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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사도)행전에서의 성령에 대한 역동적 해석

에반젤(복음) 2023. 1. 6. 23:31
누가(복음)-(사도)행전에서의 성령에 대한 역동적 해석
 
 

허주


1.들어가는 말

누가의 문서로 알려진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20세기 중반까지만 하여도 서구 신약학계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바울과 요한의 문서들보다 덜 집중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Henry J. Cadbury 의 1920년대부터의 누가 문서(Lukan Writings)에 대한 연구에 힘 입으면서, 신약학계는 그 동안 잃어버린 듯한 ‘신약의 1/4’ 을 되찾기라도 하는 듯 귀중한 학문적 업적을 남기기 시작했으며,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학자들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각각, 그리고 함께 다양하고도 깊이 있는 주제들의 관련 속에서 학문적 성과를 꾸준히 나타내 보이고 있다.
누가 문서와 관련된 학자들의 연구의 범위와 주제는 그야말로 다양하게 표출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누가의 성령론 또는 성령 이해’ 는 여러 학자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뜨거운 감자’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필자의 학위 논문은 그 ‘뜨거운 감자’를 다시 한번, 하지만 새로운 관점에서의 ‘뒤집어 봄’을 통하여, 지난 약 100년 동안의 서구 학계에서 이해한 ‘누가의 성령론’에 대해 또 다른 ‘해석학적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누가의 성령 이해에 있어, 역동적이고 총체적인 해석 을 제안하고 적용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2. 논문의 문제 제기

본 학위 논문은, 지금까지의 복음서 이해에 있어 거의 필수적이고 상식화되어 있었던 성서학적 방법론인 ‘역사 비평적’(historical-critical method/criticism) 관점 의 한계 와 ‘누가의 성령론’에 있어서 이 비평을 사용하는 학자들의 ‘신학적’이며 ‘역사적’ 관심의 일방적이고 부적절한 편향과 그 해석에 문제점 을 지적하는 것으로 그 출발점을 삼고 있다. 말하자면, 기존 학자들의 지금까지의 관심과 질문들은, 마치 ‘누가-행전’이 ‘성령을 위한 신학적 또는 역사적 교리서나 교과서’로 간주할 때 얻을 수 있는 듯한 이슈들이라는 점인데, 이것들은 (1) 그 동안 너무 독점적이며 단편적인 ‘누가의 성령론’을 형성시켰으며, (2) 무엇보다 이 같은 관심과 질문들이 누가-행전에서 나타나는 성령에 대한 이해에 있어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이슈들을 간과 내지 무시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근거로 성령과 관련된 우리의 관심과 질문들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음을 상기시켰다:

기록자 누가는 그의 문서를 통해(discourse), 그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story)을 이야기 형식(narrative)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성령에 대한 관심과 질문은 다음과 같은 절차를 통해 접근하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즉, 나레이터/내재된 저자는 누가-행전 내러티브의 전체 줄거리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그리고 이 누가-행전의 이야기 속에서 성령은 어떻게, 왜, 그리고 무엇 때문에 자주 나타나고 있는가?

이 같은 주된 질문/관심들이 누가의 문서에서 나타나는 성령의 이해에 더 큰 설득력이 주어진다면, 이것을 위해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해석학적 틀/방법이 요구됨을 밝혔고, 필자는 이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문학비평(literary criticism)의 한 양식인 ‘서사비평’(narrative criticism) 을 수정, 보완하여 논문을 이끌어 나갔다.

3. 논문의 방법론과 전개 과정

필자는 논문의 (해석학적) 방법론을 ‘역동적이며 성경적인 서사비평(dynamic biblical narrative criticism)’이라 칭했으며, 이 관점을 통해 누가의 성령 이해에 있어 나름대로의 공시적(synchronic)이며 통시적(diachronic)인 국면을 함께 고려함으로써, 보다 총체적인 이해(holistic reading)를 구하고자 힘썼다. 이 해석학적 틀을 좀 더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논문의 주제(‘성령’)와 본문(‘누가-행전’) 속에서 (1) ‘서사비평’(narrative criticism)이라는 용어를 통해, 필자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누가에 의해 쓰여진 유기적이고 완성된 이야기 형태로써의 내러티브로 간주함으로써, 그 속에서 나레이터(narrator)에 의한 성령의 수사적 역할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또한 성령을 누가-행전의 내러티브에 등장하는 ‘인물’(character)로 봄으로써, 성령에 대한 묘사(character-presentation as being)와 줄거리 속에서의 성령의 기능(character-function as doing)이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나타내는 지를 밝히려 했다. (2) ‘성경적’(biblical)이란 용어는 누가-행전이 현대에 쓰여진 것이 아닌, 즉, 고대(ancient)의 그리고 정경적(canonical)인 범주에 드는 문서임을 주지시킴으로써, 현대 문학 이론을 고대 성경 문서에 적용할 때 범할 수 있는 오류를 줄이려 했다. 마지막으로 (3) ‘역동적’(dynamic)이라는 용어는 ‘총체적’이라는 의미에서 누가-행전에서의 성령 이해에 있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국면을 삼중적 차원에서 고려하였다. 첫째 국면은 누가의 성령과 관련해서 (a) 문학적 내러티브 세계 - 누가-행전의 이야기 형식, (b) 누가-행전의 성령이 담지 하고 있는 ‘문학적 레퍼투아’(literary repertoire)로써의 역사적 세계 – 유대인 성경(즉, 구약과 칠십인 역), 그리고 (c) 누가-행전에서의 ‘성령’과 문학적 레퍼투아에서의 ‘하나님의 영’의 세계관적 차이에 근거한 누가의 성령에 대한 신학적 의미를 끌어내었으며, 둘째 국면은 성령과 관련하여 누가의 (a) 내재된 저자(implied author) 또는 나레이터(narrator)와, (b) 텍스트(text, 즉 누가-행전), 그리고 (c) 내재된 독자(implied reader)와의 역동적 관계 속에서의 함축들이 무엇인지를 밝혀 내었다.
이 같은 해석학적 방법론의 틀 속에서 논문의 각 장들을 전개, 발전시켜 나갔다. 다음은 각 장들을 간략히 소개하면서, 특히 논문의 제 5장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제 1장(Introduction)은 누가의 성령론에 대한 각각의 다른 입장을 대표적인 세 학자들의 주된 견해를 소개하면서 – J.D.G. Dunn; R.P. Menzies; M.M.B. Turner, 아울러 네 개의 주된 이슈들과 관련된 다른 주요 학자들(예를 들면, H. von Baer, C.K. Barrett; E. Schweizer; G.W.H. Lampe; D. Hill; G. Haya-Prats; M. Isaacs; R. Stronstad; J.B. Shelton)의 주장을 요약하였다: (1) ‘성령(세례를)을 받는다’(receiving the Holy Spirit)는 의미, (2) ‘성령의 본질’(the nature of the Holy Spirit), (3) ‘예언의 영’(the Spirit of prophecy)에 대한 개념, 그리고 (4) ‘구원사 틀 속에서의 성령’(the Holy Spirit in the light of ‘Salvation-History’ scheme). 그리고 나서, 이 같은 이슈들을 다룬 학자들의 ‘비평 방법’이 (5) ‘역사-비평적’ – 특히, 편집비평에 의거한 동일한 관점이었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의 상반된 주장들과 이 관점이 다루지 못한 ‘갇혀 있었던’ 질문들을 열거하면서, 여기에 적합한 새 해석학적 지평의 틀인 ‘dynamic biblical narrative criticism’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내어 놓았다.
제 2장(The Usage of Ruach/ Pneuma in the Extratext of Luke-Acts as Literary Repertoire)은 누가가 이해한 성령의 역사적 준거 틀을 제공하는 장으로써, 유대인의 성경(the Jewish Bible로 마소라 사본과 칠십인 역을 포함하는 용어로 ‘구약’을 대신했다)에서 나타난 ‘하나님/주의 영’(the Spirit of God/ the Lord) 을 조사했는데, 주목할 사실은 신적인 의미로 쓰여진 ‘영’(‘악한 신’[evil spirit]을 포함하여)은 하나님 자신의 의지와 뜻을 계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구별된 개개인의 인물들을 통해 그의 능력과 존재 하심과 역사 하심을 나타내주는 ‘하나님 자신의 영’ 이라는 점이다. ‘영의 임재’를 통해 나타나는 외부적 현상들은 (1) 예언(민 11:25, 26; 삼상 10:6, 10; cf. 삼상 19:20, 23) 또는 계시의 말씀(민 24:2; 대상 12:19; 대하 15:1; 20:14; 24:20; 수산나 1:45; cf. 욜 3:1-2), (2) 기적들(삿 14:6, 19; 15:14; 왕하 2:9이하; 사 61:1이하; 미 3:8; 시락 48:12), (3) 지혜 (민 34:9, 특히 칠십인 역에 있는 솔로몬의 지혜서[7:7, 22-23; 9:17]와 시락[39:6]에서), (4) 특별한 기능/재능(출 28:3; 31:3; 35:31), (5) 환상이나 꿈에 대한 올바른 해석(창 41:38; 단 4:8, 9, 18; 5:11, 14), 그리고 (6) 선민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적이며 윤리적 삶(사 11:2이하; 28:6; 32:15; 42:1; 겔 36:27; 슥 12:10; 시 51:13; 139:7; 143:10; 지혜서 1:5)과 관련 되어진다. 아울러, 이 ‘하나님의 영’은 장래에 나타날 특별한 개인으로써의 다윗의 후손(사 11:1-2; cf. 사 42:1; 61:1이하 그리고 에녹 1 49:3; 62:2; 솔로몬의 시편 17:37; 18:7)과 회복될 공동체로써의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할 것(사 32:14-15; 44:3b; 59:21; 겔 36:27; 37:14a; 39:29; 욜 3:1-2)이 밝혀지면서 나타난다. 유대인의 성경에 ‘하나님의 영’과 관련되어 개인의 이름이 밝혀지면서 나타나는 인물들은 모두 24명 인데,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수행인(the human agents of God)들로써 신임할 만한(reliable) 인물들로 묘사되어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논문의 2장과 3장 사이에 껴넣은 보록(excursus: The Usage of Ruach in the Dead Sea Scrolls with Special Reference to 1QS, 1QM, CD and 1QH)에서는 쿰란 공동체에서 이해한 ‘하나님의 영’에 대해 쿰란의 네 가지 주요 문서에 기초해서 밝혔다. 이유는 2가지 였는데, 누가-행전(다른 신약 문서들과 마찬가지로)과 관련하여, 사해 공동체 문서에서도 ‘하나님의 영’이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거룩의 영’, 즉 ‘하나님의 성령’으로 자주 표현된다는 것 과 자신들의 공동체를 종말에 나타날 하나님의 회복된 백성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은 (1) 죄와 모든 악한 행위를 정결케 함(1QS 3:7b-8a; 4:21a; 1QH 16:12)과, (2)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계시함(1QS 8:15-16; CD 2:12-13a; 1QH 12:11-12; 13:18b-19; 14:12-13)과, (3) 하나님의 법도에 맞도록 공동체 회원들의 삶을 유지시켜 줌으로써 그들의 영적이며 윤리적인 삶을 인도해주는 역할과 기능(1QS 9:3-4; 1QH 7:6-7; 9:32; 16:6-7; 16:11-12)으로 요약하였다. 이런 면에서 이들이 소유한 ‘하나님의 (거룩의) 영’의 개념은 사 44:3, 겔36:27; 37:14의 약속이 자신들에게 성취된 ‘종말의 영’으로써의 이해임을 밝혔다.
논문의 3, 4, 5장은 누가-행전에서 나타나는 ‘성령’을 문학적 관점에서 조명하였으며, 이를 위한 분석의 틀은 문학 비평가들, 특히 유대인으로써 히브리 대학의 영문학과 교수인 Shlomith Rimmon-Kenan의 이론에 힘입었다. 먼저 3장(Narrator, Point of View and the Holy Spirit) 에서는 나레이터의 관점(point of view)을 성령의 언급과 관련하여 밝혔으며, 아울러 누가는 ‘성령’을 ‘신적 준거 틀’(the divine frame of reference) 의 가장 주요한 요소로써, 등장하는 중심 인물들의 말과 행위가 하나님의 대리인들로써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 관련 짓고 있음을 주장했다. 따라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는 누가의 나레이터는, ‘편재’(omnipresent)하고 ‘회고적’(retrospective)이며, ‘전지’(omniscient)하고 ‘신임’(reliable)할만 하며 ‘권위’(authoritative) 있는, 3인칭의 ‘신적’ 관점을 소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서 좀 더 구체적으로, 누가의 이야기 기법은 ‘하나님 중심적’(theo-centric)이고, ‘그리스도 중심적’(christo-centric)이며, 또한 ‘성령 중심적’(pneumo-centric)인 세계관적 관점(religious/biblical ideology) 을 통해 주장되어지고 있음을 나타내 보였다.
제 4장과 5장은 누가-행전에서 등장하는 ‘인물’로써의 ‘성령’이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 지를 분석(characterization)하였다. 4장에서는 독립적 존재로써 성령(the Holy Spirit as character-being)을, 5장에서는 내러티브 전체 줄거리 속에서의 성령의 기능(the Holy Spirit as character-function)을 밝혔다. 아울러 2장에서 밝힌 ‘유대인의 성경’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과 누가-행전에서의 ‘성령’의 묘사와 기능을 비교해 보았다.
제 4장(Character, Presentation and the Holy Spirit)의 첫 부분에서는 문학 비평가들의 ‘인물’(character)에 대한 정의와 ‘인물화’(characterization)에 대한 이론들을 소개하면서, 누가-행전에서의 성령을 인물로 볼 수 있음을, 특히 ‘신적 인물’(divine character)로 나타남을 요약 설명하였다. 그리고 나서, 등장 인물로써의 성령에 대한 (1) ‘직접 표현’(direct definition): ‘성’령(the holy Spirit), ‘하나님의’ 영(the Spirit of God), ‘주의’ 영(the Spirit of the Lord), ‘예수의’ 영(the Spirit of Jesus), ‘아버지의 약속’(the promise of [Jesus’] Father), ‘위로부터의 능력’(the power from on high), ‘증인’(witness), ‘선물’(gift), (2) ‘간접 묘사’(indirect presentation): ‘말’(speech), ‘행위’(action), ‘외견’(external appearance), ‘배경’(environment), (3) ‘반복과 유사’(repetition & similarity), 그리고 (4) ‘유비적 비교와 대조’(comparison & contrast) 를 분석하였다.
이 분석을 통해 다음과 같은 주장을 이끌어 내었다. 즉, 누가-행전에서 묘사되는 ‘성령’은 유대인의 성경에서 증거된 ‘약속되고 성취된 하나님의 성령’임(행 2:17-18; 5:9, 32; 15:8; 눅 11:13)과 동시에 이 성령은 또한 부활하시고 승천 하심으로, 말하자면, 사도행전 2장 이후로 – ‘그리스도와 주’가 되심을 확증하신 예수께서 보내시는 ‘예수의 영’(행 2:33; 16:7)이다. 따라서 사도행전에서 성령과 관련 지어 나타나는 주요 인물들은 하나님의 신임할 만한 수행인들(God’s human agents)일 뿐만 아니라, 보다 구체적으로 예수의 증인들(Jesus’ witnesses)로써 그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주요 메시지로 선포함으로써 묘사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성령의 직접적 말과 행위가 나타나는 내러티브의 상황은, 예수에 대한 복음의 선포가 이방인들에게 확장되어지는 결정적 순간들(행 8:29, 39-40; 10:19, 20; 13:2, 4; 16:6-7)이라는 사실에 있다. 이것은 누가의 성령이 예수의 증인들의 복음 사역 – 특히 유대인들을 넘어서서 이방인들에게 나아가는 사역과 깊은 관련 속에서 나타남으로, 이 일은 바로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일임을 보증함(행 5:32; 15:8; 16:10; 26:20)과 동시에, 승천하신 예수께서 또 다른 ‘주’(Lord)가 되심으로써, 저들의 삶 속에서 역사하심을 확증(행 2:33; 9:15-19; 16:6-7; 18:9-10; 22:18, 21; 23:11; 참조 눅 12:12; 21:15)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논문의 마지막 장인 제 6장(Concluding Remarks on ‘A Dynamic Reading of the Holy Spirit in Luke-Acts’)에서는, 앞에서 다룬 각 장들의 결론들을 요약하면서, 이 결론들이 가지고 있는 함축들(implications)을 3가지로 분류, 설명하였다: (1) 누가 성령의 ‘신학적 중요성’(theological significance) – 2장과 3장 그리고 부분적으로 5장을 포함한 비교 속에서, (2) 나레이터/ 내재된 저자로써의 누가와, 누가-행전의 텍스트, 그리고 내재된 독자와의 관련 속에서의 성령의 의미 또는 역할 – 3장과 5장을 근거로 하여, 그리고 마지막으로 (3) 누가의 성령에 대한 세계관과 오늘 날 현대 독자들, 그리고 필자의 해석에 대한 합법성 문제를 현대 해석학적 이슈들을 염두에 두면서 간략히 거론하였다.
(1) 유대인의 성경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영’과 누가-행전에서의 ‘성령’과의 비교 속에서 그 표현과 의미의 강조점/차이점 내지는 발전된 묘사들을 ‘누가의 신학적 중요성’이라 정의한 것에 기초하여, 이 특징을 2가지로 강조, 요약하였다. 첫째는, 누가의 성령 이해가 그리스도 중심의 기독론적 이해에 있음과 둘째는, 이 성령이 유대인들을 넘어서서, 비유대인들, 즉 이방인들의 선교와 관련 지어 그 기능이 초점을 맞추어 나타나고 있음을 밝혔다. 이 같은 누가의 (그리고 다른 신약 저자들과 공통된) 성령 이해는 유대인들과 초대 (유대적 그리고 비유대적) 크리스챤들과의 (신앙적) 세계관의 차이를 반영해 준다고 할 수 있다.
(2) 누가-행전의 내러티브 세계에서 (a) 나레이터는 성령과 더불어 누가(who), 언제(when), 어디서(where), 어떻게(how), 왜(why) 성령을 받는 지를, 또는 성령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지를 묘사해 줌으로써, 그들이 ‘신임’할(reliable) 만한 하나님의 수행인들과 예수의 증인들임 시사했다. 그렇다면 (나레이터 또는 내재된 저자로써의) 누가는 성령에 충만하여 이 모든 사실을 ‘신적 관점’에서 보도하고 있음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 “the narrator is characterized as an off-stage character full of the Holy Spirit, who perceives the inside views of other inspired characters.” 그렇다면, 누가야말로, 그의 내러티브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과 예수와 성령에 대해 증거하고 있는 가장 효과적 증인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b) 그렇다면, 누가-행전의 텍스트는 ‘신적인 관점’을 반영한, 즉 성령의 영감에 의한 신임할 만하고 권위 있는 ‘증인의 내러티브’(witness narrative)임을 또한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참조: 행 1:16; 4:25; 28:25; 눅 1:3의 라틴 역 사본). (c) 줄거리와 관련된 내재된 독자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누면서 성령의 기능을 고려할 수 있겠다. 한 편은 ‘카리스마적 증인들’로써 하나님의 선교 사역을 위해 성령의 능력을 받는 것과 또 다른 편은 ‘일반적이지만 신실한 하나님의 교회의 구성원들’을 향한 구원론적이며, 윤리적인 성령의 기능을 생각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또 하나의 내재된 독자는, 자신이 성령에 영감 된 지도자 또는 성도라 할지라도 자신의 뜻이나 계획이 늘 하나님의 뜻이나 섭리를 단번에 깨닫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행 10:9-35; 16:6-10; 참조: 갈 5:16; 엡 5:17-18; 살전 5:19)과 또 다른 성령의 사람(들)과 다른 견해를 갖을 수 있음(행 20:22-23; 21:4; 21:11-14; 15:36-41; 참조: 고전 14:29-33)에 할 수 있는 한, 하나님의 사역에 있어 겸손함과 신중함, 그리고 이견을 갖고 있는 형제/자매(들)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하는 독자(들)이어야 한다.
(3) 이 마지막 단락은 다소 ‘시험적인’(tentative) 제언으로 해석학적 이슈를 염두에 두면서, 텍스트를 통해 전달되는 누가의 ‘신앙적 세계관’(biblical ideology)이, 특히 성령의 이해와 기능에 있어서, 오늘날 20세기 독자들(학자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있어서)과 그들의 공동체적 세계관에 의해 각각 동일하게 또는 상이하게 환영, 수용, 거부되어지는, 즉 언제나 ‘해석되어지는’ 텍스트의 현실을 인식하면서, 현대 독자(들)과 그들의 공동체의 세계관이 하나의 텍스트를 해석하는 데에 있어 얼마나 큰 파워를 –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는 지를 시사했다. 새 해석학적 방법론에 근거하여, 가능한 한 더 논리적이고 더 설득력 있는 논문을 출산하기 위한 필자의 4년 반 동안의 ‘논문 만들기’도, 결국 필자의 과거와 현재의 세계관(신앙과 학문에 있어서 모두)의 배경 속에서 잉태된 ‘하나의 해석’임을 인정하였다.

4. 누가-행전에서의 ‘성령의 기능’

본 단락에서는 필자의 논문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제 5장(Plot, Function and the Holy Spirit)을 좀 더 구체적으로 요약, 설명하고자 한다. 본 장에서는 먼저 문학 비평가들의 ‘줄거리’(plot)에 대한 정의들을 살펴본 후, 필자의 정의를 소개하였으며, 이에 따른 누가-행전의 줄거리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예수와 그의 증인들이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성령의 능력과 인도로, 하나님의 백성을 구하고 찾아 나서는 증인/증거의 길/도(the plot of Luke-Acts is the way of witness, in seeking and saving God’s people, engendered by Jesus (in the Gospel) and his witnesses (in Acts), through the power and guidance of the Holy Spirit in accordance with the plan of God).

이것을 프랑스 기호학자인 A.J. Greimas의 내러티브 세계의 모델 구조(narrative grammar) 에 적용시켜 (단순화하여) 표현한다면, 다음과 같이 도식화할 수 있겠다:

Sender  Object  Receiver
하나님 하나님 나라와 예수를 증거, 선포하면서 예수와 그의 증인들
하나님의 백성을 찾아 나서 구원하는 증거 행위



Opponent  Subject  Helper
바리새인들; 하나님의 뜻/계획 성령
율법 선생들; 서기관들;
(대)제사장들; 장로들;
악한 영들; 마귀/사탄

필자는 이 같은 구조를 인식하면서 누가-행전의 내러티브를 다음과 같은 단락으로 구분하였다:

누가-행전의 플롯을 위한 이중적 서론(Twofold Introduction to the Plot of Luke-Acts):
서문(preface: 눅 1:1-4)과 전주곡(prologue: 눅 1:5-2:52)

I. 발단(Beginning): 세례 요한의 증거와 예수의 증인사역 준비.
눅 3:1-4:13 (주된 배경: 유대에서)
II. 중심부를 향한 발전(Development towards the Central Point): 예수의 증인-여행길.
눅 4:14-19:44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III. 중심부(Central Point): 예수의 자기 증거와 성령의 보내심.
눅 19:45-행 2:13 (예루살렘에서, 특히 성전을 중심으로)
IV. 결말을 향한 발전(Development towards the End): 예수의 증인들의 증거-여행길.
행 2:14-28:15 (예루살렘에서 유대, 사마리아를 거쳐 로마를 향하여)
V. 열려져 있는 결말(Open-Ended Finale): 바울의 증거.
행 28:16-31 (로마에서)

4.1. 발단(Beginning): 눅 3:1-4:13

세례 요한이 구약의 선지자와 흡사하게 소개 되어지면서, ‘누가-행전’의 ‘이야기 막’이 요단강과 유대 광야를 배경으로 올려진다. 여기에서 성령에 대한 표현은 4번(눅 3:16, 22; 4:1a, 1b) 나타나는데, 모두 예수와 관련하여 묘사 되어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1) 예수께서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 것이라는 요한의 예언적 선포 (참조 눅 24:49; 행 1:5, 8; 11:16); (2) 예수께서 기도하시며 세례 받으실 때 임하신 성령; (3) 예수께서 마귀에게 이끌리어 시험을 받으실 때, 성령의 능력(empowering)과 인도(guiding)하심이 함께 한 사실이다. 여기서 기억해야 될 것은 모태에서부터 성령으로 충만을 입은 세례 요한이, 마침내 때가 되어 예수를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 과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된 예수께서 그의 공생애 사역에 앞서 다시 한번 성령의 임재 하심과 그의 능력에 힘입어 그의 존재와 사역의 의미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되새기게 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누가-행전의 내러티브의 발단은 요한의 예수께 향한 선지자적 증인 사역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써) 왕 같은 메시야적 이미지’와 ‘(고난받는) 종으로써의 이미지’(the regal-Davidic servant Messiah)에 대한 확증, 그리고 이 같은 메시야적 임무를 공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받으시는 마귀의 시험에 대한 승리에 있어서 모두 ‘하나님의 영’으로써의 성령이 개입함(즉, 확증 시키고 능력주심)을 통해, 이 사건들은 모두 하나님의 뜻/계획 속에 실현 되어지고 있음을 암시하게 되는 것이다. 이 사실은 다음 단락의 초반부에 소개되는 예수의 나사렛 회당 설교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4.2. 중심부를 향한 발전(Development towards the Central Point): 눅 4:14-19:44

이 두 번째 단락은 갈릴리에서 시작되는 예수의 공생애 사역을 소개하면서 시작하고,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는 장면을 보도하면서 마무리 되어진다. 따라서 이 단락은 지리적 배경과 관련하여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첫째는 갈릴리에서의 예수 자신의 메시야적 증거사역(4:14-9:50) 과 둘째는 (갈릴리를 벗어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는 가운데 펼쳐지는 증거-여행(witness-journey)의 사역(9:51-19:44) 이다.
여기에서 성령에 대한 표현은 모두 6번(눅 4:14, 18; 10:21; 11:13; 12:10, 12) 나오는데, 처음 3번은 예수와 관련하여, 나중 3번은 장래에 나타날 예수의 제자/증인들의 사역과 관련 지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눅 4:18-19의 누가-행전의 내러티브 세계 내에서의 중요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예수의 메시야적 사역과 성령의 밀접한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진행되는 내러티브 전체에 있어서 커다란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앞에서 언급했던 예수의 성령으로의 세례 받으심을 (나레이터에 의해 예수 자신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지를) 해석해 주고 있는데, 즉 예수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적 메시야 로써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그의 증인 사역 전체에 원동력(driving force)으로 함께 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갈릴리에서의 예수 사역과 예루살렘을 향하는 노정 가운데 펼쳐지는 예수의 사역은 이제 예수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하나님의 영의 활동 하심과 분리시킬 수 없음을 의미한다(행 10:38은 이런 면에서 지상에서의 예수 사역을 핵심적으로 요약 설명해 주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의 일 하심은 하나님의 뜻/계획 가운데에 하나님의 대리인(God’s agent)으로써의 일 하심 이요(눅 5:26; 7:16, 29; 8:39a; 9:43; 13:13; 17:15; 18:43; cf. 19:37-38), 이 일은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자신의 독특한 존재와 사역에 대한 자기 증거(self-witness, 특히 눅 10:22를 보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눅4:14-15, 37; 5:15; 7:3, 17; 8:39b; 24:44-48). 여기서 밝혀지는 성령의 내러티브 기능은, 예수의 메시야적 사역이 하나님의 뜻/계획 속에서 완성되어질 수 있도록 예수께 능력을 베풀어 줌(empowering)으로써 그의 증인된 삶을 가이드 해주는(guiding) 역할과 장래에 펼쳐질 예수의 제자/증인들의 사역에도 동일한 기능이 주어질 것이 예견되어 있는 것이다.



4.3. 중심부(Central Point): 눅 19:45-행 2:13

이 중심 단락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이후로 벌어지는 일련의 6가지 주제적 사건들 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내러티브의 배경이 예루살렘(눅 22:10; 23:7, 28; 24:13, 18, 33, 52; 행 1:4, 12; 2:5), 특히 성전(눅 19:45, 47; 20:1; 21:37, 38; 24:53)을 중심으로 되어있으며, 펼쳐지는 주된 내용은 예수의 ‘자기 증거’(self-witness)와 그의 제자들에게 성령 부어주심을 약속하는 것과 그것의 성취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예수의 왕적이며, 고난 받는 종으로써, 그리고 선지자적 메시야의 이미지와 그 사역의 성취는 예수의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으로 그 절정에 달한다고 할 수 있다(cf. 행 2:22-36). 그리고 이 성취는 눅 4:18-19에 기초하여 생각할 때, 바로 예수께 임한 성령의 능력주심과 인도하심 가운데에 가능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cf. 행 10:38).
이 단락에서 성령에 대한 직접적 명칭은 6번(행 1:2, 5, 8, 16; 2:4a, 4b) 나오지만, 성령을 지칭하는 표현들(‘[내] 아버지의 약속’: 눅 24:49a; 행 1:4; ‘위로부터의 능력’: 눅 49:49b) 또한 주목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이 표현들은 예수 제자들의 장래 사역과 관련 지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예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그의 제자들에게 마지막 당부하는 말씀을 전하시는데, 이 때, 제자들이 장차 ‘예수의 증인들’(눅 24:48; 행 1:8) 로 묘사되면서, 예수께 임했던 동일한 ‘하나님의 영’이, 승천하여 존귀케 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에게도 임할 것을 약속하게 된다. 말하자면, 예수의 제자들도 성령의 능력과 인도하심을 힘입어서 그들의 ‘증인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는 점 에서 예수의 성령 받으심과 유사한 점이 지적되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받은 ‘하나님의 영’으로써의 성령은, 이제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역사한다고 하는 점에서 또한 구별 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이 예수의 제자들이 왜 ‘예수의 증인’으로 나타나고 있는 지를 설명해 준다고 볼 수 있으며, 이 같은 예수 증거 행위가 나아가서 하나님의 뜻 또는 계획(행 4:19; 10:34-43; 13:30-41; 26:19-23)임을 변증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자들’로 묘사되고 있다는 것이다.
주목할 사항은, 누가-행전의 내러티브 중심부(central point)에서 예수의 승천 기사가 이중으로 – 복음서의 끝 부분과 사도행전의 첫 부분에 반복 보도되면서, 그의 제자들의 장래 사역과 관련하여 성령이 집중적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다음에 펼쳐질 내러티브 상에서 성령의 기능이 예수의 제자들의 증인 사역과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나타날 것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것이다. 이제, 복음서에서 나타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관계’가 사도행전에 2장 이후로 ‘예수의 영으로써의 성령과 그의 증인들의 관계’로 묘사 되어지면서, 존귀케 되신 그리스도께서 계속적으로 그의 제자/증인들과 관계하고 있음을 예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증인의 길’(the way of witness)이 쉬지않고 성령의 능력주심(empowering)과 인도하심(guiding)으로 하나님의 뜻/계획 가운데서 진행되어 질 것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4.4. 결말을 향한 발전(Development towards the End): 행 2:14-28:15

본 단락은 더욱 뚜렷한 지리적 확장들(8:1; 9:31; 10:1-11:18, 19; 13; 16; 19:21; 28:16)과 관련지어 예수의 증인들(예를 들면, 베드로, 스데반, 바나바와 바울)과 유대 종교 지도자(4:1, 5-6; 5:17; 6:12)들 그리고 그들의 추종자들(6:9; 9:23; 13:45; 17:15; 21:27; 23:12-13)과의 갈등 속에서 내러티브의 플롯이 계속 진행된다. 여기에서 성령은 50번(행 2:17, 18, 33, 38; 4:8, 25, 31; 5:3, 9, 32; 6:3, 5, 10; 7:51, 55; 8:15, 17, 18, 19, 29, 39; 9:17, 31; 10:19, 38, 44, 45; 11:12, 15, 16, 24, 28; 13:2, 4, 9, 52; 15:8, 28; 16:6, 7; 19:2a, 2b, 6, 21; 20:22) 등장하고 있는데, 성령의 기능은 다음과 같은 3단계의 지리적 확장 속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1) 예루살렘에서의 증거(2:14-7:60), (2) 유대와 사마리아에서의 증거(8:1-11:18), 그리고 (3) 땅 끝까지 향하는 노정 속에 펼쳐지는 증거(11:19-28:15).

4.4.1. 예루살렘에서의 증거: 행 2:14-7:60
이 소 단락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성령의 세례/충만’을 받은 사도/제자들이 예수의 증인들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베드로는 대표적 성격으로 묘사되어지고 있다. 베드로의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행 2:1-4)에 대한 종말론적이며, 기독론적인 해석(행 2:14-36) 은 행 1:8의 문맥과 함께 앞으로 펼쳐질 내러티브의 플롯의 진행 속에서 ‘하나님, 예수, 성령, 그리고 예수의 제자들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핵심적 구절로 나타난다. 이 소 단락에서의 핵심 인물은 베드로와 스데반의 예수께 향한 증거인데, 이들의 증거는 모두 성령의 도우심 속에서 진행 되어짐을 알 수 있다.
즉, 성령은, 눅 24:46-49와 행 1:8에서 예견 되었듯이,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행 2:14-40; 4:5-31; 5:32), 그리고 스데반(행 6:5, 8-7:60)에게 능력을 부여함으로써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를 담대하게 증거하는데, 이것은 예언적 선포(prophetic words)와 함께 기적과 이사(signs and wonders: 행 2:19, 22, 43; 4:30; 5:12; 6:8; cf. 14:3; 15:12)를 동반하게 된다. 한편, 성령은 이제 새롭게 형성된 신앙의 공동체 내에서 믿는 자들의 삶(행 5:1-11)에도(말하자면, 신앙 공동체 밖의 ‘하나님의 백성’을 불러모으는 사역 뿐 아니라, 신앙 공동체 안에서의 삶 속에서도) 간여하시는 (신앙적, 윤리적) 삶의 영으로써 이해 되어질 수 있다.
성령은 이제 하나님(5:32; 11:17; 15:8) 뿐 아니라 존귀케 되신 예수(2:33; 9:17; 19:4-6; cf. 16:7)에 의해서도 역사되어지는 ‘영’으로써, 성령의 충만/세례를 받는 제자들은 ‘예수의 증인들’로 묘사 되어지는 것이다.

4.4.2. 유대와 사마리아에서의 증거: 행 8:1-11:18
예루살렘에서의 스데반의 성령 충만하고도 담대한 증거와 그의 죽음은, (예수께 향한) ‘증인의 길’을 예루살렘 밖으로, 즉 유대와 사마리아 쪽으로 확장 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여기서의 핵심적 인물들은 빌립(행 8:4—40; cf. 6:3, 5), 사울/바울(행 9:17-30), 그리고 베드로(행 10:1-11:18)로 나타나는데, 이 들 모두는 내러티브의 앞뒤 문맥 상에서 성령의 충만을 받은 자들로 분명히 묘사 되어있다. 즉, 성령은 계속해서 예수의 제자들에게 ‘증인’으로써의 능력을 베풀어주면서, 그 ‘증인의 길’을 직접 인도해 주는 ‘선교-감독’(mission-director)으로 나타나게 됨으로써(행 8:29; 10:19; 11:12), 이 사역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일 뿐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께서 성령을 통하여 계속적으로 역사하고 계심(눅 12:12와 21:15를 참조)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행전의 내러티브가 발전 되어지면서, 우리는 성령의 또 다른 중요 ‘내러티브 기능’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예수 증인들의 사역의 대상들과 관련 지으면서 나타난다. 즉, 사도행전 8장의 ‘사마리아인들’과 사도행전 10장의 ‘고넬료와 그의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이 ‘하나님의 참 백성’으로 영입 되는 데에 있어 ‘구원론적 확증’을 그 사역의 현장에 있던 증인들과 그 일행들(행 8:25; 10:44-48; 11:15-18)에게 (그리고 또한 독자들에게) 깨닫게 함으로써, 이 일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일임을 변증적으로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사도행전 5장에서 보았듯이, 성령은 또한 이미 구원의 반열에 속한 믿음의 공동체 회원들의 일상생활과 관련되어, 서로간에 격려하며 위로하는 기능을 통하여, 하나님의 교회가 더욱 왕성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행 9:31).

4.4.3. 땅 끝까지 향하는 노정 가운데서의 증거: 행 11:19-28:15
이렇게 계속되는 ‘증인의 길’의 여정 속에, ‘예루살렘 교회’ 중심의 선교가 ‘안디옥 교회’의 협력 속에서 그리고 때론 ‘안디옥 교회’의 주도(행 13:1-3; 14:26-28; 15:22, 35; 18:22)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펼쳐지게 된다. 이와 함께, 이방인 선교는, 베드로의 사역(행 10; cf. 15:7-11)을 초기화하여, 바나바와 사울/바울(행 11:25-26; 13:2-14:28; 15:12, 35)에게로 연결되며, 후에는 바울(행 16장 이후로)에게만 클로즈-업 되어 진행 되어지는 것이다.
즉, 성령은 계속하여 ‘선교-감독’(mission-director)으로써 묘사(행 13:2; 16:6-7) 되어지면서, 안디옥 교회로 하여금 바울과 바나바를 임명하여, 그리고 후에는 바울과 그의 일행을 인도하여 소아시아와 유럽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예수를 증거 하도록 돕고 있다. 이와 함께, 성령은 교회의 중요한 임무를 확정하는 결정자(the Holy Spirit as God’s decision-maker)로써 묘사 되어지며(행 15:8, 28), 바울(과 두로의 제자들 그리고 아가보) 에게 예루살렘에서 나타날 그의 장래의 고난을 계시해 주면서, 동시에 바울 개인으로 하여금, 장래의 고난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로 향하는 여정을 작정하도록 인도하고 있다.
행 19장에 나오는 에베소 제자들과의 관련 속에서, 성령은 행 8장과 10장과 마찬가지로, 이들이 요한의 제자 그룹들로써 마침내 ‘하나님의 참 백성’의 일원으로 영입 되어지는 차원에서 구원론적 확증이 변증적으로 나타나는 문맥임을 증거 하였다. 뿐만 아니라, 성령은, 이미 구원에 속한 믿음의 사람들에게 ‘선함’(goodness), ‘믿음’(faith), ‘기쁨’(joy) 등등의 은사를 유발시키는 원동력이며(행 11:24; 13:52; cf. 6:3, 5, 8, 10),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교회의 구성원들 가운데서 교회의 지도자를 세우는 감독자(supervisor)로 묘사 되어짐(행 20:28)을 지적하였다.

4.5. 열려져 있는 결말(Open-Ended Finale): 행 28:16-31

누가-행전 내러티브의 마지막 단락은, 바울이 마침내 로마에 도착(행 28:16)하여 (로마의 죄수보다는) 그리스도의 증인된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 지를 계속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내러티브 세계에서 볼 때, 바울의 ‘성공적’ 로마 입성은 성령에 충만한 시므온(눅 2:31-32)과 성령을 보내실 예수의 예언적 선언(눅 24:47-49; 행 1:8)의 성취이면서, 바울 자신이 부활하신 예수(행 9:15-16; 22:21; 23:11; 26:15-18)와 성령의 인도(행 19:21; 20:22-23)하심 가운데 위임 받은 사명의 성취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바울의 로마 입성은 하나님의 뜻/계획이, 여러 난관 속에서도, 결국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울의 로마에서의 사역은 그가 성령의 사람으로 활동하고 있음을 암시하는데, 이것은 마치 이사야가 그 당시 성령의 사람으로 선지자의 사명을 다한 것처럼(행 28:25-27; cf. 사 6:9-10), 바울 또한 성령의 영감 받은 선지자적 증인(prophetic witness)임을 보여주는 것이다(cf. 13:46-47; 18:6; 24:14-15; 26:20; 28:20).
누가-행전의 내러티브는 여러 면에서 이야기의 끝이 ‘열려져 있는 결말’ 으로써의 종결부를 갖고 있다. 이것은 내러티브에서 보여준 성령의 기능이 또한 ‘열려져’ 있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사도행전의 마지막 끝맺음(28:30-31)은, 독자들에게 ‘증인의 길’(the way of witness)이 계속 진행 중에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로마’가 증인 사역지의 마지막 ‘땅 끝’ 그 자체라기 보다는 ‘땅 끝의 한 부분’으로 간주 되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계획과 부활하신 예수의 선교 명령이 종결되지 못한 것이라면, 예수의 증인들과 그들의 공동체 생활에 나타나는 성령의 사역은 오늘도 멈출 수가 없는 ‘종말론적 진행’의 연속으로 이해 되어져야 할 것이다.

4.6. 누가-행전에서 나타나는 ‘성령의 기능’ 요약

줄거리가 말해주듯, 누가-행전의 내러티브 전체에 걸쳐서 나타나는 성령의 주된 기능은 주요 등장 인물들, 특히 이름이 밝혀지는 핵심 인물들로써, 세례 요한, 예수, 베드로, 스데반, 빌립, 바나바, 사울/바울에게 능력을 부여하고(empowering) 그들을 인도함으로써(guiding), 신임할 만한 하나님의 수행인들임과 동시에 예수의 증인들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나가게 하는 역할로 묘사되고 있다. 이 같은 성령의 기능과 관련된 성경의 근거 요절은 눅 4:18-19; 24:46-49; 행 1:8로 이해될 수 있다.
줄거리가 발전하면서, 사도행전 2장 이후로 성령은 또한 크게 2가지 기능을 더 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첫째는, 어떤 특정한 ‘그룹-인물들’(group-characters), 말하자면, 사마리아 성도들(행 8장), 고넬료와 그의 일가 친척들(행 10장), 그리고 에베소에 있던 세례 요한의 제자들(행 19장)과 관련하여 나타나는데, 여기서 성령은 이들이 하나님의 종말론적 백성들로 영입 되고 환영 되어짐으로써, 하나님께 구원 받았음을 확증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여기서의 근거 요절은 행 2:38-39로 볼 수 있다. 둘째는, 성령의 기능이, 예수의 증인들의 사역의 발전과 함께 그 사역의 열매가 맺혀지면서, 구원 받은 초대 교회 공동체 (일반) 구성원들의 삶과 관련되어 요약된 형식으로 묘사 되어지고 있다. 즉, 성령은 몇몇 개인들에게 영적 은사(예를 들면, ‘믿음’, ‘지혜’ ‘기쁨’)를 부여하며(행 6:3, 5; 11:24; 13:52),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행 9:31), 감독하며(행5:1-11), 교회의 지도자들을 세우며(행 19:28), 때로는 교회의 결정적 결단을 내리는 데에 관여하는 기능(행 15:28; 참조 13:1-3)을 하고 있다.
논문의 5장을 통해, 필자는 문학적 관점을 중심으로 누가-행전의 줄거리 속에서의 성령의 내러티브 기능들을, 등장하는 인물들의 (역할의) 차이와 관련 지어 밝힘과 동시에, ‘성령(세례를)을 받는다’라는 의미에 대한 기존 학자들의 상반되는 이해들이, 특히 J.D.G. Dunn(i.e. 바울이나 요한과 동일시되는 ‘구원론적 영’으로써의 누가의 성령론)과 R.P. Menzies(i.e. 바울과 요한과는 구별되는 ‘선교를 위한 능력의 영’으로써의 누가의 성령론)의 논쟁에 있어서, 그들 각각의 주장만큼 그렇게 획일적으로 일관성 있게 주장되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나타내 보인 셈이다.

V. 나오는 말

서구 권에 있어서 작금의 성서학은, 그 어느 때보다도 해석학적 방법론의 ‘사사 시대’와 같은 혼란 속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성서의) 텍스트를 가지고, 어떤 주제를 다룰 때에, 과연 나는 어떤 (해석학적) 관점을 가지고 그 본문과 주제를 해석할 것인가?”는 오늘 날의 성서학을 접근하는 모든 이들에게 큰 숙제와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이러한 ‘해석학적 홍수’ 속에서 ‘누가-행전’이라는 신약의 텍스트를 가지고 ‘성령’이라는 주제를 ‘역동적이고 성서적인 서사비평’이라는 관점으로 학위논문을 작성하였다. 20세기 신약학의 ‘그 방법론’(the method)이었던 ‘역사비평’에 의해 (결국) 조각나버린 ‘누가-행전’의 텍스트를 되찾아보기 위함이요, 그 텍스트 세계에서의 ‘성령’의 위치를/기능을 발견코자 함에 있었다.
전제 없는 신학이 불가능하듯, 해석학적 관점 없는 성서학은 생각할 수 없다. 여기에 필자와 다른 성서 학도들의 ‘인간적’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누가(어떤 개인과 공동체가) 어떤 전제 속에서, 누가 해석하(했)는가?’라는 물음은 과거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성서학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우선될 질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또한 오늘 날의 해석학적 홍수 속에서 신학을 하고 있는(‘doing theology’) 성서 해석자들(설교자들을 포함하여)의 ‘윤리적 책임’을 묻는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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