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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을 구하는가, 자비를 구하는가?

에반젤(복음) 2020. 3. 6. 23:35



표적을 구하는가, 자비를 구하는가?             눅11:31~32           묵상글 스크랩

 

  

 

   

(주제) 주님당신께서는 불가사의한 일로 놀라게 하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자비를 선포하시려 오셨습니다.

 

제 눈이 기적을 보기보다, 당신의 자비를 보게 하소서.

 

제가 찾기도 전에 저를 찾으시고 제 안에서 구원을 이루시는, 

 

먼저 베푸신 당신의 자비를 보게 하소서!

 

 

......................


 

본문은 이방인 성읍인 니느웨 사람들의 회개를 들려줍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불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신을 들려줍니다.

 


본문은 앞 장면의 내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앞 장면에서,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들은 놀라워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나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저자는 마귀의 우두머리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눅11:15)


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시는 장면으로부터 오늘 본문은 시작됩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시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그 어떤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눅11:29)

 

      

 

여기서, “악한 세대라는 말은 단지 마음이나 행실이 악할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의 병행구절에 따르면,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17:17)를 의미합니다.

 


곧 군중이 표징을 요청하는 것은


믿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모함할 구실을 찾기 위한 완악함과 비뚤어진 마음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곧 표징을 요구하며 예수님을 시험하려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치 앞 장면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하신 일을 마귀가 했다고 한 것이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었듯이,


하나님의 아들에게 신적인 표적을 요구하는 것 또한


하나님 아들을 불신하고 모독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된 것처럼,

 

인자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눅11:30)

 

      

 

그렇다면, 요나의 표적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마치 요나가 이제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무너진다.”(욘3:4)라고 외치며,


회개의 때가 왔음의 표징이 되었듯이,

 


누가복음의 예수님의 공생활을 알리는 첫 선포에서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눅4:18~19)하시면서 구원의 때가 왔다는 표징이 되셨습니다.

 


또한, 요나의 표징은 십자가와 부활의 표징이기도 합니다.

 

곧 요나가 바다에 빠져 고래 배속에서 사흘째 날에 다시 밖으로 나온 일은


인자가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사흘째 되는 날에 다시 살아나는 것을 예표해 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드러내시며 말씀하십니다.

 

보라, 솔로몬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눅11:31~32.)

 

     

 

이는 결국, 요나의 설교만 들고도 회개한 이방인 니느웨 사람들과


솔로몬의 지혜를 소문으로만 듣고도 찾아온 남방 이방인 세바의 여왕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비를 입었건만,

 


이스라엘 백성인 유대인들은 주님의 말씀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표적을 보고서도 태도를 고치기는커녕


오히려 불신하고 모욕하는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계시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표적일 것입니다.

 

단지 우리가 그 표적을 알아보지 못함은 우리의 불신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 믿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바울 사도의 말을 되새겨 봅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힘이시며 하나님의 지혜이십니다.”(고전1:22~24). 아멘.

 

 

    

 

주님!

 

당신께서는 불가사의한 일로 놀라게 하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자비를 선포하시려 오셨습니다.

 

제 눈이 기적을 보기보다, 당신의 자비를 보게 하소서.

 

제가 찾기도 전에 저를 찾으시고 제 안에서 구원을 이루시는, 

 

먼저 베푸신 당신의 자비를 보게 하소서!



.............................


  

 

고치는 것과 바꾸는 것의 차이                             묵상글 스크랩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정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많은 경우 우리의 시선은 매우 부정적입니다.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이나 문제점을 많이 보고,

 

그래서 자주 참으로 문제라고 한탄 또는 개탄을 합니다.

 

      

 

문제점이 무엇인지도 알고,

 

그것이 바뀌어야 한다고도 생각하는데

 

바뀌지 않고 여전하기에 한탄 또는 개탄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볼 일입니다.

 

문제점을 알고 있고 바뀌어야 한다고도 생각하는데 왜 바뀌지 않는지!

 

 

 

컴퓨터에 문제가 있으면 우리는 즉시 그것을 고치거나 바꿉니다.

 

문제가 있는데도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대로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고치는 것과 바꾸는 것은 사뭇 다른 것입니다.

 

 

 

문제점을 고치는 것은 바로잡는 것이고,

 

원래 있던 그대로 되돌리는 원형 복원입니다.

 

문제가 있다고 그것을 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이에 비해 바꾸는 것은 문제점을 고치는 정도가 아니라

 

문제가 있는 것을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문제가 있는 이전 것을 폐기 또는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고치지 않고 버린다면

 

고치는 것보다는 버리고 새로 사는 것이 쉽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사랑과 정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컴퓨터에 대해서만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이렇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의 잘못을 고치기보다는

 

고치려 해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 자기를 버리는 (즉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정말 사랑하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자기 잘못을 고칠 것입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배를 가르고 암 덩어리를 떼어내듯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자기 잘못을 고칠 것입니다.

 

      

 

미워하여 자기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여 자기를 고치는 것이고,

 

미워하여 꼴 보기 싫은 자기를 자포자기적으로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여 그릇된 자기를 버리고 새로운 자기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최근 기차를 타고 지방에 내려가는 길에

 

기차의 TV 프로에 어떤 명사의 인생관을 소개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변화, Change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기회, Chance가 오게 된다는 내용이었지요.

 

고치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기회가 오게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회개하라'는 말씀은 잘못은 고치고 자신을 바꾸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정말 자기를 사랑한다면 포기하지 (버리지) 않고 자기를 바꾸듯

 


정말 자기를 사랑한다면 회개하라는 말씀을 귀담아 들을 것입니다.

 

정말 자기를 사랑한다면 거짓 자기 사랑에 속지 않을 것이고

 

회개로 자신을 바꾸어, 새로이 태어나는 산통을 겪을 것입니다.


자신을 함부로 버리지 (즉 포기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