12:9절과 또 계20:2절 이하에서 사단을 가리켜 ', , 옛 뱀' 등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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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뱀의 원어를 '나하쉬'라고 하는데 그 속에 몇 가지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뜻을 음미해 보면 사탄의 간교한 술책과 유혹의 전술을 잘 나타내셨습니다.

'속삭인다'는 뜻이 있습니다. 정의와 진리는 백주에 천하에 외쳐서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악령의 사탄은 골방에서 속삭이며 유혹합니다.

'변색되다'는 뜻이 있습니다. 진리는 영원불변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칠면조처럼 일곱 번씩 아니라 칠십 번이라도 변하는 악령입니다. 어떤 때는 명예를, 권세를, 어떤 때는 미녀로 자주 모양을 바꿔서 우리들에게 접근합니다.

'점친다'는 뜻이 있습니다. 사탄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주신 명석한 두뇌와 선한 양심으로 어떤 일에 판단하며 살지 못하도록 점쟁이의 말을 따라 맹종하는 미신과 광신으로 어리석은 인간이 되게 합니다.

'도박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사람은 선을 따라 살아야 하도록 창조함을 받았으나 사탄은 사람으로 하여금 선과 악, 사람과 생명 사이에서 요행수를 바라며 도박행위를 감행케 합니다.

''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여기 뱀은 '나하쉬'인데 그 뜻은 '번쩍번쩍한다'는 뜻과 아주 '아름답다'는 뜻이 있습니다. 여기 '간교하더라'의 히브리어의 뜻은 '아름답다'는 뜻인데 좋은 의미로는 '영리하고, 신중한 것'으로, 나쁜 의미에서는 '교활하고 기회주의적인 것'을 뜻합니다.

뱀은 원래는 영특하게 피조되었으나 사단의 도구로 사용되자 그 지혜는 사악한 것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여러분 간교함은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품이 아닙니다. 따라서 간교한 사람은 거짓의 화신이 되어 온갖 권모술수를 일삼으며 가정의 불화를 깨치고 교회를 분열시키며 이런 간교한 사단의 종이 되는 자들이 국가도 파괴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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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시 간교한 마귀의 정체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사단의 특성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마귀의 성격은 그 이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탄'(Satan)이란 '대적자'란 뜻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의 일을 방해합니다.

'마귀'(Devil)'참소 자, 훼방 자, 고소 자'란 뜻입니다. 남의 허물과 죄를 들추어 참소하고 음해하고 고소하는 일을 하며 거짓말을 만들어서 주의 종과 성도들을 죽이고 매장시키는 일을 합니다.

'귀신'(Demon)이란 이름은 '유혹자'란 뜻입니다. 사람을 유혹하고 죄를 범케 하고 타락시키는 일을 합니다.

사탄의 제일 큰 활동목적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좌절시키는 일을 합니다. 하나님을 경배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과 분리시키고 멀어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못하게 하고 도리어 자기를 높이고 자기가 하나님처럼 영광을 받게 하려고 유혹합니다. //

마귀는 현재, 지금 이 시간도 역사하는 존재입니다. 베드로는 벧전5:8절에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지금 이 시간도 마귀는 실제로 활동하는 존재입니다. 어찌 해서라도 마귀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을 미혹하여 죄로 인도합니다. 바울은 엡6:10절 이하에서 전신갑주를 입고 성령의 검, 즉 말씀을 가지고서 마귀를 대적하여 이기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강력한 힘과 대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 그 누구도 마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함께 하여 마귀를 대적할 수 있습니다.

마귀는 기술적으로도 완전무결합니다. 마귀는 정당한 기회를 노리다가 때가 되면 미끼로 올무를 놓아 일을 성취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 기도하여 성령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깨어 있으라, 근신하라'고 당부합니다.

마귀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이용하여 죄를 짓도록 유혹합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릅니다. 빛과 어두움이 서로 공존할 수 없듯이 하나님과 마귀도 공존할 수 없습니다. 마귀는 무시무시한 권능을 가진 자지만 하나님의 권세는 이 마귀의 권능을 묶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마귀를 대적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할 때 승리하게 됩니다. /믿/

마귀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상의 것을 사랑하게 만듭니다. 사탄은 하나님과 나 사이를 하나되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께 등을 돌리게 합니다. 교회에 은혜에 등을 돌리게 만듭니다. 영적 생활을 버리고 육의 것을 좇게 합니다. 이것이 다 사탄의 역사입니다.

그렇습니다. 마귀는 교회를 멀리하고 말씀을 멀리하고 기도를 멀리하고 찬송을 멀리하고 주의 종을 멀리하고 비판하고 하나님 은혜를 경홀히 여기고 예배를 경홀히 여기고, 하나님께 대하여 의심하게 만드는 것은 마귀의 계획과 작전에 이용당하는 것입니다. /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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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이 인간을 넘어뜨리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사탄은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 우리 인간, 그리고 택한 백성까지도 넘어뜨리려 합니다.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님은 14가지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탄은 거짓말로 인간을 넘어뜨립니다.

사탄은 세상의 것과 헛된 것으로 유혹합니다.

사탄은 항상 위장합니다. 사탄은 진실 할 수가 없습니다.

사탄은 사자나 뱀처럼 천천히, 은밀히, 오랜 인내를 가지고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접근합니다.

사탄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통해서 넘어뜨리려 합니다.

사탄은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위장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불의한 방법으로 살게 하고 성공하게 합니다.

사탄은 인간을 게으르게 만들고, 헛된 영광과 육의 행복과 꿈과 환상으로 미혹합니다.

사탄은 부드럽고 별 것 아닌 것으로 침투합니다. 마치 뱀처럼 부드럽게 한 겹 두 겹 슬슬 감습니다.

사탄은 어두울 때 활동하며, 어두움에 눈이 밝습니다.

사탄은 세상사랑, 육의 것, 물질, 명예, 먹는 것, 입는 것, , 쾌락, 인간이 가장 좋아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사람을 사냥합니다.

사탄은 그의 부하를 우리 마음에 침투하도록 항상 기회를 찾고 엿보고 있습니다.

마귀는 비정상적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멸망하게 하는 원수입니다. //

심리학자 '에릭 프롬'은 인간의 삶의 방식을 두 가지로 보았습니다. 하나는 '소유 추구의 삶'입니다. 이는 세상 적이며 육신 적인 삶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삶은 아름답지 못하며, 후회를 남깁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삶이 그렇고, 사울의 삶이 그렇습니다. 가롯 유다의 삶이 그렇습니다. 처참한 실패의 삶입니다.

두 번째는, '존재 추구의 삶'입니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를 고민하며 삶의 목적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립니다. 후대가 길이 기억할 보람된 삶의 발자취를 남기에 됩니다. //

선악과로 아담과 하와를 미혹한 사탄의 수법은 지금도 동일합니다. 6,000년 간 사용한 수법인데 사람들은 계속하여 미혹이 됩니다. 연못의 붕어들은 언제나 지렁이만 보면 탐을 내어 그 먹이를 뭅니다. 수많은 물고기들이 그 지렁이를 즐겨 물다가 죽어 가는 것을 보았을 텐데, 그래도 그 미끼에 끊임없이 미혹되고 있습니다. 물고기야 지능이 0.3이니까 그렇다고 하지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사탄이 던지는 미끼 앞에 동일하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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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사단이 최초로 인간을 유혹하는 장면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해서 인류가 계속 되는 한 사단의 유혹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확실한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를 사단이 시험하는 말입니다. '네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냐? 혹 다르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실 여부를 시험한 것입니다.

여러분, 사단은 오늘도 저와 여러분들에게 말씀에 대한 확신이 '있는가? 없는가?'를 시험하여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에 대한 확신을 늘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아멘!/ 또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의심을 일으킬 수 있도록 말씀 중에 한쪽 부분을 강조해 옵니다. 사단(이단)의 수법이 꼭 그렇습니다. 그들은 말씀의 한쪽 부분을 꼭 강조합니다.

여기서도 하나님께서 모든 나무의 실과를 마음대로 먹되 오직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하셨는데 뱀은 먹지 말라는 그것을 강조하여 '모든 것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강조하며 접근합니다.

여러분, 사람이란 저절로 강조하는 것에 따라 사고의 초점이 바꿔집니다. 그 때문에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도 초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먹어라! 그러나 단지 이것 하나 만은 먹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곧 '모든 것을 마음껏 누려라! 그러나 이것 하나 만은 금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단 한 가지 먹지 말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주신 것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게 합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잊어버리기가 쉽고 먹지 말라 금하신 것이 많다고 투덜댑니다. 물질을 10분의 1만 바치라고 하셨고, 시간을 7분의 1만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사실은 이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우리에게 10분의 9를 주셨고 7일에서 6일을 주셨는데 선악과 하나만 먹지 말라고 명한 것을 강조하듯이 교회 가면 십일조만 강조하고 즐거운 주일날에 교회에 나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단은 조금만 틈이 생기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옵니다. 그래서 스펄전 목사님은 '사단이 틈을 타고 들어오는 것을 마치 장작을 쪼갤 때 쐐기 박는 것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옛날 큰 장작을 쪼갤 때 도끼를 찍어도 잘 갈라지지 않을 땐 도끼로 틈을 주어 쐐기를 박아 쪼갭니다. 처음엔 조금씩 들어가다가 결국엔 쫙 쪼개집니다.

마찬가지로 마귀는 틈만 주면 살금살금 파고 들어옵니다. 이때 과감히 '무슨 소리야 썩 물러가라!' 했으면 꼼짝 못하고 물러갔을 텐데 거기에 동조를 하다가 끌려가고 맙니다. 특히 이단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단들의 방법이 마귀의 작전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논리대로 이용하는 하와(2-3)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마땅히 하와는 뱀을 책망해야 하는데 그것을 논제로 삼아 토론을 합니다. 여러분, 누가 잘못된 이야기를 하면 과감히 그만두라고 하십시오, 처음부터 끊어야 합니다. 괜히 아는 척 하다가 넘어집니다. 이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딱 잘라야 합니다.

여기서 여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변형시켜 버렸습니다. 2:17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여자는 뱀에게 말하기를 '네가 죽을까 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여자는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맘대로 뒤죽박죽 '늘었다. 줄었다 뺐다. 더했다.'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비슷비슷한 것 같지만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꼭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와는 '죽을까 하노라'로 다르게 대답합니다. '죽을는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4:2절과 12:32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말은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는 자에게 어떤 형벌이 있는지도 계22:18-19절서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상하게도 사람이 불평하기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불평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마찬가지로 죄는 새끼를 칩니다. 그러니까 번져 나갑니다. 유전성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보태거나 빼거나 약화시키는 것은 사단에게 틈을 주는 기회가 됩니다. 자기 마음에 드는 것을 취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빼 놓으면 사단은 그것을 물고늘어집니다.

사단이 화와의 말을 들어보더니 '이 친구 말씀에 확신은 없고 또 불만을 가지고 있구나! 옳다 기회는 이때로다.'하고 그를 넘어뜨린 것입니다. /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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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은 그의 본성을 드러냅니다(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사단의 본성이 나왔습니다. 본성이 무엇입니까? 거짓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8:44절에서 '사단을 거짓의 아비'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천로역경의 저자 존 번연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면 다 거짓으로 가 버린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 속에는 진실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 속에는 참된 진실이 없습니다. '다 못 믿어도 나는 저 사람만은 믿어, 얼마나 착실해.' 그러나 그런 사람 속에도 거짓과 음란과 술수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아무리 착실해 보이고 얌전해 보여도 정도 차이는 있을 뿐 마찬가지입니다. //

사단은 '너희는 결코 죽지 아니 하리라'고 한 것은 2:17절에서 '하나님이 정녕 죽으리라'고 한 '정녕'을 무시해 버린 것입니다. 지금 사단은 하나님의 절대 명령을 절대적인 거짓으로 맞바꾸고 있습니다.

거짓말에는 거짓만의 힘이 있습니다. 오히려 진실보다 더 확실한 것처럼 보이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짓은 더 확실한 것처럼 들립니다. 진실은 있는 그대로 말해야 하기 때문에 표현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은 언제나 마구 부풀리기 때문에 얼마든지 더 좋게 들리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화를 보면 만화는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것을 그림으로 얼마든지 그려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부풀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만화를 좋아하게 되고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마귀를 거짓말쟁이라고 말합니다. 사단은 거짓과 가장의 천재이며 위장의 천재이기도 합니다. 사단의 주특기는 속이는 것입니다. 심지어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기도 합니다. 잘못된 철학, 잘못된 사상, 그리고 잘못된 세계관과 이단의 배후에는 항상 악한 사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멘!/

여기 맨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도 이 마귀의 거짓말에 속았습니다. 지금도 마귀의 거짓말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과학을 너무 잘 믿고, 여론을 너무 신뢰하며, 통계를 너무 신뢰합니다. 다수의 의견을 민주주의의 기초로 삼으며, 매스컴을 너무 신봉하니까 이것들을 이용해서 사단은 무신론 사상을 퍼뜨리며 인본주의 철학을 심어 주고 있습니다.

하와는 뱀의 말을 듣지 않았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듣고 난 후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유혹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굳게 서야만 됩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여기서 날은 '순간 때'란 의미로 '너희가 그것을 먹자마자, 너희가 그것을 먹는 순간에'란 말로 강한 욕망을 충동질해 주는 유혹의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사단은 '먹으라'고 했습니다. 아담은 이 두 사이에서 '먹어야 하느냐? 먹지 말아야 하느냐? 하나님과 같이 되느냐? 안 되느냐? 성공이냐? 실패냐? 죽느냐? 사느냐?'의 무서운 결단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셨고, 스스로 선택의 자유도 주셨습니다. 여러분 선택도 자유지만 결과는 자기 자신이 져야 합니다. 에서는 팥죽 한 그릇을 선택했지만 장자의 축복은 떠나갔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보이는 것을 선택하여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그 도시는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아담과 하와는 자유의지대로 자기들이 선택했지만 그들은 사탄의 유혹처럼 하나님처럼 된 것이 아니고 엄청난 죄 속으로 빠져 들어간 것입니다. //

사탄은 '너는 신이 될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5).

그렇습니다. 지금도 사탄이 인간에게 하는 최대의 유혹은 '너도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대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신이 되기를 원했고 신의 흉내를 내려고 했습니다. 인간이면서도 인간 그 이상의 존재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얼굴을 조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숭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삶의 주변에서 끊임없이 신이 되라는 유혹을 받습니다. 신이 되려는 사람의 특징은 타인을 섬기려 하지 않고 다스리려고만 합니다. 교만합니다. 사탄의 특징이 교만입니다. 하나님 대신에 자신이 섬김을 받으려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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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의 3대 작전이 있습니다(6-7).

하나님이 절대 명령을 범한 인간에게 먼저 찾아오는 것은 탐심입니다. 선악과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했습니다. 마귀가 주는 생각입니다. 모든 사람이 먹는 것과 보는 것과 탐스러운 욕심 때문에 다 무너집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3대 원리입니다. //

인간의 탐심이란 자기 것 이상으로 갖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피조물을 인간에게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선을 넘어 하나님처럼 되어 보겠다는 탐심이 결국 넘어지게 된 것입니다. 마귀는 그것이 탐심이 아니라 권리라고 유혹합니다. 최초의 인간들은 이 유혹에 넘어가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탐심의 결과로 인간이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기는커녕 인간의 본래 가지고 있었던 것까지도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여자는 뱀에게 유혹을 받았으나 남자인 아담은 여자의 유혹을 받아서 먹어서는 안 되는 금단의 실과를 먹음으로 결국 하나님보다 여자를 더 사랑했다는 증거를 남겼습니다. 한 마디로 첫 사람 아담은 미혹의 길로 넘어진 것입니다.

인간의 길에는 두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사는 길과 죽는 길입니다. 참된 길과 거짓된 길, 진리의 길과 미혹의 길입니다. 인간이 어떤 길을 택하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 기쁨과 절망이 달라집니다. /믿/

아담은 죽는 것을 택했습니다. 참된 것보다 거짓을 택했고, 진리보다는 미혹의 영을 따라 갔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고 있었기에 뛰어난 지성을 갖추고 있어 짐승 하나, 하나의 이름을 다 지어 주었습니다.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 중에서 가장 뛰어난 만물의 영장의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이런 아담이 그만 미혹의 영을 쫓아가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순종하고 복종해야 할 청지기의 사명을 스스로 포기해 버리고 저주의 길을 택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반역한 아담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져 버림으로 영적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인간의 육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영혼이 중요한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는 한 마디로 먼지요, 티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 결과 파멸과 절망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그 길을 첫 사람 아담은 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담의 실패를 보신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시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창3:15절을 통하여 '여자의 후손'을 보내실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죄인으로 태어난 인간은 죄를 짓고 삽니다. 죄를 짓는다는 것은 미혹의 영을 따라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혹의 영은 무엇입니까? 사단입니다.

아담의 범죄는 한마디로 모든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에게서 마귀의 자녀로 소속을 바꿔 놓아 버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미혹의 길에 빠져 절망하는 인간을 구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간의 삶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자에게는 해산의 수고를 주셨으며 아담에게는 저주의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는 절망의 자리로 떨어졌으며 하나님의 심판의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어사는 부끄러움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은 피하고 사람도 피하게 됩니다.

두려움의 심판이 옵니다.

추방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사망의 심판입니다. '정녕 죽으리라' 그 한 그 말씀 그대로입니다. 6: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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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사망은 어떤 사망입니까?

양심의 사망입니다. 죄를 짓고 또 지으면 그 양심은 마비되고 죄가 죄인 줄을 모릅니다. 주님은 이런 사람을 가리켜 '화인 맞은 양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양심이 마비되고 파손된 자는 살았으나 실상은 죽은 사람입니다. /믿/

인격적인 사망입니다. 소금이 그 맛을 잃어버리면 버리어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정직과 진실의 맛을 잃어버리면 매장되고 맙니다. 많은 유명인들, 정치인들을 보세요! 범죄 하면 황금보다 귀한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리고 천하보다 귀한 인격이 매장 되어 버리고 맙니다. //

영육의 사망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한 번 태어나서 한 번 죽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육으로 한 번 태어나서 예수 믿고 영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또 사람은 육신은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죽음 뒤에 제 2의 사망이 또 있습니다. 2의 사망은 무엇인가? 우리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만 왕의 왕으로 대 심판을 하실 때에 죄인이 받는 사망의 형벌을 제 2의 사망이라고 합니다. 죄는 무덤에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무덤 건너편까지 따라가는 것입니다. /믿/

사람이 왜 죽음을 두려워합니까? 죽음 다음에 더 엄숙한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심판을 받게 될 이 '죄악의 짐, 공포의 죄의 짐, 몸이 벌거벗은 수치의 죄의 짐'을 지고 애타는 인간들에게 우리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시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

아담과 하와의 원죄의 결과는 무엇인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나간 아담과 하와! 그들은 이젠 하나님 없이 혼자 살아야 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부모 밑에서 갓난아기가 혼자 살라고 떨어져나간 것과 같습니다. 얼마나 죄의 결과가 치명적입니까?

인간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둘 사이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고 틈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거대한 동산에서 둘밖에 살지 않는다면 얼마나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그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의 골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아담이 '저 여자 때문에...'라는 말을 함부로 하게 된 것입니다(12).

그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은 죄의 결과가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환경(자연)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땅이 저주를 받게 되고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었습니다. 자연환경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복을 주며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28)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연만물은 원래 인간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 없는 에덴동산에서는 정말 그랬습니다. 그런데 죄의 결과로 자연이 태풍을 일으켜서 인간을 수백 명 죽이는 참화! 호랑이가 사람을 물어 죽이는 일! 지진, 물난리가 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자연과의 관계까지 단절되었으니 죄의 결과가 얼마나 치명적입니까? //

자기와의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미움, 질투, 분노, 두려움, 이것들이 심해져서 오게 되는 정신분열증이 생기고, 고독하고 외로움에 떨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영적 자기와 본능적 자기가 단절되어서 오게 된 현상들입니다. 다른 관계는 말할 것도 없이 자기마저 단절시켜 버리니 이 얼마나 죄가 치명적입니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단절이 예수 안에 있기만 하면 다 회복된다는 축복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미혹의 영에 빠져 절망하는 인간을 구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바울은 고후5:17절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했습니다. // 우리를 새 것으로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신학적으로 아담은 첫 사람이라고 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두 번째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첫 번째 사람 아담은 죄를 범하므로 무너졌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 두 번째 사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도 마귀가 찾아와 미혹의 길을 제시했으나 첫 사람 아담처럼 죄를 짓지 아니하고 단연코 배격해 버렸습니다.

4장에 예수님께서 사생활 30년을 마치시고 하늘나라의 사역을 하시기 위해 성령의 인도를 밟아 광야에서 4040야를 금식하시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금식하시고 주리셨다는 사실을 안 마귀가 예수께서 다가와서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유혹합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먹음직한 육신의 정욕으로 시험을 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이 말씀은 마귀가 예수님께 '선악을 네가 결정하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주권을 마음대로 행사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들이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4'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는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여러분, 주님은 아담처럼 선악을 판결하는 것은 자기가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선악 판단의 결정을 맡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담처럼 미혹의 길을 가지 않으시고 진리의 길로 갔습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 먹는 것은 육신의 정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에 서서 이 육신의 정욕을 담대하게 물리치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마귀가 예수님을 높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리라!' 이 시험은 안목의 정욕입니다. 명예, 지위, 출세입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냐? 그렇다면 성전에서 뛰어 내려도 다치지 않을 것이 아니냐? 네가 그곳에서 뛰어 내리면 이를 본 모든 사람들이 너를 높이 세울 것이 아니냐?'고 시험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7'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인기를 위해 선악의 결정을 스스로 하지 아니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

안목의 정욕으로 예수님을 시험하려다 실패한 마귀는 이번에는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 천화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며 9'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절만하면 이 세상 모든 것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상에 자랑에도 넘어가지 않으시고 10'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천하의 영광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취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님께서는 사단의 미혹을 이김으로 새로운 피조물의 조상이 되셨습니다. /믿/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처럼 된다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진짜 눈이 밝아지기는 했으나 하나님처럼 밝아진 것은 아닙니다. 벌거벗은 수치를 발견하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엮어 그 수치를 가려해도 얼마나 애를 썼습니까?

한마디로 죄의 근원은 교만에서 왔습니다. '하나님처럼 되리라'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욕심으로 '지식을, 명예를, 재물'을 모으지만 그러나 그것은 무화과나무 잎으로 가린 앞치마처럼 끊임없이 말라버리고 맙니다.

많은 신학자들은 무화과나무 잎으로 덮은 것을 가리켜 '인간종교'라고 합니다. 인간 스스로 의롭게 되는 것, 도를 닦고 수양해서 훌륭한 도사고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인간의 어떠한 종교로도 자기의 수치와 죄를 가릴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아멘!//

우리 인간의 상태에는 네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먼저 아담의 타락 이전을 '무죄 상태'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담이 불순종하고부터 인간은 '죄악의 상태'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죄악의 상태를 '하나님의 진노 상태'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게 되면 '은혜 상태'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은혜 상태로 살다가 이 땅을 떠나게 되면 '영광의 상태'로 들어가게 됩니다. //

사랑하는 참 행복한 성도 여러분, 어느 상태에 속해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지금도 '죄악의 상태, 하나님의 진노의 상태'에 거하고 있지만, 우리는 '은혜 상태에 거하다가 영광의 상태'로 들어가게 될 줄 굳게 믿으시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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