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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다시 새롭게, 다시 거룩하게

에반젤(복음) 2026. 1. 10. 10:58

요한계시록 21 1~ 5/ 다시 새롭게, 다시 거룩하게

하나님은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이 세상의 삶과 하늘나라의 삶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2025년도로 끝나지 않고 2026년도로 새롭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2026년이라는 새로운 한 해의 첫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신년 주일 예배로 드립니다. 오늘은 어제 인생을 마감한 분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새날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살아 있어야 할 이유와 사명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며, 내가 살아 있음을 기뻐하며 살아있음을 즐거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 고백을 드려야 합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를 건강한 교회 행복한 성도로 정하였습니다. 건강한 삶이 이루어져야 행복한 삶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행복이란 사람이 생활 속에서 기쁘고 즐겁고 만족을 느끼는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은 기쁘고 즐거운 삶의 만족을 느끼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러한 감정은 개인마다 다르고 환경에 따라 다르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하다고 하는 기준이 단순히 물질의 풍요나 세상의 권위를 지진다거나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서 행복하다도 말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심리적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통해서 얻어지는 기쁨과 만족을 누리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행복은 자신이 하나님을 만난 기쁨을 얼마나 진실하게 고백하고 자신과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증거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만족한 삶을 누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지적 행복론의 저자 리터드 이스털린은 행복의 정도는 언제나 나한테 있는 것 내가 버리는 것 사이의 차이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합니다. 가지고 있는 것과 가지고 싶어하는 것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많이 가질수록,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 적을수록. 행복 수준이 높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 변하지 않으면, 당신이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행복 수준이 높아집니다. 그러나 당신이 가진 것이 변하지 않았는데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 많아지면 행복 수준은 낮아집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불행은 절제 없는 욕망에서 나온다라고 말합니다. 행복은 더 많이 가져서 얻어지는 것보다 줄여서 얻어지는 행복이 크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많은 것을 바라며 상대적인 결핍을 경험하는 것보다 작은 것을 소망하면서 얻어지는 사소한 행복이 많은 사람이 더 행복한 삶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얻을 수 없는 것을 얻겠다고 욕심을 부리는 순간 우리의 행복은 멀리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하고 다른 사람하고 비교하기를 그치면 행복해집니다. 충분함과 모자람의 기준은 언제나 상대적입니다. 남하고 비교하거나 과거의 나와 비교하여 결정하려고 하는 순간 나는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건강과 가정생활은 옛날의 자신과 비교하지만, 연봉이나 부동산 같은 경제 상황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변 상황을 따라가려고 하기보다는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행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해 자기 위해서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회복탄력성이란 인간이 시련을 극복하는 힘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내가 성장할 기회로 삶는 사람은 행복한 삶이 감사의 삶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믿음을 갖는 것도 행복의 좋은 방법입니다. 인간은 협력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것입니다. 바꿀 수 없다면 잊는 것이 행복합니다. 괴로운 기억을 최대한 잊고 행복한 일을 기억하려고 애쓰는 것, 그 노력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과거의 행복 경험에 크게 집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에 행복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불행한 일을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 역시 행복을 방해합니다. 우리가 가진 불편한 기억을 잊어버리고 오늘의 현실에서 찾아오는 행복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즐겁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사람입니다.

행복한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건강하고 튼튼한 육체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강건해야 하고 거룩해져야 하고, 거룩해지려면 새로워져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기독교 종말론의 약속이 담긴 말씀입니다. 창세기에 천지창조 기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다면, 요한계시록에는 종말에 대한 선언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나타난 종말은 단순한 끝이 아닙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신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진다고 말합니다.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전입니다. 1절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분명히 다른 세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5절에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나님께서 친히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겠다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새로움은 하나님 앞에 나올 때 가능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간헐적이거나 부분적으로 새로움을 경험하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새로움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새로움의 비밀, 영원한 새로움은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세계를 알고 있습니다, 믿음이 우리를 새롭고 거룩한 세계로 인도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새로워지고 거룩해질 수 있을까요?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믿으면 새로워집니다.

신뢰하면 새로워집니다. 무엇을 믿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믿을 때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가슴 깊이 믿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가 편안하고 안락했던 삶의 자리를 박차고 길을 나섭니다. 물론 갈 바를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길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새로운 도전과 모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믿음의 선배 아브라함의 삶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히브리서 11 8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그는 가야 할 길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니 인도하실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나섭니다. 그 약속은, 너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네 하나님이 될 것이란 약속입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와 항상 함께할 것이란 약속 말입니다. 그 약속이 아브라함을 이끌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도 소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있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마음은 한결같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고 싶다’, 곧 임마누엘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요청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러므로 새로워지려면 믿어야 합니다. 거룩해지고 싶다면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세상 속에서 낙심하고 무너져 쓰레기처럼 버려진 인생이 되었을 때도,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오면 우리는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이사야 66 22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을 것이라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이 보장되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주신 은혜가 생명 역사가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세계가 이루어질 때에 하나님이 세워주신 하나님의 나라가 내 마음속에 이루어지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날에 이루어질 나라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그 나라를 믿음으로 고백하고 현실의 문제를 이기는 성도가 되길 기원합니다.

둘째, 소망을 가지면 새로워집니다.

소망이 우리를 새롭고 거룩하게 합니다. 소망의 주님을 바라볼 때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꿈을 꾸고 비전을 갖게 되면, 어제를 뛰어넘는 새로운 삶이 우리 앞에 열립니다. 하나님이 믿음의 사람들에게 소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우리에게 주겠다고, 죄와 고난, 죽음이 뒤섞인 카오스의 세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세계를 우리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지상에서 외로웠다면, 답답한 삶을 살며 눈물로 탄식했다면, 이제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4절에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하나님이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겪었던 모든 아픔도 씻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절망하고 실의에 빠져 살았던 나를 다시 새롭게 변화된 나라로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젼을 주심으로 우리는 두렵지 않고 담대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소망의 사람은 옛것을 뛰어넘습니다. 죄의 세계든 고통과 고난의 자리든,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2절에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남편 앞에 선 신부처럼 아름답게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비전이 우리에게 허락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 은혜를 것입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우리의 힘으로 살아갈 능력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락된 기쁨으로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 증거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옷을 입혀주시고 의의 겉옷을 더해주셨습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맞이할 혼인예식에 참여하는 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구원의 옷과 의의 겉옷을 입지 않으면 참여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사명을 다하는 삶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어진 구원의 옷을 입고 신랑되신 예수님을 맞이하는 구원의 감격이 보장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61 10절에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요한계시록 19 7절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마지막으로, 사랑하면 새로워집니다.

사랑이 우리를 새롭고 거룩하게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새로움이 내게 주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비밀입니다.

요한일서 4 9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증거가 우리를 살려주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바라볼 수 없는 환경에 처하였을 때 하나님은 진리로 우리의 삶을 허락해 주셔서 복된 삶이 이루어지길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참사랑으로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격스럽게 고백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4 16절에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죄악과 질병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랑하면 바뀌기 시작합니다. 사랑하면 가슴 뛰기 시작합니다. 사랑하면 마음속에서 감탄사도 발합니다. 내 안에 느낌표가 생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기쁨이 됩니다. 그러면서 내가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요한1 2 15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우리가 이 세상이나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아니 우선순위에 하나님이 있지 않고 세상에 있음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세우는 일에 쓰임받은 삶을 원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새로워지는 것, 거룩해지는 것은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소망하며 하나님을 사랑할 때 가능해집니다. 그때 내가 변화되어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새로워지고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 “주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주님 안에 거룩함도 있습니다. 주님 안에 사랑과 구원과 은혜가 있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며 나아갈 때 우리가 새로워지기 시작합니다. “주님만을 바라보겠습니다. 주님을 소망으로 삼겠습니다.”라고 할 때 우리가 새로워지고,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만을 나의 신랑으로 삼겠습니다.”라고 고백할 때 우리 영혼이 뛰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초심을 회복함으로 새로움과 거룩함의 은총을 누립시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향한 내 믿음, 소망, 사랑이 초심을 지키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장에 보면 에베소 교회에게 주님이 얼마나 많은 칭찬 하시는지 모릅니다. 요한계시록 2 2~3절 말씀을 보면,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하고 거듭 칭찬 하십니다. 주님이 이토록 칭찬하실 만큼 에베소 교회가 많은 교회에 모범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점 하나가 있었습니다.

4절에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믿음도 있고 인내도 있고 수고도 많이 했는데, 없어진 게 하나 있다고 하십니다. 처음 사랑 곧 초심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주님만이 나의 주인이라는 고백이 사라졌습니다. 주님만을 사랑하며 섬기겠다는 진심 어린 결단도 사라졌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됩니까? 바리새 주의자가 됩니다. 교주 주의에 갇힙니다. 남을 비판하고 저주하는 심판자로서만 서게 됩니다. 그런 에베소 교회를 보면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이제 따지고 계산하면서 나를 믿으려고 하느냐? 네 처음 사랑이 어디서 떨어졌는지 돌아보아라. 그리고 그 사랑을 회복하라.”

이 사랑을 회복하는 길은 하나님을 다시 신뢰하는 길뿐입니다.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그분께서 우리를 새롭게 일으켜 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다시 의지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분을 믿으며, 그분께만 소망을 두고, 그분만을 사랑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이 우리를 새롭게, 또 거룩하게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요한일서 4 20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려면 보이는 형제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이는 헝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아무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지만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 한 해 내가 어떻게 새로워질까? 어떻게 거룩해질까?’라고 고민하고 계시면 기억하십시오.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주님을 믿으면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주님만을 바라면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주님만을 사랑하면 새로움과 거룩함의 복이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이 놀라운 비밀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만을 바라보며 주님을 사랑하며 기뻐 뛰놀겠습니다. 올 한 해 어렵고 힘든 일도 있을 테지만 주님이 내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을 믿습니다. 소망의 미래를 바라보며 내게 주어진 오늘 이 하루도 용기 있게 도전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이렇게 결단하면서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자녀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