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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의 성령론에 대한 이해

에반젤(복음) 2020. 3. 1. 16:42

 

 

 

웨슬레의 성령론에 대한 이해
1. 들어가는 말
지금까지는 웨슬레의 교리의 중심을 그의 구원론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주의 깊게 살펴보면 웨슬레의 구원론은 성령론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웨슬레의 성령론은 교리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실천적이고 경험적이다. 그 자신이 성령에 대해서 이론적이고 학문적으로 연구한 것이 아니라, 경험적이고 실천적으로 알고 있는것이다. 웨슬레 이전까지의 성령론은 대체로 이론적이고 사변적 그리스도의 완전, 더 나아가서는 사회 윤리에 이르기까지 실천적인 신앙의 영역에서 성령을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있다.

2. 신학적 배경
요한 웨슬레의 신학에 영향을 준 요인들은 상당히 광범위하다. 초대 교회로부터 시작하여 교부시대와 중세시대에도 웨슬레의 신학에 영향을 준 여인들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가 회심하기 이전에 읽었던 몇 가지 책들의 소개와 함께 종교 개혁이후에 웨슬레의 성령론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몇 가지 요인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그중에서 국교회주의는 웨슬레의 성령론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아 생략하려고 한다.

A. 웨슬레 성령론에 영향을 준 책들
i. 제레미 테일러의 [거룩한 삶과 죽음의 규칙과 연습]
ii. 토마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 받아]
iii. 윌리엄 로의 [그리스도의 완전]과 [경건하고 거룩한 삶에의 부름]
iv. [성서]: 웨슬레는 1729년부터 전보다 더욱 열심히 성서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성서를 진리에 대한 유일한 표준이요, 순수한 종교의 유일한규범으로 받아들였다.

B. 청교도 주의
웨슬레의 가문은 대대로 뿌리 깊은 청교도적 신앙이 전래되어 왔다. 사무엘과 수잔나의 신앙 속에는 어려서 부터 받은 청교도적 신앙 배경과 영향력이 배어 있었다.
수잔나도 자녀들에게 청교도적 유산을 남겨 주었다. 그녀 자신이 어릴 때에 받았던 청교도적 훈련과 경건을 전수 시킨 것이다. 웨슬레는 청교도적 회개와 성결에 대한 고집스러운 교리와 정신을 이어 받았으며, 은혜 안에서의 성장을 가르치는 청교도
들의 뛰어난 재능을 소유하고 있었다. 뒤에 그의 복음주의 부흥 운동에 있어서도 청교도주의의 강조점인 회개와 확증, 그리고 성결에 대한 주제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는 것이다.

C. 모라비안주의
피터 뵐러는 웨슬레에게 실제로 이신드그이의 신앙을 소개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 인물이었다. 웨슬레는 자신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뵐러는 웨슬레에게 믿음으로 의로워진다고 하는 교리와 성령의 즉각적인 역사 그리고 구원의 확신 등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설명하였다. 모라비안들은 대체로 성령의 점진적인 역사에 대해서는 소홀히 취급하였고 성화와 칭의를 구별하지 아니하였다. 또한 그 신학은 믿음 지상주의의 경향에서 인간 편에서의 노력을 경시함으
로 도덕무용론과 정적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있었다. 이 점 때문에 웨슬레는 후에 모라비안과 멀어지게 되었다.

D. 신비주의
신비주의는 은혜나 믿음에 대해서보다는 헌신, 순결, 사랑 그리고 완전 등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기울이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웨슬레는 신비주의를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정신적 기도를 통한 자신을 정결케 함으로써 자신의 영혼을 세
상의 부패에서 구원하려고 했던 수단 정도로 받아들인 것이다.
내적 종교, 혹은 거룩함의 본성에 관한 신비주의자들의 견해는 웨슬레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다.

E. 칼빈의 신학사상
칼빈은 ‘성령의 증거’에 대해서, 우리가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졌다는 성령의 증거가 우리의 마음 속에 인과 같이 새겨진 것을 우리는 느끼며 그 결과 그것은 그리스도에 의한 정화와 희생을 우리 마음에 인친다고 말하고 있다.
성화에 대해서 칼빈은 웨슬레와 동일한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칼빈의 신학은 웨슬레의 구원론과 성령의 사역, 특히 성령의 성화 시키는 사역과 성령의 내적 증거의 신학에 대한 심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

F. 올더스게이트의 신앙 체험
웨슬레의 신학사상, 특히 그의 성령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인생을 변화시켰던 대 사건인 올더스게이트 사건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설교자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통해서 마음에 역사하시는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나는 이상하게 나의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는 내가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유일한 구원자였다. 나는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까지도 모두 거두어 가셨음과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시켜 주셨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특수한 방식으로 나를 경멸하고 핍박한 사람들을 위해서 온 힘을 다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나는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처음으로 느낀 것을 공개적으로 간증하였다’
올더스게이트의 체험은 웨슬레가 이미 회심은 했으나 확신이 없고, 따라서 심령의 평안과 기쁨이 없던 상태에서 구원에 대한 성령의 확증의 역사와 함께 그의 믿음이 한 단계 높은 단계로 전환하는 계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3. 성령의 인격(웨슬레 성령론의 이론적 이해)
A. 성령의 신성과 인격성
성령의 신성과 다른 두 분으로부터의 발출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성령이 다른 두분과 신성에 있어서 동등하다는 것을 부인하는 어떠한 유니테리안도 반대한다. 영국 개신교의 초기 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성령의 신성을 강조하는데 열정적이
다. 웨슬레는 성령과 관련된 인격성을 나타내는 대명사와 그 이미지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 유사하게 그는 그의 주석에서 “불친절한 행위로써 친구이신 성령이 너희에게서 떠나지 않게 하라”고 경고한다. 아버지에 의해서 시작되고, 아들에 의해서
효력을 발생한 역사적 그리스도의 속죄의 구속적 효력을 가져오는 자로서 성령의 인격적 매개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결정적이다.

B. 삼위일체적 성령의 이해
웨슬레는 그의 설교 ‘삼위일체에 대하여’에서 성서는 삼위일체에 대하여 증언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설교에 의하면 “셋이 된 한 분이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모든 진실한 그리스도교 신앙에 관계되어 있다. 그리고 모든 생명력 있는 종교에서도
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아들을 통해서 우리를 위해서 목적하신 그 무엇을 하셨고(의인), 성령을 통해서 우리 속을 변화시키는 일(성화)을 하실 것이다.
웨슬레에 의하면 성령은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두 사이에서부터 나오는 한 인격이다. 역사적으로 동방교회는 성령을 아버지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온것이라고 고백하였고, 서방교회는 성령은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그리스도로부터 나
온 것이라고 고백하여 왔다. 웨슬레는 이 점에서 분명히 서방교회의 전통에 서 있다. 웨슬레는 오순절 이전과 이후의 성령의 사역을 구분하고 있다. 즉 이전에는 특수한 신자에게 개별적으로 임하였으나 오순절 이후에는 성도 전체에 보편적으로 내
주함으로써 율법시대에는 가능하지 못했던 성화의 영이 주어지게 되었다고 웨슬레는 생각했다. 이로 인하여 성령은 지금 그리스도인들 안에서 그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살고 율법 하에서 가능했던 것보다 더욱 영적인 교훈들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하
는 능력을 부여 받게 된 것이다.
스타키에 의하면 웨슬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각 위격이 각각 다른 고유의 인격으로서의 삶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강조,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각 인격의 상호 침투, 다시 말해서 하나의 인격이 계시는 곳에 다른 두 인격도 함께 계신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웨슬레에게 있어서의 삼위일체 교리 속에서의 성령의 인격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본다

C. 실존론적 성령의 인격성
웨슬레의 삼위일체론에 있어서의 성령의 인격성의 강조는 구원의 체험 속에서 어느사이에 인간의 영혼과 성령이 신비주의적으로 융합하여 하나가 되어 버리는 것과 같은 사상, 곧 인간이 성령을 물건 소유하듯 소유할 수 있다는 사상을 배제하는 것
이며, 인간과 성령이 신앙 체험 속에서 어디까지나 인격적 관계를 유지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웨슬레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선행 은총에 의하여 어느 정도 회복된 그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선물인 자유의지에 의하여 선택되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웨슬레의 이해에 따라면 성령은 인간이 자유의지의 협력을 강제가 아닌 설득에 의하여 획득하는 것
이다. 성령이 회심자에게 임하여 그 인간을 사로잡는 경우에도 성령의 역사는 인간의 협력과 동의를 얻어 역사를 성취한다고 웨슬레는 이해하였다.
성령론을 실존론적으로 이해할 때 역사와 죄에 대한 인간의 책임성을 고려하면서도 성령을 인격적 존재로서 인정하고 서로에게 침투함으로써 전 존재적인 헌신과 사랑의 연합을 이룰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D. 성령 활동의 자의성
웨슬레의 이해로는 성령은 구원의 질서 뿐 아니라 창조의 질서 속에서도 활동한다고 스타키는 주장한다. 선행은총이라는 웨슬레의 사상은 하나님께서 아담의 범죄로 상처 입은 인간에게 어느 정도의 도덕성과 자유의지를 회복시켰다는 것을 의미하므
로 이것을 베푸시는 성령의 직무는 구원의 질서에 속하는 것이다. 선행은총을 부여하는 성령의 활동은 창조의 질서와 구원의 질서를 결합시키는 것이다.
“자연과 은총을 연결시키는 웨슬레의 교량은 준비적 작업이다”. 따라서 성령의 구원의 작업은 웨슬레에게 있어서는 인간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인간성에의추가인 것이다.


E. 성령의 증거
웨슬레 신학의 뚜렷한 특징의 하나는 성령의 증거의 교리이다. 웨슬레는 성령이 우리에게 가져오는 것을 성령이 친히 확실히 한다는 것을 확신한다. 성령의 사역의 모든 국면은 같은 성령의 내적 증거에 의하여 권위를 갖게 된다.

4. 구원에 있어서의 성령의 사역
웨슬레의 구원의 순서를 칭의, 신생, 성화로 구분한다.
웨슬레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성령의 일반적인 사역을 말함에 있어서 ‘영감’이란 용어를 쓴다. 그는 이 영감의 사역을 ‘우리의 연약함을 돕고, 우리의 이해를 밝히며, 우리의 의지를 바로 잡고, 우리를 위로하고 순화시키고 성화 시키는 성령의 내적인 도움’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불어넣는 성령의 사역은 예외 없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절대적으로 필수적이다.

A. 칭의에 있어서의 성령의 사역
웨슬레에 의하면 칭의 즉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죄인이 사실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성화이다. 물론 의롭다 함을 받을 때는 즉시 어느 정도 성화됨이 사실이나 이것은 성화와 완전히 다른 성질의 것이라 하였다.
칭의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그 독생자를 통하여 행해 주신 것을 의미하며, 하나님이 그 영으로서 우리 속에서 해 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칭의란 하나님께 용납되는 은혜라고 할 수 있다. 웨슬레는 이와 같은 칭의의 조건으로서 회개와 믿음을 들고 있다. 이 중에서 믿음은 절대적인 요소이고, 회개와 그 열매는 자동적으로 뒤따르는 부수적인 조건으로 보았다.

i. 믿음
그리스도의 의가 입혀지는 것은 언제인가? 이것은 우리가 믿을 때이다. 믿은때에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에게 입혀지는 것이다. 누구나 믿을 때에 그 즉시로 그리스도의 의가 입혀진다. 그러므로 믿음과 그리스도의 의는 나눌 수 없는 것이다. 성서에 나타난 대로 믿는 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를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의를 떠나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참된 믿음은 없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인 동시에 인간의 행위인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기 전에 성령의 역사에 의하여 선재의 은혜에 응답함으로 하나님께 돌아서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웨슬레는 강조하기를 믿음
은 먼저 사람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강력한 힘과 역사에 의하여 이루어지기때문에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본다.
즉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는 힘’을 주었고, 성령의 힘에 의해서 이 믿음이 우리안에서 움직인다. 그러나 믿는 쪽은 사람이다. 성령이 믿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믿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믿는 다는 것은 성령의 능력이 전제되어 있
는 것이다.
웨슬레는 이 믿음의 중요한 요소를 분명한 신뢰와 신임에 두었다. 이처럼 그는 올더스게이트 체험 이전의 지적 동의로 보았던 믿음의 그 본질이 체험 이후에 신뢰로 변한 것이다.

ii. 회개
의인의 은혜를 받기 위한 조건은 “회개하고 믿는 것”이다. 회개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다. 믿기에 앞서 깨닫는 것, 곧 자아 의식이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회개는 두 가지 종류 또는 단계가 있다. 첫째는 율법적인 회개이고, 두 번째는 복음적인 회개이다. 전자는 그저 죄에 대한 철저한 깨달음이요, 후자는 깨달은 나머지 모든 죄에서 정결한 마음으로 바꾸는 것이다.
의인에 있어서 믿음이 먼저냐 회개가 먼저냐 하는 문제에 봉착할 때 웨슬레는 단연 회개가 앞선다고 말하고 있다.

B. 신생에 있어서의 성령의 사역
웨슬레에 있어서 의인과 신생은 동시적인 사건이다. 시간적으로는 동시이나 논리적인 순서에 있어서 의인이 신생에 앞서는 것 뿐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사람을 의롭게 하시며 동시에 사람 안에서 역사하신다. 의인이 상대적인 변화를 의미
한다면, 신생은 실제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시간적으로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나 그 성격에서 구분된다.
웨슬레는 어떤 순간에 사람의 죄성이 갑자기 완전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는 ‘성결케 하는 영’의 역사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C. 성화에 있어서의 성령의 사역
웨슬레의 강조는 불안한 미래보다는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현재 승리자로서 임재하시고 역사 하시는 하나님께 있었다.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사랑으로 표현될 수 있다. 성화의 본질은 행동하는 사랑이다.
진정한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는것이다.
성화에 대한 웨슬레의 이해에 중요하게 기여하는 근본적인 요소는 성화 시키는 성령의 역사이다. “모든 참된 신앙과 구원의 전 역사, 모든 선한 생각, 말 행위 등 전체가 하나님이 영의 작용에 의한 것임이 확실하다”. 실상 종교개혁에 있어서 강조되지 못했던 삼위일체의 제3위가 웨슬레 신학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음은 명백한사실이다. 웨슬레는 성령을 모든 영적인 생활의 원천으로 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화롭게 되신 후에야 비로소 성령의 성화 시키는 은혜가 참 신자들에게 충분히 주어졌다. 웨슬레는 완전에 대한 자신의 교리가 성경에서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경험을 통해서도 지지 받는다는 것을 알았다. 신자들은 자신이 그
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났다는 성령의 증거를 받아들인 그 때에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성령을 통해 확신할 수 있었다.


5. 결론
올더스게이트 사건은 구원론적 입장에서보다는 오히려 성령론적인 입장에서 볼 때 그 진정한 의미가 드러날 수 있다.

첫째는 웨슬레의 성령에 대한 이론적인 이해이다.
웨슬레는 성령의 체험을 그리스도와 아버지에 대한 체험이라고 생각하였고, 그리스도와 아버지로부터의 발출이라는 전통적인 서방 기독교의 교리를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성령과 나와의 관계를 나-너의 관계 속에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 다시 말하면 신-인 협동의 관계로서 이해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아버지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구원의 업적을 인간에게 구체적으로 적용시키는 분으로서 성령을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이러한 성령의 역사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성령의 역사는 무효하게 된다.
따라서 여기서는 인간의 실존적 결단과 선택이 성령의 역사 하심에 중대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칼빈과 결별하고 있다. 아울러 인간의 현재적인 결단과선택은 성령의 현재성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는 성령의 증거이다.
웨슬레가 올더스게이트의 체험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면 가장 기본적인 것이 성령의 증거의 교리이다. 올더스게이트 사건의 가장 중요한 영향은 이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를 통한 내적 확신, 그리고 그를 뒤이은 성령의 열매이다. 이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를 통한 내적 확신의 결과로 솟아나는 내적 기쁨과 평화, 사랑은 삶의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긴 하지만 근원적으로는 변하지 않는 성질의 것이다.

셋째는 논쟁의 초점인 웨슬레 신학의 뼈대에 관한 문제이다.
구원론 중심으로 파악을 할 것인가? 아니면 성령의 활동을 중심으로 파악을 할 것인가? 웨슬레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성령의 경험적이고 활동적인 사역에 중점을 두고 이해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참고문헌
웨슬리 복음주의 협의회. [웨슬리 복음주의 총서 제1집] 1992
이성주. [웨슬리 신학] 1991
이종성. [성령론] 1984
조종남. [요한 웨슬레 신학] 1993
한영태. [웨슬레의 조직신학] 1996
콜린 윌리엄즈, 이계준 역. [존 웨슬리의 신학 – 현대적 의의] 1990
폴 믹키, 라영복 역. [웨슬레 신학의 요점]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