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은 평화의 나라를 위하여 사2:1-5
주신 말씀 사2:1-5절을 중심으로 평화의 나라 도래를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합니다.
대림절 첫째 주일에는, 임마누엘의 메시아가 오심을 대망(待望-바라고 기다림)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기다림과 소망의 촛불”을 켭니다.
둘 째 주일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없도록 살아온 나의 부정한 모습을 회개하고 구유에 누인 구원자 아기 예수를 찾아나서는 의미로 “회개와 평화의 촛불”을 켭니다.
셋째 주일에는, 구유에 누인 구원자 아기 예수님을 찾아가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이웃을 향해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다짐하며 “결단과 실천의 촛불”을 켭니다.
넷째 주일에는,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화해를 이루는 “사랑과 화목의 촛불”을 켭니다.
다섯째 주일에는, 죄인이었던 우리(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신 예수님의 공로를 찬양하는 “감사와 환희의 촛불”을 켭니다.
1-5장에서 여호와를 배반한 유다의 참상과 계속될 심판 경고 및 회복약속 가운데 본문은 여호와의 날에 있을 평화의 나라 도래와 남은자의 회복에 대한 예언입니다.
예수님 오신 날을 기다리며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는 성도가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심판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심판 후에 있을 궁극적인 회복의 약속이라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오늘날 촛불 민심은 보수주의자들이 사라지는 웃지 못 할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반공과 정권에 빌붙어 부정부패를 일삼는 최태민의 키즈로 군사훈련을 받은 목사들의 후예들과 권력을 잡고 갖은 비리를 저지른 자들이 보수라고 자처하며 진짜보수를 밀어내버린 것입니다.
진짜 보수는 정통성을 중시하며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입니다. 신앙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위정자들이 잘못하면 충언을 서슴지 않던 신앙선배들의 올곧음은 사라지고 불법과 무질서를 자행하는 가짜 보수주의자들이 판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보수주의자가 되기를 원하고 스스로보수주의자라 말할 수 있습니다. 무능하고 비양심적이며 비도덕적이며 비윤리적인 사람들이 보수를 자처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반공을 국시로 하지 않아도 무신론자들과의 싸움이기에 자발적으로 공산주의자들과 싸우고 공산세력을 물리치게 되어 있습니다. 억지로 멸공 반공하는 자들이 뒤가 구리니까 다시 말해 좌익활동을 하던 박상희나 일본제국주의에 부역한 최태민 같은 영세교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기 위해 악용된 반공이 아닌 신앙에 기초한 승공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유신론과 유물론적 사관에 기초한 공산주의와 싸움은 오직 믿음만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평화의 나라도래를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
첫째로 온 세상에 교회가 우뚝 서게 해야 합니다.(2-3)
여기서 여호와의 전의 산은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진 시온산 즉 예루살렘을 말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워진 곳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때에 급격하게 쇠퇴하기 시작하던 때에 이사야가 예루살렘의 부흥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서고 작은 산위에서 뛰어나게 된다는 것은 예루살렘이 세계만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중요한 핵심이 될 것이라는 것이지 시온산이 가장 높은 산이란 의미가 아닙니다.
이러한 예루살렘의 부흥은 말일에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말일에 (והיה 위하야,~에. בארחרית 뻬아리트, 말 ; הימים 하이야밈‘, 일, )
말일에 성전을 중심으로 세워질 평화의 나라 비전에 대한 선포이고,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것이다는 고백이라는 말입니다.
마지막 날들은 첫째 유다 민족이 바벨론으로부터 귀환할 때를 기다리는 뜻이거나 둘째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통해 가져오신 교회시대를 기다린다는 즉 말세는 초림부터 시작되었다는 뜻과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후 시대인 메시야 시대를 가리킨다는 뜻으로 주장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해석 중 두 번째와 세 번째가 모두 망라되었다가 정답에 가깝습니다.
이중으로 겹쳐 있는 앞산과 뒷산이 하나의 그림 안에 그릴 수 있듯이 구약 시대에 미래를 바라볼 때 가까운 미래인 예수님의 초림과 먼 미래인 예수님의 재림이 함께 그려져 있습니다.
즉 여기서 말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믿고 만방의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교회 시대와 재림이후의 메시야 시대를 망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이 부흥하기는 커녕 도리어 쇠퇴하고 오늘 날에도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작은 도시에 불과합니다. 예루살렘은 BC586년 바벨론에 망하고 그후 페르시아, 헬라, 그리고 로마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로 전락하여 좀처럼 부흥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예루살렘은 만왕의 왕이시며 우주의 창조자이시며 만유의 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구속사역을 이루심으로 새로운 부흥의 전기를 맞았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은 이와같이 진실하여 예루살렘의 부흥이 요원하던 시대에 선포된 예언은 700년 후에 놀랍게 성취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아직 성취되지 않은 예언 즉 예수님이 다시 오시겠다는 예언이 반드시 성취될줄 믿고 오래참고 깨어 기도해야 될줄 믿습니다.
2절에서 여호와의 전의 산은 시온산으로 해발 600m 정도입니다.
가까이 있는 헬몬산에 비교하거나 알프스 히말라야에 비교하면 산이라고도 할 수 없는 작고 낮은 산입니다. 그러한 시온산이 말일에 모든 산꼭대기위에 굳게 설것이라 합니다. 문자적으로 더 높아진다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의 영향력이 세계 만방에 미치게 될 것이라 합니다.
궁극적으로 신약교회가 점점 왕성하여져서 온 세상위에 굳게 설것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로마교회보다 개신교의 영향이 21세기 주도권을 장악하고 미국과 영국을 통해 세계를 호령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전의 산; הר בית ־יהוה]은 문자적으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즉 시온산을 지칭하나 본질적으로 신약시대의 교회를 지칭합니다.
갈4:25 “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말씀처럼 교회는 여호와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요 , 사람들이 여호와의 통치를 기쁘게 받는 곳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모든 산[ההרים헤하림]은 그 산들이라는 뜻으로 세상의 모든 종교 또는 이방신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들 우상종교를 섬기는 자들은 산꼭대기에서 제단이나 산당을 세워놓고 (천단)거기에서 제사를 드리곤 하였는데 산 꼭대기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중간지점으로 하늘에 있는 신들이 내려와 만날 수 있는 적합한 장소라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거의 비슷합니다. 아메리카 인디언까지...
만방이 산들 중에서 가장 높은 산 즉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할 수 있는 곳으로 모여들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는 모여들 것이라는[ ונהרו웨나하루]는 말은 시냇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듯 그렇게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적으로 쉬임없이 모여들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온교회에 성도들이 모여드는 축복이 임하길 기도합니다.
누가 만방[הגוים 학고임]이 헬라어로 παντα τά έφνη 판 타타 에드레라는 말로 70인역 마28:19에 번역되어 세상 끝이 오기 위한 조건으로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교회는 세상 가운데 우뚝 서게 될 것이며,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런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낙담하지 말고 힘써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증거해야 될 것입니다.
교회는 구원의 말씀을 증거하도록 택하여 세운 곳임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이스라엘과 시온을 택하여그들에게 구원의 말씀을 맡기신 것은 그들만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 그들에게 구원의 말씀을 맡기어 온 세상에 전하게 하심으로 구원의 길을 몰라 헤매는 세상 사람들을 구원으로 초청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과 시온산이 이러한 통로인 것처럼 오늘날 성도와 교회는 영적 이스라엘이며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구원 받은 성도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의 말씀이 주어져 있고 그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할 책임도 주어져 있음을 분명히 깨닫고 그 사명을 잘 감당해야 될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교회 안에만 참된 구원의 길을 두셨기 때문입니다.
만방이 하나님의 교회로 모이는 것은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도 즉 구원의 길을 가르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죄 아래 있는 인간은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을 수 없기에, 여호와의 산 즉 하나님의 전인 교회 안에만 참된 구원의 길이 있기 때문임을 믿고 온 세상에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전하기에 힘쓰는 성도되기 원합니다.
둘째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만 온전하고 참된 평화가 이루어 집니다. (4)
4절 말씀은 만방이 여호와의 전에 모여든 결과에 대하여 말한 것입니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는 하나님께서 하나님께로 나아온 자들을 대상으로 의로운 통치를 수행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이 우주적이며 공의로운 통치로 말미암아 평화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내부가 혼란하니 북한의 김정은과 그 일당들이 매일처럼 군사적 도발 핵도발 미사일도발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세상이 시작된 유사이래 전쟁이 없었던 적은 없습니다.
오죽하면 쌍둥이로 태어난 야곱과 에서가 뱃속에서부터 싸웠을까요?
사람들은 전쟁을 막아보려고 UN과 같은 국제기구들을 이용해 수많은 방편들을 강구해보지만 그때마다 더 큰 이슈가 있어 덮어버린 곤 하죠.
이 땅에 참된 평화 즉 전쟁이 없는 완전한 평화시대는 하나님께서 우주적인 왕으로 통치하시는 때가 되면 전쟁이 그치고 평화가 올 줄 믿습니다.
전쟁과 다툼이 없는 참된 평화의 시대가 참된 복된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는 세계열방이 교회로 모여 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평화의시대가 정착 되기는 커녕 이슬람의 준동과 테러 보호무역주의의 장벽 강대국의 끝이 없는 정복야욕 즉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과 같은 나라들은 약소국에 전쟁을 붙여놓고 무기팔기에 혈안이 되어 있지요.
본 예언은 신약시대에 이루어질 예언이기도 하지만, 신약시대가 종결되고 궁극적으로 새 하늘과 새 띵에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열방이 여호와의 전의 산으로 몰려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다고 해서 죄악된 본성이 갑자기 짠 하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교회 안에서조차 분쟁과 다툼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75세나 된 최모 목사가 정년퇴직은 하지 않고 비윤리적이며 비도덕적이며 무능한 우상숭배자에게 끝까지 충성하며 임명장을 받는 모습은 아무리 노욕이라 해도 그렇지 하며 얼굴을 찡그리게 합니다.
왜 그럴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영세교의 영향을 받은 이단이 정통을 가장하고 한국교회에 침투했다는 말 밖에 달리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사실 이 땅에 이 세상에 완전한 평화가 불가능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완전한 평화는 세상 사람들에 의해서 결코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죄 문제를 안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죄를 사유하시는 분, 죄악을 종식시키시며 세상을 새롭게 조성하실 하나님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는 물론 사람과 짐승, 사람과 자연 사이에도 완전한 평화가 이루어져 에덴을 회복하게 될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나라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인류평화를 위해 세상의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인간의 한계를 분명히 인정하고 현 세상이 망할지라도 반드시 다시 시작될 새 하늘과 새 땅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될 줄 믿습니다.
셋째로 거룩한 역사에 대한 비전을 품고 언제든 진리 가운데 행하라 (5)
“야곱 족속아(ביח יעקב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합니다.
여기서 야곱의 족속은 일반적인 백성을 말하지만 특히 유다백성을 말합니다.
야곱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인물이며 야곱족속은 야곱의 집 즉 야곱 가문에 속한 모든 구성구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호와의 빛[באור יהוה]에 행하자는 말은 [그리고 우리가 여호와의 빛 안에서 걷자]는 말입니다. 여기서 빛에 해당하는 אור오르는 문자 그대로의 빛 즉 아침 빛이나 광명한 태양 빛 등을 나타날 때 사용되며 생명을 지탱하는 필수불가결 요소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빛은 하나님의 은혜 은총을 지칭하기도 하며, 생명과 번영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율법과 가르침을 가르치는데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율법과 가르침이란 의미로 쓰였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한 삶을 살므로 하나님과 막힘이 없이 거리낌이 없이 친밀한 교제를 이루며 살라는 것입니다.
죄악을 깨끗하게 씻김 받고 성결한 마음과 삶으로 거룩하신 하나님과 평화로운 관계 속에서 교제를 나누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게 될 가장 큰 축복인줄 믿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그러한 축복을 상실하고 도리어 심판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로써 원래의 축복된 삶을 회복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가 가져야할 삶의 목표와 태도는 다름 아닌 하나님이 이루고 계시며, 이루실 거룩한 역사, 은혜의 역사, 축복과 생명의 역사에 그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즉 과거에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으며 오늘 이 시간 어떤 일을 이루고 계신지, 앞으로 어떤 일을 이루시기를 바라시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이해가 선행될 때 우리는 과거 우리의 행동과 오늘 우리가 걸어가는 길을 바르게 판단하고 분변하여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지 바르게 선택하여 보다 나은 길, 더 온전한 길로 나아가야 될줄 믿습니다.
나의 어리석은 행동과 실패와 그로 인해 닥칠 비참한 결과에 대해 생각해보고 한 순간 한 순간마다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구도자의 자세로 하나님의 면전에서 살아간다는 바른 자세를 갖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하나님의 기쁨이 디는 삶을 살아야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자녀 삼아 주신 것은 예수를 나의 주로 믿고 고백하는 자마다 하나님의빛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행사를 정확히 분변하며 우리에게 부여하신 거룩한 자녀의 신분 천국의 유업을 받을 양자로써의 신분을 소중히 간직하고 지혜롭고 능하게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참된 평화의 촛불을 밝히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첫째로 온 세상에 교회가 우뚝 서게 해야 합니다.(2-3)
둘째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만 온전하고 참된 평화가 이루어 집니다. (4)
셋째로 거룩한 역사에 대한 비전을 품고 언제든 진리 가운데 행하라 (5)
대림절은 촛불을 밝히며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지난 한주 기다림과 소망의 촛불을 켜셨다면 오늘부터 일주일간 회개와 평화의 촛불을 켜시고 주님 오심을 기다리며 기도하며 전도하며 찬양하며 살아가는 한 주 되시길 축원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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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서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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