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인물 사전/에스겔

에스겔[Ezekiel]

에반젤(복음) 2019. 10. 8. 23:16




에스겔[Ezekiel]

 

 

(겔 37:1-14) “1.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2.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6.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7.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8.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10.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11.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12.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13.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14.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대왕은 3차에 걸쳐 예루살렘을 멸망시켰습니다. 첫 번째는, 주전 605년에 여호야김 왕을 굴복시키고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을 포함한 유대인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두 번째로, 8년 후 주전 597년에 여호야김과 여호야긴의 반란 때 여호야김 왕과 에스겔을 포함해 약 만 명의 포로들을 잡아왔습니다. 세 번째로, 11년 후 주전 586년 성을 포위해서 모든 유다를 완전히 파멸시켰습니다. 에스켙 1장 1절의 '제 30년'이 에스겔의 나이를 말한다면, 그가 바벨론으로 잡혀간 때 나이는 25세였을 것이며, 예언자로서 소명을 받았을 때는 30세였을 것입니다(1:2-3). 이것은 또 다니엘이 1차 포로로 잡혀갔을 때 에스겔이 17세였음을 의미하며, 결국 에스겔과 다니엘이 비슷한 나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당시 예레미야보다 약 20년 정도 젊었습니다. 다니엘의 이름은 에스겔의 예언에 3번 언급 되었습니다.(14:14,20,28:3). 2차 포로로 끌려간 에스겔은 그발 강가에 살았습니다.(1:1,3:15,23). 그는 20여 년 동안 활동했고(1:2,29:17), 결혼을 하였으나 아내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혼자가 되었으며,(24장) 백성들의 설교자로 활동하였고, 장로들은 가끔 그를 찾아와서 조언(助言)을 구하기도 하였습니다.(14:1-3절) 그는 예레미아가 멸망을 선포하는 그 시대에, 멸망의 이유와 미래의 구원을 전함으로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그는 이 현실은 죄의 결과라고, 전파하고 받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아울러 조기귀환의 거짓 희망을 갖지 말고 현실을 인정 하라는 것입니다. 이 지금 현실이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18:25절) 그러나 결국은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질 것이라고 외칩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진 사건들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기록합니다. 그러면 그의 메시지의 중요한 핵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회복입니다. 회복되는 것이야 말로 그들의 소원이요. 오늘 모든 사람들의 소망입니다. 그러면 회복 되어야 할 그것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1. 성전(聖殿)입니다.(겔40-43장)

 

에스겔서에서는 여려 번 예루살렘의 타락과 우상숭배 그리고 파괴와 심판을 보여줍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이고, 심장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곳은 농토가 없는 해발 800m의 고원지대입니다. 강이나 호수도 없는 곳입니다. 쳐들어오는 적을 막기 좋은 지역이지만, 바벨론의 공격을 받았고, 완전히 무너졌으며, 이방인들에게 짓밟혔습니다. 그러므로 요새로써의 예루살렘은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면 이 예루살렘의 심장이요, 눈동자와 같은 곳이 어딜까요. 그곳이 바로 성전입니다. 나중에 포로 된 이스라엘이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무너진 성전을 새로 짓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범죄와 타락은 나라가 망한 것이지만 가장 뼈아픈 것은 한마디로 성전이 파괴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70년 후 고향으로 돌아와서 가장 먼저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 그 핵심 되는 일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 입니다.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말할 때, 그 핵심은 바로 교회요, 예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바로 예배를 드리는가. 드리지 않는 가로 알 수 있습니다. 또 교회와 예배에 대한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이 신앙이 있는지, 없는지를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믿음은 정확하게 예배로 나타납니다. 이 예배의 상실이나, 중단은 곧 이스라엘 민족의 파멸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에스겔의 수많은 환상이나, 예언은 바로 잃어버린 예루살렘의 영광인 성전의 재건과 예배의 회복이라는 메시지를 보여 줍니다.(40-43장) 그러므로 에스겔의 핵심 사상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을 존재 가치가 없다.” 는 것입니다. 바로 그들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범죄학자 ‘조지켈링’이 발표한 범죄심리학 중에 깨어진 유리창(broken window)이론이 있습니다. 이것은 유리 한 장이 깨어졌는데 그것을 갈지 않고 그대로 두면 옆에 유리창이 또 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장 유리창이 깨어진 채로 있으면, 그 집은 시간이 흐르면 대부분의 유리창이 깨지게 된다는 것이며, 나중에는 집 이 흉가(凶家)가 된다는 이론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바로 그 첫 번째 창문입니다. 예배의 첫 창문이 깨어져 있으면, 다른 모든 것이 다 깨어진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상호 연관적입니다. 한 부분이 약화되면, 그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전체에 영향을 줍니다. 신앙의 모든 출발은 예배입니다. 예배의 약화는 다른 모든 부분의 약화를 낳습니다. 영적으로 약해집니다. 영적으로 약해지면, 봉사가 힘들어집니다. 봉사가 힘들어지면, 도피하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런 의식은 자신을 자연히 하나님과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교회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면, 세속의 유혹과 시험에 넘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서 기독교의 역사는 예배의 역사입니다. 여러분 실재로, 아무리 기독교를 박해하는 나라라 하더라도, 예배하지 않으면 안전합니다. 그런 사람은 신자인지 아닌지를 모릅니다. 그러나 한 두 사람이라도 모여서 예배를 하면 그때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중심에 솔로몬 성전이 있었고, 성전에는 예배드리는 자를 돕기 위해서 제사장과 레위사람이 항상 대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 발을 끊었습니다. 가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선지자들을 이것은 하나님을 배신하는 것이다. 어떻게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외면하고, 하나님이 만드신 나무나 돌, 혹은 은금으로 만들어서 절을 하고 예배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심판을 당한 이유입니다.

 

좋은 구두는 신어도 신은 줄 모르게 발이 편하고, 가고 싶은 데로 어디든지 잘 걸어 갈 수 있습니다. 내용이 좋은 책은 눈이나, 불빛이나 활자에는 정신을 안 쓰고 그 책에 빠져들게 만듭니다. 좋은 음식은 언제 다 먹었는지 모를 만큼 맛이 있습니다. 예배도 그렇습니다. 좌석이나 건물이나 인도하는 사람이나 옆에 있는 그 누구에게도 마음이 안 쓰이고, 오직 주님과 하나님께만 생각되는 예배입니다. 언제 끝났나 싶을 만큼, 내가 빠져드는 그런 것이 바로 진정한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목적이 분명해야 예배입니다. 찬송하고 기도하고 설교한다고 모두 다 예배가 아닙니다. 그 목적과 대상이 하나님입니다. 사람이나 다른 생각은 그 자리에 들어올 이유도 없고 들어올 틈이 없어야합니다. 우리의 예배는 나와 세상을 간곳이 없고 오직 구속한 주님만 보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찬송에서도, 기도에서도, 헌금을 하면서도, 설교를 들으면서도, 예수님을 생각하고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령과 진정의 예배입니다. 전화기 만지고, 한눈팔고, 지각하고, 졸고, 주보에 낙서하고, 아이와 놀다가 끝나고, 엉뚱한 생각을 하다가 끝나는 것을 예배를 드렸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정성이 없는 가인의 예배를 닮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예배를 드립니까, 진정한 예배 자가 여러분입니까. 대답하십시오, 그렇지 못하다면 당장 회개해야합니다. 예배를 점검하십시오. 성만찬을 매주하고, 설교를 듣고, 자발적인 헌금을 낸다고 초대교회의 예배입니까. 진정성이 없습니다. 은혜가 없고, 감동이 없고, 변화가 없습니다. 이것은 율법이요, 의무입니다, 형식입니다. 하나님은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 오지 말하고 하십니다.(사1:18) 성전 문을 걸어 잠그겠다고 하십니다.(말1:10)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자를 오늘도 찾으신다고 하십니다.(요4:23) 가인은 예배에서 실패함으로 인생실패를 가져 왔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2. 뼈와 해골의 회복입니다.(겔37:1-14)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골짜기에 가득한 뼈를 보여주면서 물었습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이 가득한 마른 뼈들이 누구를 가리켰습니까. 앗수르 사람들입니까. 바벨론 사람들을 가리켰습니까. 아닙니다. 이 죽은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입니다.(겔37:12).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이스라엘 족속을 마른 뼈요, 해골로 보셨습니다. 성경은 ‘거듭나지 못한 자, 형식적인 신자들’을 죽은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3:1). 그런데 에스겔 37장이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진리는, 하나님께서 마른 뼈요, 해골을 살리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 에스겔에게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라고 질문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에스겔도 꿈에도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죽었던 몸들이 살아난다는 것은 물론이고, 죽었던 영혼들이 살아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죽은 자들을 살리시기를 원하십니다. 아직 거듭나지 못한 사람, 형식적인 신자들을 살리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인자야, 춘천교회 나의 종 조목사야, 아무 아무개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아무 아무개 신자들이 능히 살겠느냐.” 라고 물으십니다. 부흥은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부흥은 죽은 자들과 죽어 가는 사람들이 다시 일어나는 것이요, 살아나는 것입니다. “너희가 살리라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겔37:6). 라고 선언 하십니다.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겔37:7).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에스겔의 대답은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겔37:3). 이것은 자기의 무지와 무능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는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하나님은 에스겔과 같이 자기의 무지와 무능을 고백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구원과 부흥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무엇으로 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두 가지를 분부하셨습니다. 첫째는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겔37:4). 둘째는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겔37:9). 하나님께서는 뼈와 해골을 살리시기 위해서 두 가지 무기를 사용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성령이십니다.

 

교육이 필요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교육을 통해서 사람을 살리시지는 않습니다. 의학도 필요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의학을 통해서 사람을 살리시지도 않습니다. 정치나 개혁도 필요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정치나 사회 개혁을 통해서 사람을 살리시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신을 통해서 사람들을 살리십니다.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죽은 사람들을 살리십니다. 에스겔은 이 말씀에 절대 순종합니다.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겔37:7).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때 마른 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에스겔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분부에 따라서 생기를 향하여 대언했습니다.“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겔37:10). 마른 뼈들과 해골들이 살아났습니다.

 

우리는 지금 모두 부흥을 사모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개인의 소원과 기다림에서 그치지 않고 한국 교회 전체의 소원이요, 기다림이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지금 제 3의 부흥을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들의 모습이 마른 뼈들의 모습과 비슷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모습이 죽은 자의 모습이요, 죽어가는 자의 모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에게는 지금 새로운 생명이 필요합니다. 새로 살아나는 역사가 필요합니다. 기도가 살아나야 하고, 회개가 살아나야 하고, 눈물이 살아나야 하고, 용서와 첫사랑이 살아나야 합니다. 겸손이 살아나야 하고, 거룩한 삶이 살아나야 합니다. 열심히 살아나고, 주님을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이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어떻게 하여야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부흥이 올 수가 있습니까.

 

여러분들에게 변화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 책임은 먼저 목사인 저 자신에게 있습니다. 말씀을 바로 대언하고, 생기에 대해서 대언하였다면, 모든 성도들은 변화와 부흥을 경험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으로 듣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거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향해서 "나사로야 나오라"고 말씀했을 때 나사로가 듣고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왔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엡 5:14).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신은 본래 죽은 자들에게 역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들을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망의 그늘 진 땅에 예수님께서 오셨다고 했습니다. 말씀이 들리고, 참 빛이 비치면 죽은 자들이 살아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대 교회를 향해서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3:1,2,6).라고 하십니다. 여러분들이 말씀을 들어야 하고,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기심과 고집과 습관을 가차 없이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거나, 알아도 지키지 아니하면 바리세인이 됩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부흥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삶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는 자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약1:22∼25). 순종이 우리를 살립니다. 아멘이 우리를 살립니다. 순종할 때 진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가르쳐 주는 데는 성공하였지만, 그 사람들을 하나님의 주권에 굴복시키는 것을 일러주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본 훼퍼는 믿음과 순종은 떨어질 수 없는 하나로 보았습니다. "믿는 자들만이 순종할 것이며 순종하는 자들만이 믿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불순종하는 자들은 믿지 않고 있는 자들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어려움과 곤란이 계속될 때,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을 때,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렵지만 순종하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순종과 믿음이 함께 가면 우리는 하나님의 군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은 뼈요, 해골에 불과 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에스겔의 메시지 핵심입니다.

 

3. 생수의 강입니다.(겔 47:1-12절)

 

에스겔서는 48장으로 되어 내용은 둘입니다. 1장에서 24장까지는 유다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고, 성전이 파괴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반부 25장에서 48장까지는 무너진 유다 백성을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신다는 내용입니다. 47:1-12절에 성소로부터 생명수가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천사가 자를 들고 동쪽으로 나아가면서 500미터를 측량한 다음 건너라는 것입니다. 이때 물은 겨우 발목에 닿습니다. 다시 500미터를 측량하고 건너라는 것입니다. 그때는 물이 무릎에까지 올랐습니다. 다시 500미터를 측량하고 물을 건너게 했을 때는 물이 허리까지 찼습니다. 다시 500미터를 측량하고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이번에는 헤엄을 쳐야만 건널 수 있는 깊은 강이 되었다. 라고 1-5절에 나옵니다.

 

이것은 비유요. 환상입니다. 신앙이라고 다 같지 않습니다. 신앙의 자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발목에 찰랑거리는 신앙은 마당만 발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무릎에 찬 신앙은 기도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허리까지 찬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요. 허리를 굽혀서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헤엄치는 강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깊은 강이요. 나를 완전히 물에 맡긴 사람입니다. 생명수의 강을 체험하는 성령의 사람이요, 은혜의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은 강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이집트의 나일 강, 중국의 황하 강, 인도의 갠지스 강, 영국의 땜즈 강, 독일의 라인 강, 파리의 세느 강, 경상도는 낙동강, 전라도는 영산강, 서울은 한강, 춘천은 소양강 사람의 몸의 절반 이상은 물입니다. 늙는 것은 물이 말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을 많이 마서라고 야단입니다. 오늘 성경 에스겔서 47장에 하나님의 성전에서 물이 흘러서, 많은 물고기가 살고, 많은 어부들이 나옵니다. 강변에 나무에는 달마다 열매 맺으며, 그 나무 잎은 약재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생수의 근원이라 하셨고(요4:14) 성도들에게도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7:38-39)고 하십니다. 생수가 흐르는 곳에는 “소성케 되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없는 사람들의 영은 사해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사해바다 같이 타락한 인간의 영혼에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지라.”(겔47:8)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자라난다는 것입니다. 사람구실 신자 구실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죽은 것을 살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죽은 자를 살리십니다. 예수님은 생명입니다. 기독교는 착하게 살아서 복 받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사람이 성령을 받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거부하는 사람들은 영원한 형벌을 받습니다. 이것을 지옥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받아들인 사람은 소성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살립니다. 그들은 죽어도 사는 사람이 됩니다.

 

결론

 

미국 병원에서 감염이 되어서 죽는 사람이 한해에 4만 8천명에 이르며, 치료비용도 무려 80억 달러 (약 9조원)에 이른다는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상당수가 수술 중 세균에 감염돼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국 의학 전문지 ‘내 과학 기록(Archives of International Medicine)'에 실렸으며 의학뉴스 메디컬뉴스 투데이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22일 보도했습니다. 병원에서 병을 얻어서 죽는다는 것입니다.

 

또 미국에서 일 년에 25만 명의 사람들이 의사의 실수로 숨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AFP통신이 보도했습니다. 이는 심장병과 암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수치입니다. 연구를 주도한 마카리 교수는 "사람들이 의료진과의 소통 실패·진단 오류·약물 과다 사용 등으로 죽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의학 수준이 낮은 개발도상국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의사의 실수와 감염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카리 교수는 "아프리카에서는 에이즈나 말라리아로 인한 사망자보다 의료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나라도 의사의 오진 율이 15-20%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50%가 오진이라는 보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사람을 고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이며. 더욱이 사람이 사람을 살린다는 것은 기적에 속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병원에 입원해 보세요. 온갖 검사를 하지만, 낫기는 어렵습니다. 처방은 어떻습니까. 열 오르면 해열제 주고, 아프면 진통제 놔주고, 기운 없다면 링거에 영양제를 넣어 줍니다. 잠을 못자면 수면제 줍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다 보면 살 사람은 다 살아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을 사람은 결국 죽는 것입니다. 종합병원에 영안실 없는데 없습니다. 그래서 연세대 병원에 “하나님이 고치신다.” 라고 써 붙여놓았습니다. 원래 그 뒤에 이 글이 있는데 그것은 안 쓴 것입니다. “하나님이 고치신다.” 라는 것입니다. 물론 상태가 분명한 외상이나, 전염병 같은 것은 병원 조치가 급선무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인병이나, 만성 고질병을 병원이 딱 고칩니까. 못 고칩니다. 기도를 통하던, 금식을 통하던, 약을 통하던, 의사를 통하던 결국 병은 하나님이 우리 몸에 주신 자연치유력을 통해서 고쳐주십니다. 그러므로 기도나, 금식, 혹은 의사나 병원을 하나님처럼 보다 더 믿은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세 가지가 회복되지 않으면 인간은 살았으나 죽은 자입니다. 첫째는 성전이요, 예배입니다. 예배를 잃어버린 사람은 죽은 자입니다. 둘째 뼈와 해골 같은 존재가 말씀과 성령으로 살아 나야합니다. 이것은 기적이지만 지금도 말씀을 듣고, 성령 받으면 해골이 하나님의 군대가 됩니다. 그리고 셋째는 생수의 강입니다. 이 생수의 강, 은혜의 강에 자신을 맡기지 않고 발목을 적시고 돌아다니는 신자. 무릎으로 기도는 하지만, 아직도 은혜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 허리 신앙은 섬기고, 겸손을 아는 사람이 되었지만, 한 걸음 더 나가야 합니다. 이제 은혜의 강으로 가야 합니다.

 

찬송 408장 1절-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저 큰 바다보다 깊다 너 곧 닻줄을 끌러 깊은 데로 저 한가운데 가보라.”

 

▲조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