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뮬러
(George Mṻller : 1805-1898)
“우리는 올바른 마음과 양심을 견지하고 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에 빠져들지 말아야 합니다.
양심에 걸리고 죄를 짓는 생활을 계속 한다면 시련이 올 대 주님을 신뢰할 수 없고
그분을 의지할 수 없게 됩니다.”
19세기 영국 사회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처참할 정도로 궁핍하였다. 특히 가난한 아이들은 쓰레기 더미에서 음식을 찾아다니다가 길거리에서 죽어갈 정도였다. 이러한 시대에 조지 뮬러는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처럼 당시 사회의 이기주의와 위선을 폭로하고 소외당한 아이들을 돌보며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살았다.
조지 뮬러는 1805년 9월 27일 독일의 크로펜슈타트에서 세무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뮬러는 집안 금고에 있는 아버지의 공금을 훔치기까지 한 불량 소년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밤에도 뮬러는 새벽 2시까지 카드놀이를 하며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탕자였다. 그러나 그는 1825년 할레대학을 다니던 중 한 토요 기도 집회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였다. 뮬러는 그 집회에서 예수님이 이전부터 자신을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지난 타락한 삶을 회개하였다. 회심 한 이후 뮬러는 브리스톨에 있는 크레익 형제로부터 자기의 공동 목회를 하지는 제안을 받고서 1832년 브리스톨로 이주하였다.
먼저 그는 브리스톨에서 교육과 선교의 목적을 갖고 ‘성경지식 연구원’을 1834년에 설립하였다. 이 연구원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었는데, 이 원칙을 통해서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의지하고 기도하는 그의 신실한 면을 볼 수 있다.
첫째, 우리는 아무리 부유하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가 불신자라면 결코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후원자가 되시므로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면 번성할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둘째, 우리는 결단코 빚을 지면서까지 사업을 확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은밀히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바라고, 필요한 것들을 주님께 맡기며 그분이 인도하시는 대로 나아갈 것이다.
셋째, 우리는 연구원의 성공 여부를 헌금된 액수나 배부된 성경 권수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 일에 얼마나 주님께서 축복 해 주셨는가로 판단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4:6)
이제 뮬러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이 간섭하시며 도와주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어 어떠한 일이든지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그는 가난한 고아들을 양육하며 교육을 시키려고 연구원 예산의 70%를 지출하면서 고아원 운영에 관심을 가졌다. 뮬러가 고아원 설립에 관심을 가진 것은 신앙인 들과 불신앙인들에게까지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뮬러는 스스로 고아원을 설립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믿음을 강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장사하는 데 하루에 14시간에서 16시간씩 바치는 어떤 형제를 방문한 적이 있다. 나는 그 형제의 건강이 염려되어 일하는 시간을 줄일 것을 권면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일을 덜하면 가족을 먹여 살릴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렇게 일을 많이 하는데도 겨우 먹고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에게 ”사랑하는 형제여, 형제의 가족을 부양하는 것은 당신의 일이 아니라 주님의 일입니다. 당신은 허겁지겁 몇 분간 기도한 후 일을 시작하고, 저녁에 일을 마치고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좀 읽으려고 하지만, 그때는 이미 몸과 마음이 피곤해서 성경을 읽다가 또는 무릎을 굻고 기도하다가 잠이 들어버리기 일수일 것입니다“ 라고 말하였다.
뮬러는 이 형제와 같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는 확신 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안타깝게 여기며 자신의 구제사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들에게 보이고자 했다. 뮬러는 1898년 93세로 사망하기까지 이 일에 정열을 바쳤다. 뮬러는 단지 고아들에게 자선을 베푼다는 동기에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살아 계셔서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그 일을 한 것이었다. 그에게 “이 모든 것을 믿음으로!”라는 원리는 그의 사역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었다. “어떻게 하면 나의 믿음을 담대하게 할 수 있습니까?”라는 어떤 사람의 질문에 뮬러는 다음과 같이 권면 하고 있다. “우리는 올바른 마음과 양심을 견지하고 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에 빠져들지 말아야 합니다. 양심에 걸리고 죄를 짓는 생활을 계속 한다면 시련이 올 대 주님을 신뢰할 수 없고 그분을 의지할 수 없게 됩니다.”
이처럼 뮬러는 신앙인 들이 철저히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삶을 살기를 원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며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잠16:3)
뮬러의 하나님에 대한 헌신은 다른 대화에서도 보여진다. 어느 날 “왜 외상으로 빵을 사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뮬러는 “나도 상당량의 물품을 외상으로 살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에 또 급하게 물품이 필요하게 될 때 나는 주님께 의지하기보다는 또다시 외상에 의존하게 될 것이 염려됩니다”라고 하며 항상 하나님께 먼저 의지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함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마치 백만 장자가 그의 은행 구좌에서 필요할 때마다 돈을 꺼내 쓴 것같이 필요에 맞게 물질을 사용할 수 있었다.
우리도 뮬러처럼 믿음의 삶을 살려고 한다면 단지 말로만 하나님께 모든 것은 맡긴다고 하지 말고 실제로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의지해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자 필요한 것을 먼저 그들에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삶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나는 뮬러가 현대 신앙인 들에게 다음의 질문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당신은 지금 왜 이 일을 하고 계십니까? 당신은 진정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당신의 삶을 간섭하신다고 확신하십니까? 당신은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고백하여 그들의 신앙이 확신에 이르도록 도움을 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의지하는 삶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뮬러의 사회 구제에 대한 문제를 접하면서 한국 교회가 사회의 구제에 무관심하거나 소극적인 것도 문제이거니와 교회의 구제가 자선 적인 차원에서 인간 박애주의적인 사업으로 치우치지 않기를 바란다. 요컨대 한국 교회와 신앙인 들은 뮬러의 교훈을 상기하여 하나님이 모든 일을 하신다는 진리에 기초하여 구제와 같은 주님의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되 이러한 일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며 주님의 살아 계심을 신앙인들과 불신자들에게 보여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권 태경 교수 / 총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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