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사도행전 강해

베드로와 바울의 비교

에반젤(복음) 2019. 10. 3. 19:17

드로와 바울의 비교



사도행전 12:25에서 누가의 문학적 관심은 베드로에게서 바울로, 유대 그리스도인 교회에서 이방 그리스도인 교회로 옮아간다.


이 두드러진 전환점을 거치며 사도로서의 바울의 신분과 역할은 그동안 해왔던 베드로의 사역과 병치되고 있다.

 


베드로

바울

날 때부터 앉은뱅이인 사람을 고친다(3:1~10).
그림자만 덮여도 사람들이 낫는다(5:15~16).
성공하자, 유대인들이 질투한다(5:17).
마법사 시몬과 대결한다(8:9~24).
다비다(도르가)를 살린다(9:36~41).
투옥되었다가 기적적으로 풀려난다(12:3~10).

날 때부터 앉은뱅이인 사람을 고친다(14:8~18).
손수건이나 앞치마만 얹어도 낫는다(19:11~12).
성공하자, 유대인들이 질투한다(13:45).
마법사 바예수와 대결한다(13:6~11).
죽은 유두고를 살린다(20:9~12).
투옥되었다가 기적적으로 풀려난다(16:25~34).


사도행전에 나오는 교회

 



1) 안디옥교회
안디옥은 오론테스 강변에 위치한 시리아의 한 도시로 옛부터 무역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헬라 문화가 교류되는 중심지였다. 스데반이 순교한 뒤 예루살렘에 박해가 시작되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흩어지게 되는데, 그중 안디옥으로 도피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처음에는 유대인들에게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11:19), 나중에는 헬라인에게도
전한다. 안디옥에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자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파송하여
이들을 지도하게 했고, 나중엔 바울도 함께 1년 동안 사람들을 가르쳤다. 안디옥 교회는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별칭을 듣게 된 곳으로(11:26), 기근으로 고통당하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헌금을 했고(11:27~30) 최초로 이방 선교를 시작했던(13:1~3) 곳이다.
또한 이방 출신 신자들은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며
바울과 바나바를 대표로 예루살렘에 파송하기도 했다(15:2).



2) 에베소 교회
에베소는 아시아에 있는 상업과 종교의 중심지다. 남쪽에 밀레도, 북쪽에 서머나를 끼고 있는
매우 거대한 항구 도시이면서 아시아 무역 항로의 종착지였다. 신약 시대에 에베소에는 유대인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다(18:19). 에베소를 방문한 바울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이곳에
남겨 두고 떠났다(18:18~21). 바울은 3차 전도여행 때 이곳에서 2년간 머물렀는데, 처음에는
회당에서 가르치다가 나중에는 두란노 서원에서 가르쳤다(19:8~10). 바울은 이 도시를 아시아
지역의 전도 중심지로 삼았으며, 여기서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썼다(고전 16:8).
그리고 바울이 행한 설교 때문에 아데미 숭배자들의 폭동이 발생하기도 했다(19장).
바울은 에베소를 떠날 때 그곳에 남겨 둔 디모데에게 복음 전도 사역을 부탁했는데, 후에
그에게 보낸 편지들을 보면 그곳 교회가 성장했을 알 수 있다(딤전 1:3).

이방인의 회심에 대한 논쟁(행 11:1~18)

베드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고넬료의 회심 사건에 대해 알린다. 그런데, 베드로가 전도 사역
중에 이방인과 식탁교제를 했다는 것 때문에 곤경에 처한다. 이는 아직도 비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할 공동체적 근거가 준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베드로는 고넬료의 회심과 관련된
자신의 모든 경험을 그들에게 증거하고 이방인에게도 성령을 허락하심을 증거했다.
고넬료의 회심 사건은 하나님이 고안하신 이방 선교를 향한 불씨가 되었던 것이다.

 


신적

환상

신적명령

신적준비

신적행동

반응

11:5~10

11:11~12

11:13~14

11:15~17

11:18 

기도 중 환상

성령의 명령

성령의 명령

성령의 강림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충돌,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행 12장)

사도행전 12장에 들어서면, 복음이 확장되면서 부딪히게 되는 필연적인 장벽을 만난다.
바로 세상으로부터의 구체적인 핍박이다. 예루살렘 교회에 맹렬한 핍박의 바람이 불어왔고,
이로 인해 요한의 형제 야고보가 순교하게 되며 베드로는 투옥을 당한다. 복음의 승리와 함께
적극적 반대가 서로 교차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얼마 후 야고보는 순교를 당하고
베드로는 성도들의 기도로 풀려난다. 이 모든 일을 지시했던 헤롯이 하나님의 징계로 죽은
사건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사탄의 반대에도 결코 무너지지 않음을 보여 주고 있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興旺)하여 더하더라”(12:23~24).

 


충돌,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행 12장)


바울의 전도여행, 교회의 확장

사건

  이방   선교의
여행

1차 전도 여행

예루살렘 공회

2차 전도여행

3차 전도여행

본문

13:1-3

13:4~14:28

15:1~35

18:23~21:17

시기

AD 48

AD 48~49

AD 49~50

AD 53~57

이동거리

1,400마일

560마일

2,800마일

2,700마일

의미

안디옥 교회

이방인을 향한 본격적인 선교

이방인 신자를 위한 네 가지 금칙 제정

유럽 선교의 시작

에베소에서의
두란노 서원
사역,고린도에서
겨울을 보내며
로마서 집필

등장인물

바울과 바나바

바울과 바나바(마가 요한)

바울과 바나바 베드로와
야고보

바울과 실라, 누가, 디모데

바울, 누가, 아굴라, 브리스길라, 아볼로

관련서신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
전후서

고린도전후서
로마서


* 이동거리는 바이젤(Beitzel)이 계산한 것으로, 직선거리를 재는 항공마일로 계산했다.
..1마일=1.6093km
* 갈라디아서의 기록 연대에는 AD 48~49 또는 55~57 두 가지 학설이 있다.


제1차 전도여행(행13:4-14:28)
안디옥 → 실루기아 → 구브로의 살라미 → 바보 → (배타고) → 밤빌리아의 버가(마가의 귀향)
→ 비시디아 안디옥 → 이고니온 → 루스드라 → 더베 → 루스드라 → 이고니온
→ 비시디아 안디옥 → 버가 → 앗달리아 → (배타고) → 안디옥.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 최초의 교회로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여 첫 선교사를 파송한다.
그 선교사들은 바로 안디옥 교회의 설립자들인 바나바와 바울이었다. 이것은 이방 선교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 준다. 바나바와 바울은 조력자인 마가 요한을 데리고 실루기아로
내려가 거기서 배를 타고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Cyprus)로 갔다(13:4). 구브로의 살라미
(Salamis)에서는 주로 유대인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후(13:5), 섬을 가로질러서
구브로의 수도인 바보(Paphos)로 가서 서기오 바울이라는 총독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그 과정에서 유대 마법사 바예수(Bar-Jesus)와 대결한다. 이곳에서 대성과를 거두고 구브로를
떠나 비시디아 안디옥(13:14), 이고니온(14:1), 루스드라(14:8) 그리고 더베(14:20)로 간다.
돌아올 때는 왔던 도시들을 다시 방문하여 교회들을 굳게 했다. 그중 구브로 섬만 들리지 않고,
배로 안디옥으로 돌아와 교회 앞에 선교 보고를 했다(14:27).

수리아 안디옥, 비시디아 안디옥
안디옥 → 다소 → 더베 → 루스드라 → 비시디아 안디옥 → 드로아 → (배타고) → 네압볼리
→ 빌립보 → 데살로니가 → 베뢰아 → (배타고) → 아덴 → 고린도 → 겐그레아 → (배타고)
→ 에베소 → (배타고) → 로도 → (배타고) → 가이사랴 → 예루살렘 → 안디옥

1차 전도여행에서 다녔던 곳을 다시 방문하며 믿음을 굳게 하려고 했던 바울과 바나바는 2차
전도여행을 계획한다. 그러나 마가의 동반 문제로 바울과 바나바는 결별하고 바울은 실라를
택하여 2차 전도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더베와 루스드라에 이르러 거기서 디모데를 영입한다.
성령이 (소)아시아에서의 바울의 사역을 막으시고, 오히려 밤에 환상으로 바울을 마게도냐로
부르신다(16:1~10). 제1차 전도여행의 주 무대가 소아시아 지역이었다면 제2차 전도여행은
유럽의 관문인 마게도냐 지역이었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바위섬)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게 된다(16:11~12).
당시 240킬로미터나 되는 길을 이틀 만에 도착할 정도로 순풍이 불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나아갈 때 열린 길이 있다.

인간과 하나님의 협주곡
1차 전도여행을 마친 뒤, 바울은 1~2년 동안 새로운 전도여행을 구상해 왔다. 그리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소아시아 지방을 2차 전도여행의 목적지로 선정한다. 이는 1차 전도여행 때
갔던 교회들을 다시 방문하여 그들을 “굳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성령은 바울의 발걸음을
두 번이나 막으시고(16:6~7),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통해 오늘날의 유럽으로 전도여행의 방향을
선회 시키셨다.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고 성령의 인도를 따른 바울의 순종에 의해 빌립보에
교회가 세워지고, 유럽의 복음화가 시작되었다.

자신의 계획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15:36) → 성령의 막으심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16:6) →
자신의 계획 2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16:7) →
성령의 막으심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16:7) → (좌절, 절망) →
마게도냐인의 환상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16:9) →
하나님의 계획 수용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16:10) → 순적한 일정 → 빌립보 교회 개척

제3차 전도여행(행 18:23~21:17)
안디옥 → 다소 → 이고니온 → 에베소 → 미둘레네 → 앗소 → 드로아 → (배 타고) → 빌립보
→ 데살로니가 → 베뢰아 → 고린도 → 베뢰아 → 데살로니가 → 빌립보 → (배 타고) → 드로아
→ 앗소 → 미둘레네 → (배 타고 기오와 사모를 거쳐) → 밀레도 → (배 타고 고스와 로도를 거쳐)
→ 바다라 → (배 타고) → 두로 → 가이사랴 → 예루살렘

박해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교회로 하여금 기도와 찬양으로 이끌었다. 그 결과 교회는 박해 속에서도 더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된다.

바울의 세계비전(행19:21)
안정된 기반을 잡으면 그것으로 평생을 누리며 살고 싶은 것이 모든 사람의 바람이다.
그러나 복음의 첨병이었던 바울은 에베소에서의 3년간의 사역을 마무리하며 마음속에 품고
있던 세계 비전을 다시 끄집어 낸다. 그는 이제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했고, 또한 거기에서 로마를 방문할 것을 계획했다(19:21). 그리고 로마를 지나 서바나까지
나아가고자 하는 비전을 선포한다(롬 15:23, 28).
당시 로마는 세계의 중심, 제국의 심장부였으며, 지금의 스페인인 서바나는 세상의 끝이었다.
주님의 지상명령에 사로잡혀 있던 바울은 진정한 ‘비전의 사람’이었다.

밀레도에서의 고별설교(행 20:17~38)
바울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류하는 예루살렘 행을 강행하며,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장로들을 청했다(20:17). 도착한 이들에게 바울은 그 유명한 고별설교(18~35절)를 했다.
바울의 고별설교는 에베소에서 그가 행한 과거의 눈물어린 사역을 언급함(18~21절)과 동시에
미래가 불확실한 자신의 운명과 그에 대한 각오(22~27절), 그리고 장로들에 대한 현재적
권면(28~35절)으로 이어졌다. 에베소를 향한 유언과도 같은 바울의 고백과 부탁이다.



주제

구절

핵심어

의미

과거 자신의 사역

18~21절

“너희도 아는 바니”

자신의 에베소에서의 목자 생활에 대해 회고한다.
 

미래의 운명과
각오

22~27절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예루살렘으로 가는 자신의 미래는 불투명하지만 각오와 삶은 굳다.

교회를 위한 현재적 권면

28~30절

“삼가라”

바울은 장로들에게 목자로서의 사명을 일깨워 주고 있다.

자립정신과

주는 생활

31~35절

“기억하라”

자신의 본을 따라, 탐하는 생활을 금하고 섬김의 삶을 도전한다.



바울의 당부 이후에 그들은 함께 기도하며 헤어진다. 참으로 아름다운 교회 지도자들의 모습이다.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저희 모든 사람과 함께 기도하니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을 인하여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20:36~38).



복음에 대한 수용과 거절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서는 언제나 두 가지 반응이 일어난다. 베드로가 전한 복음과 스데반이
전한 복음이 동일했음에도 그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복음이 전해 지는 곳마다 “마음에 찔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2:37)의 수용적 반응(reception) 과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7:54~58)의 거절적 반응(rejection) 이다.
이 둘 사이의 절충은 없다.
이러한 수용과 거절은 바울이 다녔던 3차의 전도여행 내내 동일한 결과를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