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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십계명을 올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에반젤(복음) 2020. 2. 14. 10:57



십계명을 올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의 대표적인 헌법이라고 한다면 십계명을 꼽는데 그 어느 누구도 언급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성경이나 찬송 표지 안에 제일 첫 번째로 기재되어 있다. 이로 인해 기독교를 제일 먼저 접하게 되는 경우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십계명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준엄한 법칙으로만 이해하고 일부 교회에서 암송하도록 권하고 있다.

 

첫 번째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내게 두지 말라는 말씀은 예배의 대상은 오로지 하나님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 안에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상징하거나 목표를 정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예배하는 것이 된다. 즉 하나님과 한 몸이 되어야 하는데 다른 것에 지배되거나 연합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산상보훈 (마 6:24)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라”고 한 것처럼 내 안에 ‘나’라는 주인이 되지 말라.

 

두 번째는 우상을 만들지 말며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고 절하지도 섬기지 말라는 경고는 외형적인 우상이나 형상뿐만 아니라 내면적인 본인의 성격인 고집을 피우지 말라는 것이다. (삼상 15:23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 롬 2:5 시 7:12~13, 골 3:5) 사람은 누구든지 고집을 갖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피운 고집을 끌고 갈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괜히 고집을 피우는 것이 바로 주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다.

 

오직 그 나라와 그 의만 구해야 되는데 이것에서 벗어나서 다른 것을 구하는 것조차도 우상숭배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기도 외에 기도제목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상숭배를 하는 기도가 된다.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예배의 방법과 정신은 오로지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4:24에 신령과 진정으로 번역되었는데“성령 안에서 그리고 진리 안에서”예배해야 한다.

 

세 번째는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는 뜻은 하나님의 실체를 보여주지도 못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난발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내가 연합되어 있는 것을 보여주지 못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부르고 있는지 하나님 아버지가 내 안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엉뚱한 곳에 가서 하나님을 찾는 상황이 고아며 남편 되시는 하나님이 내 안에 신랑 되시는 예수께서 내 안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딴 곳에서 찾고 있는 과부들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존재성과 정체성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거리면서 설교하거나 증거 하지 말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예배의 태도를 가지라는 말씀이다. 주기도문에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는 문장은 동사 명령법 부정과거 능동태의 문법상“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는 뜻을 갖고 있다. (마 6:9)

 

네 번째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되어 있는데 원어에서는“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 기억하라”는 의미로 되어 있다.“솨바트”(tB'V;)라는 안식이라는 단어는 안식, 휴식이라는 의미도 있지만‘정착’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하나님 안에서 말씀으로 정착되어 가는 것을 거룩한 상태이며 그것을 기억하면서 예배의 시간이 어느 날로 정해져 있지만 항상 하나님을 기억하며 정착하는 순간이 바로 예배의 시간이라는 것이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이 바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마 6:33)

 

다섯 번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인데 육신의 부모도 공경해서 약속 있는 첫 계명을 지켜야 한다.(마 7:11) 위에 제시한 4 가지 계명을 준행하는 것도 바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이 이 세상을 의미하지만 내 마음의 바탕을 의미한다면 하나님과 함께 경작해가는 삶을 장수한다는 것도 오랜 시간을 의미하지만 지금 현재 순간에 큰 보람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다.

 

즉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으로 인한 만족도가 얼마나 되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이다. 이런 예배의 충족은 내가 느낄 수 있는 면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충족의 은총은 시간과 질량을 따질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을 인간의 머리와 방법으로 측량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여섯 번째는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은 예배의 존중하는 생명을 함부로 경시하지 말라는 뜻이다. 나 외에 다른 생명을 존중하는 표현도 있지만 본인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져가는 가운데 지속되어져야 하는데 지속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것이 바로 자신을 살인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져야 하는데 만들어지지 못함으로 인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마저 죽이는 일을 자행하고 있다. 하나님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살인하는 것이다. 말씀의 칼을 갖고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난도질하며 하나님의 강탈한 것이 바로 살인한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다면 미워하면 안 된다.(마 5:22)

 

일곱 번째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도 육체적으로 남의 여자와 관계를 갖지 말아야 하는 것도 물론이지만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도 간음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신성한 결혼을 하시기를 원하는 것이 성경 전반에 깔려있다. (사 54:5, 62:4,5, 렘 3:14, 호 2:19, 20, 말 2:11) 예배는 하나님께 함께 하는 신성한 결혼식이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면 못할수록 육체적인 간음으로 전락할 수 있는 경향이 너무나 많다. 따라서 간음은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마 5:28)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간음하는 것은 변절자를 의미한다.

 

여덟 번째는 도적질 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남의 물건도 훔치면 안 되지만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것도 더 더욱 안 된다는 뜻이다. 예배에 바칠 신성한 제물을 훔친 것과 병들어 저는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 하나님 앞에 갖고 온 것이다. (말 1:13) 아간처럼(수 7장) 사울 왕처럼(삼상 15장)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행 5장) 행한 것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해 놓고 이렇게 해줬으면 하는 대가를 상상하는 것조차 도적질이라고 전했더니 반발하는 목회자도 있었다.

 

어느 선교사가 자신의 임기를 다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오는 데 자기 나라에 대통령이 사냥하고 돌아오는 배에 동승하게 되었다. 도착된 항구에는 대통령을 환영하는 인파가 가득한 것으로 보고 낙심되어 있었다. 그날 밤 꿈속에서 똑같은 상황이 재현되었는데 선교사를 환영하는 하늘나라 장면을 보여주면서 세상에는 사냥 갔다 온 대통령을 환영하지만 아무런 대가없이 오히려 자신의 건강을 잃고 가족을 잃어버리며 피폐한 채로 주의 일을 감당한 선교사를 하나님의 나라에서 대환영한 것을 본 후로 선교사는 주의 일에 대한 대가를 추구하지 않으며 복음을 전하며 살아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주의 일은 거창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기독교가 언제부터 거창한 것으로 너무나 좋아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최선의 것으로 추구하시지 최고의 것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거창한 것으로부터 탈출해야만 세상으로부터 비판받지 않는다.

 

아홉 번째는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는 말씀은 이웃이 누구인가? 마태복음 25장에 주리거나 목마를 때, 헐벗었거나 병들었을 때, 옥에 갇혀 있는 존재가 누구인가? 주님의 존재성을 모르고 있는 상태가 바로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병들었으며 옥에 갇혀 있는 상황에 있는 존재가 바로 나의 이웃인 것이다. 그들에게 양의 탈을 쓰고 접근하여 가짜 주님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이 바로 거짓 증거 하는 것이다. 산상보훈 마 5:33~37에 보면 헛맹세를 하지 말라는 내용이 있다. 하나님 앞에서 맹세코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하는 것과 일맥상통한 뜻이다.

 

예배의 성결한 언어는 다른 것이 아니다. 성경에 나오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모두 다 진짜 증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이다. 성경 속에 있는 올바른 개념과 의미를 모른 채 증거하고 있는데도 진짜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을 가르친다고 해서 진짜를 얘기하는 줄로 착각하게끔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는 말씀은 이웃이 소유한 모든 것을 탐내지 말라는 의미도 맞다. 그러나 이웃의 집은 다름이 아니라 주님의 집인데 그 안에서 주님과 한 몸이 된 것을 탐내지 말라는 말씀이다. 즉 내 안에 주님과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다른 동료들에게는 나보다 먼저 이루어진 것을 부러워하지 말라는 뜻이다. 나보다 늦게 주님을 알게 되었는데 나보다 나중에 주님을 만난 이웃이 나보다 월등하게 신앙생활을 하거나 주의 일을 하는 것을 보고 탐을 내지 말라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분량에 감사해야 하며 예배의 제한적 소유에 대해 하나님 앞에 항거하지 말라는 뜻이다. 마태복음 20장에 나오는 포도원의 품꾼들처럼 몇 시간 일했느냐에 따라서 대가를 준 것이 아니라 시간과 상관없이 한 데나리온을 준 것은 주님과 함께 일함으로 인해 주님과 한 몸이 이루어진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좀 더 쉽게 말한다면 본인은 어렵게 하나님의 말씀을 접근하여 깨달은 반면, 본인의 강의를 듣는 분들은 너무나 쉽게 말씀을 접하게 됨에 따른 괴리감을 가졌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허락하신 제한적인 소유라고 한다면 전하지 않아도 내 할 일을 다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함이 내 안에 가득함 뿐이다.

 

이렇게 십계명에 대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했지만 아마 더 상세하게 한다면 몇 권의 책으로 나열해야 될지 모른다. 십계명은 예배에 대한 정신과 목적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예배는 프로스퀴네오(proskunew)라는 단어로 프로스(proj)라는 단어는“누구누구를 향하여”는 의미로 퀴네오(kunew)“입 맞추다”라는 단어의 합성어로 하나님을 향하여 입을 맞추는 것이 예배라는 의미인데 동서양에서 언어가 없어도 통하는 것이 KISS라는 단어인데 하나님의 얼굴과 나의 얼굴을 합쳐지는 것이 예배라는 의미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형상과 나의 형상을 연합되어 있는 상태가 예배라는 개념 속에 십계명은 하나님과 연합되기 위한 계명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사상과 정신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으로 십계명을 깨닫고 접한다면 하나님에 대해 올바르게 알아갈 것이다.

 

필 자 / 이준호 목사

(창골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