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현재 미래 (빌 3:13-16)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이 시간에 “과거 현재 미래”라는 제목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 네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쏘아올린 화살이요, 둘째는 입에서 나간 말, 셋째는 지나간 세월, 그리고 놓쳐버린 기회랍니다. 이 중에서 지나간 세월만큼은 그 누구도 다시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어떤 대그룹의 회장이 어느 여성잡지와 인터뷰에서 자기 재산이 3조쯤 되는데 자기를 40대에서 10년만 살게 해준다면 그 재산을 다 주고라도 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시간이란 돌이킬 수 없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고귀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믿음도 시간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 86,400초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달라집니다. 그 시간 속에 신앙에 충실하면 승리하지만 부실하다면 모래 위에 지은 집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엡5:16에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세월을 아끼라는 의미는 단순히 시간을 절약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헬라어 원문의 의미는 ‘기회를 사라’는 뜻입니다. 마치 시장에서 귀한 물건을 값을 치르고 사오듯, 악한 세대 속에서 허망하게 시간 보내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 값지게 보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천국 갈 준비도 모두 시간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시간을 대해야 할까요?
1. 과거를 대하는 자세가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시간을 대하는 자세를 가르쳐 줍니다. 13절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할 과거도 있으나 이처럼 잊어야 할 과거가 있습니다. 기억할수록 손해를 보는 것들이 그것입니다. 성공의 도취감 같은 것 잊어야 합니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이 이 도취감에 빠져 교만하다가 버림을 받았습니다. 삶을 좌절시키는 실패의 기억도 잊어야 합니다. 마음의 상처 같은 악감들도 다 버려야 합니다. 이런 것은 사탄이 주는 생각입니다.
우리 속담에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양에도 “용서는 모래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겨라.”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사막을 걸어가다 말다툼으로 친구의 뺨을 때렸습니다. 뺨을 맞은 사람은 기분이 나빴지만 그는 모래에다 이렇게 적었습니다. "오늘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나의 뺨을 때렸다."
오아시스에 도착한 그들은 그곳에서 목욕을 하다가 맞았던 사람이 늪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때 뺨을 때렸던 친구가 그를 구해주었습니다. 늪에서 나온 친구는 이번에는 돌에 이렇게 썼습니다. "오늘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나의 생명을 구해주었다." 그래야 합니다. 그것은 친구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그보다 나를 위해서입니다.
이처럼 기억할 것은 기억하고 잊어야 할 것은 잊으시기 바랍니다. 그걸 잘하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마음의 치유입니다. 그래서 사65:17에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했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은혜 안에서 슬픔도 고통도 원한도 상처도 잘한 것도 못한 것도 기억나지 않고 기쁨으로만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반면에 잊지 않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5:15에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다고 과거를 상기시키십니다. 잊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를 위해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진리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을 잊는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너를 애굽 땅에서 구원해 낸 여호와라고 강조하시면서, 그것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하여 여러 제도와 절기를 만들고 기념물을 세워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수4:7)에게 설명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수도 텔아비브에 있는 이스라엘 박물관 안 벽에 이런 세 줄의 글이 쓰여 있다고 합니다. “과거를 기억하라(To remember the Past), 현재를 살라(To live the Present), 미래를 확신하라(To trust the future)”라는 글입니다. 그것은 과거 없는 현재가 없고, 현재 없는 미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과거를 거울삼을 때 현명한 오늘을 살아갈 수 있고, 과거를 잘 아는 사람만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미래를 대하는 자세가 있습니다.
"은퇴 이후, 이곳만은 제발 가지 마세요!" 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공감 가는 내용이 있어서 소개하면 "자식 집 장기 체류: 이틀 넘으면 부모가 아니라 짐짝, 친구와의 동업: 퇴직금 날리고 우정은 끝장, 퇴직한 전 직장: 반기는 척하지만 스트레스 받았던 사람들이 속으로 욕할 수도, 공짜 휴지 주는 홍보관: 공짜 좋아하다 쌈짓돈 털림. 돈 자랑하는 동창회: 밥 얻어먹고 속만 뒤집어짐, 퇴직금 털어 시작한 치킨집: 사장님 소리 듣다 1년 안에 망함" 등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3-14절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이 말씀은 미래를 향해 뛰는 바울의 모습입니다. 비전을 가지고 나가자는 말씀입니다.
행2:17에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하셨습니다. 누구에게나 시간적 미래가 있지만 비전이 없으면 그는 내용적으로 미래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1864년 덴마크는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대패하고 남부의 기름진 땅인 실레스비히와 홀스타인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호남 영남 충청을 잃고 강원도 산악지역만 남았습니다. 전쟁 때문에 경제는 파멸 직전이요, 남자들은 매일 술로 세월을 보내고, 여자들은 살기 위해 몸을 팔았습니다. 덴마크 민족사에 있어서 가장 어두웠던 순간입니다.
그때 민족의 어두움을 밝히려고 그룬트비 목사와 달가스 대령이 얼어나 국민들을 계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룬트비 목사는 하나님 사랑, 나라 사랑, 자연 사랑을 부르짖었습니다. 달가스 대령 역시 밖에서 잃은 국토를 안에서 찾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민족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기 위해서 애썼습니다. 그 결과 어려움을 극복했고 현재는 최고의 개인소득을 올리는 선진국가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꿈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예레미야처럼 하나님께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아누 것도 할 수 없으니 꿈을 가질 수 없다? 그건 성경 말씀이 아닙니다.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 오직 기도밖에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부르짖으면 크고 놀라운 비밀을 알려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룬트비 달가스보다 더 귀하게 쓰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항상 꿈꾸어야 할 미래는 천국의 소망입니다. 바울은 빌1:23-24에서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버려야 할 미래가 있습니다. 염려의 미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6:34) 하셨습니다.
또 버려야 할 미래가 있습니다. 내가 꾸는 인간의 꿈입니다.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곡식을 쌓아두고 이제부터 평안히 먹고 마시며 즐기자고 자기를 위해 계획하고 결심하는 헛된 꿈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실패의 인생을 살도록 사탄이 주는 꿈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기록되던 그 시대에 아라비아에는 대상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어디 가면 한 밑천 잡을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약4:15-16)고 경고했습니다. 내 꿈은 사라지고 하나님이 주신 꿈으로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현재에 대한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16절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이것은 현재에 충실한 바울의 모습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입니다. 사실 시간은 현재밖에는 없습니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없다면 과거의 경험도 헛것이고 오늘이 없다면 희망찬 미래도 없다는 점에서도 오늘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시제는 대부분 오늘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고후6:2에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했습니다. 예수 믿고 은혜 받는 일은 언제나 오늘입니다. 뒤로 미루지 않아야 합니다. 히3:13에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라”고 했습니다. 사랑도 나중 아닙니다. 오늘 해야 합니다. 히3:15에는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했습니다. 현재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빈센트 반 고흐가 '비운의 천재'라 불리는 이유는 그의 삶이 지독한 가난, 지독한 고독, 그리고 정신적 고통으로 점철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약 900여 점의 유화와 1,100여 점의 소묘를 남겼는데 팔린 것은 단 한 점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위대한 작품을 남긴 것은 상황이 좋아서가 아니라, 매일 아침 불만을 물리치고 하나님 안에서 최선을 다 하기로 결단했기에 가능했던 카이로스의 열매였습니다. 지금 그의 작품은 수백 억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24:48-51에 “그런데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신다고 했듯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면 주님 앞에 서는 날 잘했다고 칭찬 받을 수 없습니다.
옛날에 사탄이 부하들을 모아놓고 어떻게 하면 성도들을 효율적으로 타락시킬 수 있을지 계략 회의를 열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합시다! 감옥에 가두고 매질을 해서 하나님을 부인하게 만듭시다." 그러자 사탄의 우두머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아니다. 핍박을 하면 그들은 더 뜨겁게 기도하고 단단히 뭉친다. 그건 실패다."
두 번째가 말했습니다. "그럼 성경이 가짜라고 속입시다. 하나님은 없다고 과학적으로 유혹합시다." 우두머리가 또 대답했습니다. "그것도 안 된다. 이미 그들의 마음속에는 성령의 인치심이 있어서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때 가장 교활한 막내 사탄 하나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대장님, 저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하나님도 계시고, 성경도 진리다. 너희가 은혜받고 감사하며 사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그 일을 오늘 하지 말고 '내일부터' 해라. 오늘은 바쁘니 '나중에 차차' 해라.'라고 속이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탄은 무릎을 탁 치며 기뻐했습니다. "바로 그거다! '차차' 마귀를 보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시간을 대하는 자세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매일 새벽 일어나 아버지께 기도하고 어둔 밤에 이르기까지 하루를 충실하게 사셨습니다. 하나님이셨던 과거를 돌아보지 않으시고 죄인 구원을 위한 미래만 바라보고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가셨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주님을 본 받아 시간에 대한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오늘의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가장 현명하고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래 스타일이 좋으면 이걸로
과거 현재 미래 (빌 3:13-16)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성도 여러분, 주님의 평화와 은혜가 여러분의 심령에 강물처럼 흐르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지금 2025년이라는 한 해의 마지막 고개를 넘고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 속에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은, 시간은 결코 머무르지 않으며 돌이킬 수 없다는 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시위를 떠난 화살과 입 밖으로 나온 말, 놓쳐버린 기회, 그리고 지나간 세월은 그 어떤 천만금으로도 다시 살 수 없습니다.
어느 대그룹의 회장이 "3조 원의 재산을 다 줄 테니 내 젊음을 10년만 돌려달라"고 했던 그 절규는, 사실 우리 모두가 인생의 끝자락에서 하게 될 고백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 86,400초는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어떤 이는 영생의 면류관을 쓰고, 어떤 이는 후회의 눈물을 흘립니다. 오늘 본문 빌립보서 3장 말씀을 통해,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를 대하는 성경적 설계도를 아주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은 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신앙의 경주를 완주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영적 다이어트'입니다. 과거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과거의 성공과 도취감을 잊어야 합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보십시오. 그는 자신의 업적을 보며 "이 거대한 성을 내가 세웠다"고 자랑하다가 그 순간 미치광이가 되어 들짐승처럼 살았습니다.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힌 사람은 오늘 발전할 수 없습니다. "내가 옛날에 기도를 얼마나 했는데", "내가 왕년에 얼마나 봉사했는데"라는 말은 오늘 나의 성장을 가로막는 독약입니다.
둘째로, 삶을 좌절시키는 실패와 상처의 기억을 잊어야 합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 마음에 '악감'과 '피해의식'을 심습니다. 원망과 상처를 마음에 품고 사는 것은 마치 독약을 마시고 상대방이 죽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막의 두 친구 이야기를 다시금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뺨을 맞았을 때 모래에 적었던 그 친구의 지혜를 배우십시오. 모래에 적은 글씨는 바람이 불면 사라집니다. 하지만 돌에 새긴 은혜는 영원히 남습니다. “원수는 모래에 새겨 망각하고, 은혜는 돌에 새겨 영생하게 하라.” 이것이 성령의 사람이 가지는 마음의 치유법입니다. 이사야 65장 17절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신비를 "이전 것이 기억나지 않는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주님의 보혈로 여러분의 과거를 덮으십시오.
그러나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과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신명기 5장 15절에서 하나님은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때를...”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죄인 되었을 때 나를 건져주신 그 사랑, 사막 같은 광야 길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은 우리 영혼의 닻처럼 단단히 기억해야 합니다. 과거를 기억하는 자는 결코 교만할 수 없으며, 과거를 아는 자만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잘 정리했다면, 이제 우리는
14절의 고백처럼 고개를 들어 푯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고 했습니다. 미래는 단순히 시간이 흐르면 오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는 '꿈'과 '비전'을 가진 자에게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도행전 2장 17절은 말세에 성령을 부어주시면 자녀들은 예언하고, 청년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라 했습니다. 신체적인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80세의 나이에도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외쳤던 갈렙처럼, 성령 충만한 사람에게는 늘 미래가 있습니다.
덴마크의 역사를 바꾸었던 그룬트비 목사와 달가스 대령의 예화는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전쟁으로 국토의 70%를 잃고 절망에 빠진 국민에게 그들은 "밖에서 잃은 국토를 안에서 찾자"고 외쳤습니다. 그들이 심은 '하나님 사랑, 나라 사랑, 이웃 사랑'의 비전이 오늘날의 부강한 덴마크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 앞에 거룩한 꿈을 구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시위대 뜰에 갇혀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을 때, 하나님은 환경을 보라 하지 않으시고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이리라”(렘 33:3)고 하셨습니다. 기도는 미래를 창조하는 도구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경계해야 할 미래의 자세가 있습니다. 첫째, 염려의 미래입니다. 예수님은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염려는 하나님을 불신하는 죄입니다. 둘째, 교만한 인간의 계획입니다. 야고보서 4장 말씀처럼 "내가 어디 가서 돈을 벌겠다"고 장담하는 허탄한 자랑을 버려야 합니다.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는 철저한 주권 인정을 고백하십시오. 우리의 미래는 오직 천국의 소망으로 가득 차야 하며, 그 푯대가 흔들리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방황을 멈출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시제는 바로 16절이 강조하는 '현재'입니다.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여러분, 시간은 사실 현재밖에 없습니다. 과거는 기억 속에만 있고 미래는 상상 속에만 있습니다. 실존하는 유일한 시간은 '지금'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언제나 "오늘"을 강조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히 3:15)
여기에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위대한 교훈이 있습니다. 그는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할 정도로 비극적인 '크로노스'의 시간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매일 아침 자신만의 '카이로스'를 만들었습니다. 아침마다 그는 "불만을 물리치고, 정열과 환희와 거룩한 행위를 하도록 노력하며, 하나님 안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갖겠다"고 다짐하며 붓을 들었습니다. 환경은 비참했으나 그의 현재는 하나님의 영광을 담아내는 그릇이었습니다. 그가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이유는 그가 고통 중에도 '현재'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가장 무서운 적은 **'차차 마귀'**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하나님도 믿고 봉사도 해라. 그런데 오늘은 바쁘니 내일부터 해라"고 속삭입니다. 이 예화처럼, 사탄은 우리를 핍박하기보다 '미루게' 만듭니다. 감사를 미루고, 순종을 미루고, 사랑을 미루게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하십니다. 오늘 하지 않는 감사는 가짜요, 오늘 하지 않는 순종은 불순종입니다.
춘천의 어느 집사님의 간증을 기억하십시오. 빚더미와 가정 붕괴라는 최악의 현재 속에서도 그녀가 금식하며 '감사'를 선택했을 때, 하나님은 환경보다 먼저 그녀의 '영혼'을 회복시키셨습니다. 남편이 변화되고 예배가 회복되는 '영적 현재'가 바로 서자, 물질의 문과 회복의 문은 자연스럽게 열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시간에 대한 가장 완벽한 자세를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으로서의 영광스러운 과거에 연연하지 않으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입으셨습니다. 그리고 인류 구원이라는 미래의 푯대를 위해 십자가의 고통이라는 '현재'를 묵묵히, 그리고 충실히 감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2025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간,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앞에 있는 푯대를 바라보며 무엇보다 오늘에 충성하며 달려 나가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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