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자료실/종교 개혁 주일

신앙의 개혁을 이루라

에반젤(복음) 2020. 12. 27. 09:32

신앙의 개혁을 이루라 (대하 34:14-21)


구한말 서양의 신문명이 들어올 때 입니다. 어느 대감이 서양 선교사로부터 비누 한 상자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때가 잘 씻긴다고 신기해하며 문객들에게 비누를 자랑하고 하나씩 나누어주었습니다. 그의 문객 가운데 그리스도인으로 독립운동에 앞장섰으며 YMCA가 기틀을 잡는데 산파역할을 하셨던 월남 이상재(李商在) 선생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상재 선생이 비누를 받아들고 갑자기 칼로 비누를 깎아서 먹는 것입니다. 대감이 놀라며 말합니다. “여보게 이 사람아, 그건 때를 씻는 물건이지 먹는 물건이 아닐세” 그러자 이상재 선생은 이렇게 대답하였답니다. “알다마다요. 여러분은 이것으로 얼굴의 때만 씻지만 저는 뱃속의 때를 씻어 볼까 해서 먹었습니다.” 그때 대감과 문객들이 부끄러워 모두 낯을 붉혔다는 것입니다. 개혁을 외치지만 정작 개혁되는 것은 없고 개혁과 관련된 스트레스만 쌓여가는 시대입니다. 정치 개혁을 부르짖은 지 오래지만 정치권의 구태와 부패는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겉만 씻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개혁하겠다고 제도를 바꾸고 법을 새롭게 하고 관행을 고칩니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바뀐 제도, 법, 관행에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이유는 사람이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새로운 제도, 법, 관행을 또 다시 더럽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개혁은 사람을 바꾸는 작업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이 바뀌고, 삶의 태도가 바뀌고, 그 마음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면 제도, 법, 관행을 조금만 손질해도 놀라운 효과를 볼 수 있고, 좋은 세상을 열어갈 수 있습니다.

493년 전 비텐베르크 대학 교수였던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비텐베르크 성당에 로마 천주교의 잘못된 점, 95가지를 벽에 붙여 종교개혁을 시작하였던 것을 기념하는 주일로 우리는 지키고 있습니다. 당시 루터는 더 이상 천주교의 부패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교황 레오 10세가 베드로 대성당을 증축하던 중 재정적 어려움을 겪게 되자 죽은 조상들을 연옥의 고통에서 면해 준다면서 면죄부를 팔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태를 용납하지 않았던 루터는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혜’ 를 외치며 종교개혁을 과감하게 단행하였습니다.


역대하 34장은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을 다루는 내용입니다. 성전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율법책을 통해 유대 백성들의 신앙을 다시 세우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시아가 즉위했을 당시 유다는 종교적 타락으로 인해 우상이 들어와 있었고 성전은 훼파되어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우상을 섬기고 우상을 좇는 일에 더 몰두했습니다. 요시야는 종교개혁을 시작하였습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는 신앙의 회복을 이루었습니다. 철저한 신앙 개혁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첫째로 말씀의 재발견으로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John Wanamaker)는 대통령으로부터 장관이 되어 달라고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는 “주일을 지키며 교회학교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신다면 말씀을 따르겠노라”고 대답했습니다. 대통령의 승낙을 얻은 그는 기쁜 마음으로 체신장관직을 수행했다고 합니다. 그만한 신앙인격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그는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하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노인이 될 때까지 참으로 많은 물건들을 샀습니다. 돈으로 따지면 엄청난 금액입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어떤 물건보다 귀중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러면서 곁에 있는 성경을 들고 말을 계속합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아홉 살 때 1달러 50센트 주고 산 성경책입니다. 이것이 내가 일생 동안 산 것들 중에 가장 귀한 것입니다. 이 성경에 의해서 나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고, 덕분에 오늘까지 과실 없이 살 수 있었습니다.” 성경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 알았기 때문에 그는 50년 가까이 교회학교를 위하여 봉사했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에 있는 진리 하나가 인간의 모든 지혜보다 나은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본문 14절입니다. “무리가 여호와의 전에 연보한 돈을 꺼낼 때에 제사장 힐기야가 모세의 전한 여호와의 율법 책을 발견하고” 유대의 역대 왕들은 율법 책이 어디에 있었는지 조차 알지 못하였습니다. 제사장들도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알지 못하였다가 새삼스럽게 발견하고 요시아 왕에게 보고한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등한시하였다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사실입니다. 율법 책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였던 저들의 신앙은 당연히 침체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우상숭배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읽지 않고 들고만 다니는 우리도 그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의미있게 발견해야 합니다.

말씀 없이 진정한 믿음을 얻을 수 없고, 말씀 없이 영적 각성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지 않으면 아무리 은혜를 사모하고 영적 충만을 갈망하여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잃었던 성경책을 찾아 다시 펴들어야 합니다. 말씀으로 돌아가는 운동을 전개하여야 합니다. 루터가 외쳤던 대로 성경으로 돌아가 그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이 세대를 이기는 능력을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참된 개혁의 신앙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둘째로 자아의 재발견으로

페르시아의 한 나그네가 여행을 하며 사막을 지나는데 하늘로부터 음성을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네가 북쪽으로 2키로만 더 가면 오아시스를 만나게 될 것이다. 오아시스에 자갈돌이 많은데, 그 자갈들을 주머니에 될수록 많이 넣고 하룻밤을 자거라. 그러면 아침이 되었을 때 한 가지 기쁜 일이 있고, 한 가지 슬픈 일이 있으리라.” 정말로 가보았더니 오아시스가 있고 자갈돌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는 주머니에 무거운 돌을 넣고 자라니 도대체 아리송해서 큰 주머니는 비워두고 작은 주머니에다가 자갈돌 몇 개를 집어넣었습니다. 반신반의하면서 하룻밤을 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주머니를 뒤졌더니 어제 밤 그 자갈들이 금덩이가 되었더랍니다. “우와! 금을 얻었다” 며 기뻐하는 동시에 “그럴 줄 알았으면 주머니마다 채울 걸. 열 두주머니나 되는데 주머니에 가득 채울 걸. 내가 왜 작은 두 주머니에만 넣었던가?”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기쁨보다 슬픔이 더 많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마다 자기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무엇이 부족한지 근본적으로 돌아가서 생각해야만 된다는 교훈입니다.


본문 19절입니다. “왕이 율법의 말씀을 듣자 곧 자기 옷을 찢더라.” 여기서 옷을 찢는다는 의미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모습을 뜻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을 발견하고, 현실을 정확하게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요시아왕은 자신이 죄인인 것과 조상들의 죄를 발견하고, 고통의 원인도 죄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시 옷을 찢고 회개합니다. 우리도 요시아처럼 자신을 발견해야 합니다. 마음을 찢으며 회개해야 합니다. 요시아는 우상의 제단을 허물고 우상 숭배자들의 무덤을 파헤칠 때는 옷을 찢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게 될 때 비로소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옷을 찢으며 회개하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눈에는 다른 사람이 잘못되어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환경이 잘못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내가 잘못되어 있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도의 개혁보다 시급한 것이 자신의 개혁입니다. 신앙의 개혁은 자신에서부터 일어나야 합니다. 개혁하는 신앙은 속에 있는 허물을 발견하게 합니다. 누구의 옷을 찢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의 옷이 아니라 자신의 옷을 찢어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한 죄를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사회가 잘못된 것을 사회로 돌리지 말고, 나라가 잘못되는 이유를 나라로 돌리지 말고, 내가 기도하지 못하여 그렇게 되었노라고, 내가 바로 살지 못하여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옷을 찢으며 자아를 재발견하는 신앙의 개혁이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셋째로 사명의 재발견으로

종교개혁을 시도한 마틴 루터(Martin Luther)에게 교황은 이단 종교의 교서를 보냈습니다. 교서를 받아 든 루터는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불태워 버리고 말았습니다. 1521년 보름스 국회에 소환을 당했습니다. 찰스 5세는 루터에게 말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이냐! 아니라고 한마디만 하면 살려 주겠다. 용서해 주겠노라” 그러나 루터는 조금도 위축을 당하지 않습니다. “내 잘못이 성경에 의해서 증명되지 않는 한, 내 주장을 절대로 바꿀 수가 없습니다. 내 양심은 성경에 붙잡혀 있습니다. 나는 양심을 배반할 수 없습니다. 내가 여기에 있나이다. 주님, 나를 도와주옵소서.” 루터는 담대하게 고백을 하고 국회를 빠져 나왔습니다.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사명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개혁은 유럽에 영원의 불길처럼 타올랐습니다. 훗날 청교도들의 신앙의 기초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사명이 무엇인지 발견할 때 개혁신앙은 바르게 이루어집니다.


본문 33절입니다. “이와 같이 요시야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모든 땅에서 가증한 것을 다 제하여 버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으로 그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였으므로 요시야가 사는 날에 백성이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요시아는 말씀을 깨닫고 백성들이 하나님이 가증하게 여기는 모든 것들을 제하여 버리게 하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게 하였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사명을 발견한 것입니다.

사명(使命)이 무엇입니까? 꼭 그렇게 살아야 하는 일입니다. 요시야가 전에는 몰랐지만 말씀을 듣고 사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가지고 있던 권력으로 백성들을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사명을 감당할 때 기적이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리빙스턴은 선교하면서 죽음의 고비를 여러 번 만났는데 그 때 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리빙스턴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명이 끝나기 전에는 결코 죽지 않는다.” 사명을 깨달을 때 하나님은 그 사명을 다하게 하십니다. 아무쪼록 말씀 속에서 사명을 재발견하는 신앙이 되시기 바랍니다.

한 사람 요시야가 유대를 개혁했습니다. 한 사람 루터가 종교를 개혁했습니다. 한 사람 때문에 가정이 새로워지고, 직장이 새로워지고, 교회가 새로워지고, 나라가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부디 말씀에 삶을 비추어 개혁하는 자세가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다시 발견함으로 개혁의 동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말씀 앞에서 다른 사람의 옷을 찢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옷을 찢는 회개를 개혁의 태도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땅히 발견해야 할 사명을 발견함으로 개혁의 목적에 이르는 신앙이 되시기 바랍니다. 종교개혁은 기념만 해서는 안됩니다. 지금 여기에서 개혁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나태와 타성에 젖은 신앙의 모습을 과감하게 벗어버리고 개혁에 이르는 신앙을 소유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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