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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과 예언(고전14:1-5)

에반젤(복음) 2019. 12. 15. 20:28



           

오늘 본문에 141절을 보면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신령한 것은 성령의 은사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모든 성령의 은사는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합니다. 사랑이 동기가 되어서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성령의 은사를 사모해야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방언의 은사보다 예언의 은사를 사모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예언의 은사는 단순히 미래에 될 일을 점치는 듯이 내다보면서 말하는 은사가 아닙니다. 여기서 예언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현재를 밝힘으로서 미래를 내다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언의 은사는 미래가 초점이 아니라 현재가 초점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그 사람의 현재를 밝히게 되면 그 사람의 미래를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성경에서 하나님은 교만한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과연 교만한지 겸손한지 잘 알고 있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겸손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겸손하니 앞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높이실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예언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겸손이 무엇인지 교만이 무엇인지 밝힙니다. 성경에서 교만이란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어오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교만이란 사람의 말도 잘 듣지 않는 것입니다. 또 교만이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현재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말씀을 통해서 교만한 자인 것이 밝혀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미래에 그 사람을 치시거나 낮추실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에 겸손한 사람은 비록 어렵고 힘이 들어도 말씀을 통해서 미래에 하나님께서 높여주실 것을 바라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언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현재를 밝힘으로서 미래를 내다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예언의 은사란 말씀의 은사입니다. 이렇게 현재를 밝힘으로 미래를 내다보다는 예언의 은사는 3절에 보면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웁니다. 여기서 덕이란 건설하여 세운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만이 그 사람을 굳건하게 세울 수 있습니다. 또 예언의 은사는 그 사람을 권면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잘못된 것이 있으며 바로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또 예언의 은사는 그 사람이 어렵고 힘들 때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방언의 은사보다 예언의 은사, 말씀의 은사를 사모해야합니다.

그런데 방언의 은사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유익을 줍니다. 그런데 방언은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과 교회에 덕을 주지 못합니다.

그리고 6절부터 방언이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7. 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8.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9.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그리고 결론적으로 19절에서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은사를 사모하되 방언보다 하나님의 말씀의 은사를 사모하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교회에 덕을 줄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