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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의 두 기둥

에반젤(복음) 2020. 2. 14. 11:15



십계명의 두 기둥

 

막12:28-34

솔로몬이 예루살렘성전을 건축할 때 성전앞 현관의 양쪽에 기둥을 세웠는데 오른쪽에 야긴 왼쪽에 보아스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기둥의 꼭대기에는 백합형상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솔로몬의 백합이라고도 합니다.

야긴은 하나님이 세우셨다는 뜻이고 보아스는 그안에 능력이 있다는 뜻인데 아마도 솔로몬은 자기가 세운 성전은 하나님이 세우셨고 하나님의 능력이 성전안에 있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백합형상은 희색의 트럼펫주둥이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흰색은 거룩함을 상징하고 트럼펫은 선포한다는 의미가 있으므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선포하는 성전이 예루살렘성전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성전을 통해 부귀영화를 이룩했지만 하나님의 거룩함을 선포하는데에는 실패했습니다.

왜냐면 이방여자들을 왕비로 맞이하고 이방의 우상들을 성전에 세워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솔로몬이 세운 성전을 지켜주지 않으시고 바벨론의 침략에 멸망케 되었습니다.

여기 본문에 보니 서기관 하나가 예수님에게 와서 모든 계명중에 첫째되는 계명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두가지를 말씀했는데 첫째는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는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모든 것을 걸고 사랑하신 분이 예수님이시고 이웃을 위해 자기의 몸을 내주신 이가 예수님이십니다.

이 두가지가 하나님이 주신 모든 율법의 두 기둥이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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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첫째계명​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마음( καρδία  heart)은 심장인데 감정의 좌소입니다.

목숨( ψυχή breath)은 숨 호흡을 말합니다.

뜻( διάνοια through thought)​은 생각의 처음부터 끝까지입니다.

​힘( ισχύς strength)은 정신력 체력 근력을 다하여 라는 뜻입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을 사랑할 때 감정과 호흡과​ 온 생각과 체력 정신력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는 목적도 공부하는 목적도 일하는 목적도 결혼하는 목적도 먹고 마시는 목적도 죽는 목적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쁨도 즐거움도 다 하나님을 사랑하는데서 와야하고 ​1분 1초 매 분초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젖먹던 힘까지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와! 과연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과연 사람이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매분 매초마다 하나님만을 향하여 살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몰라도 너무나 모르는 것같습니다.

마치 아내가 남편더러 1년365일 하루24시간 분초마다 자기만 바라보고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만 사랑해달라고 하는 것이나 다를바가 없습니다.

하루에도 12번마음이 바뀌고 1분안에도 수없이 다른 생각들을 하는데 어떻게 오직 하나님만 생각하며 살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그렇게 살수 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는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죄짓기 전에 입니다.

그 때는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거니시며(창3:8) 항상 아담과 하와와 대화하시며 함께 하셨습니다.

즉 동거하신 것입니다.

한 울타리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사셨던 것입니다.

죄가 없었을 때에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생각을 알수 있었고 하나님도 당연히 아담과 하와의 마음을 알수 있었습니다.  ​

​사65:24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된 때는 인간이 죄를 짓기 전과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갔을 때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실 때 매분매초마다 교제하시며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인간의 뜻이 되고 하나님의 기쁨이 인간의 기쁨이 되고 인간의 뜻과 기쁨이 하나님과 완전히 일치된 완전한 삶을 살도록 하나님은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와가 뱀에게 한눈을 팔고 죄를 짓고난 후에는 하나님과의 소통이 완전히 단절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단절된 소통을 열기 위해 수많은 말씀과 선지자들과 이적과 기적을 보내셨고 마지막으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몸으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인간으로서 하나님과 완전한 교제와 소통을 이루시고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의 뜻을 100%일치하심으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린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잃어버린 첫째 계명 즉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으로써 다시 회복하신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한시 한순간도 세상의 다른 것에 한눈팔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생각하시고 교통하시며 마지막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루지 못한 가장 큰 첫째계명을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이룰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대신 이루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이름을 믿고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은혜를 구하면 육신으로 이루지 못한 첫째계명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의인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라는 계명은 죄없는 거룩한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100%사랑하면 우리는 하나님처럼 완전힌 거룩에 이르게 됩니다.

온전한 거룩함은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않지만 그리스도의 공로로 되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는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지고 하나님앞에 의롭다함(거룩함)을 얻게 됩니다.

사람이 율법을 다 지켜야 의롭게 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데 우리가 지키지 못하는 부분은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받음으로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있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롬 8: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영을 따르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도움을 받아 힘을 다해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하지만 만일 부족하다면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아직 육체적으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육체로 100%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이로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때부터 그렇게도 원하시던 마음과 뜻과 목숨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가장 큰 두번째 계명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웃은 내가 아닌 타인을 말합니다.

가깝게는 가족 즉 남편이나 아내 그리고 자녀들 부모형제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웃은 우리주변이 있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나 외에 다른 사람을 내 몸 아끼듯이 내 몸 생각하듯이 내 몸 소중히 여기듯이 내 몸 아프듯이 내몸 보살피듯이 똑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내 몸이 50을 돌본다면 이웃의 몸도 50만큼 돌보아야 합니다.

내 몸을 100으로 여긴다면 이웃의 몸도 100으로 여겨야 합니다.

​이것은 내 가족들에게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내 옆에 가까이 있는 부모 형제 아내나 남편 자식들에게조차 할 수 없는 비율입니다.

그런데 내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이 이웃사랑의 황금비율인 1:1을 적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바울은 ​롬 5:7에서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라고 했습니다.

타인을 위해서 죽는 사람이 아주 간혹있지만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말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타인을 위해 죽는 사람을 의인이라는 칭호를 줍니다.

세월호때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일본 신주쿠에 있는 지하철 역에서 술취하여 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다가 숨진 김수현이라는 사람은 지금도 일본에서 의인칭호를 받으며 일본인들에게 신으로 추앙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러한 의인이 아주 드물게 희귀하게 있기는 하지만 이들은 순간적으로 선한 의지력에 의해 되어진 행동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은 단한번 또는 여러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그러한 마음으로 즉 이웃사랑의 황금비율을 행하며 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한 두번 또는 여러번은 이웃을 내몸처럼 생각하며 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삶을 통해 이웃을 내몸같이 여기며 사랑하는 것은 정말 불가능한 일입니다.
역시 이 일도 그리스도께서 대신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영광된 자리를 버리시고 비천한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오직 이웃들(죄인들)을 위해 평생을 사셨고 마지막에는 죄인들(이웃들)을 위해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조롱하는 자들을 바라보시며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눅 23:34)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웃을 자신의 몸보다 더 사랑하신 삶을 사셨던 것입니다.

가장 큰 두번째 계명도 예수님이 이루어주셨으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공로로 이 두번째 계명을 이룰 수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혹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지 않고 이기적인 행동을 했을 때는 곧 하나님에게 회개하며 이웃에게 용서를 구하고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힘입고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못한 죄는 당연히 하나님앞에 가서 죄를 고해야 하지만 우리가 사랑하지못한 이웃에게도 화해를 청하고 용서를 구해야 그 죄가 온전히 사함받을 수 있습니다.

이웃에게 선을 행하지 못하고 악을 행하고서는 하나님앞에 가서만 회개하고 상처받은 이웃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도 용서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웃과 어그러진 관계에 있을 때 우리가 이웃에게 용서를 빌기도 하고 용서를 구하기도 하면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이루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셨으니 이웃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오만하며 불신앙과 같습니다.

​마5:23-2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두 기둥의 꽃 백합과 나팔(트럼펫)

예수님의 말씀에 서기관은 응답을 했는데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라고 했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제물보다 낫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서기관은 유일하신 하나님 신앙이 진리(참)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마귀의 계략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섬겨서 하나님의 진로를 사서 지옥에 가게 하려는 마귀의 속임수가 우상숭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인간사이를 이간질하려고 마귀가 속임수로 만든 우상을 우리가 하나님처럼 숭배하는 것을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십니다.

거짓된 우상을 섬기지 않고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이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몸처럼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앞에 나오는 것이 과거에 이스라엘백성들이 성전에 드렸던 수많은 번제와 제물들보다 훨씬 낫습니다.

낫다( πλείων  )는 것은 탁월하다( more excellent  )는 뜻입니다.

아벨은 양을 잡아 드림으로 가인이 드린 예물보다 더 나은( πλείων more excellent ) 피의 제사( θυσία
)를 드렸다고 히11:4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드리지 못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루셨으므로 그리스도의 피를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에게 구약의 제사보다 탁월하고 우수한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서기관이 탁월한 제사가 곧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 것임을 알았는지 모르는지 잘 파악이 안되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동의한 것만으로 예수님은 서기관에게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예수님은 서기관의 대답에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서기관이 천국에 들어가기가 쉬워졌다는 뚯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믿고 그를 영접하여 본을 삼아서 살면 율법을 이루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는데 그것은 성전현관에 있는 큰 두기둥때문이었습니다.

​백합과 나팔의 형상을 한 두 기둥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의 실현입니다.

백합은 거룩함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우상숭배와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이룬다는 뜻입니다.

나팔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선포하는 것이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웃사랑의 선포중에 가장 귀한 것은 사랑을 실천하므로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사랑을 실천하므로 확실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세워놓은 기둥의 백합과 나팔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이루시고 그 의를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돌리셨습니다.

고전 3:16 "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성전에 두 기둥을 세웠습니다.

하나님사랑(믿음)과 이웃사랑(전도)의 기둥입니다.

그 기둥에는 백합과 나팔이 새겨져 있습니다.

백합과 나팔은 거룩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우리의 성전에 새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거룩함과 이웃사랑이 가득한 성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이름으로 모든 것을 걸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거룩함의 백합이며 이웃사랑으로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거룩함의 나팔(트럼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