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참석하는 10가지 이유
교회는 항상 열려있고....생활의 활력소가 되는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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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영광의 하나님께서 그곳에 계심을 믿음으로 교회에 간다.
만일 대통령이 입석하는 자리라면 사람들은 그곳에 참석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그곳에 계심을 예상한다면 나도 그곳에 가고자 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이르시기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고 하셨으며, 나는 진심으로 이 말씀을 믿고 있습니다. 물론 나는 그 분이 한 때 세상에 오셨을 때처럼 인간의 몸으로 옷을 입고 계시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근래에 인기를 끌었고 교인들도 상당수가 참여하였던 사회적 행사에 그분이 함께 하셨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행사에는 그 분이 분명 참석하시지 않았으리라 믿고 있기 때문에 나는 거에게 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Ⅱ. 주께서 내가 그렇게 할 것을 원하심으로 교회에 간다.
매 주일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였던 것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보편적 행위였습니다. 교회가 시작되었던 바로 그 때부터 제자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고 기록했습니다. 사도행전 20:7에서 우리는 주일의 첫날에 떡을 떼기 위해 모였던 초기 제자들의 모습을 배울 수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16:1-2에서 바울은 그들이 매 주일 첫날에 모일 때에 연보를 할 것을 권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를 위하여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 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이러한 성구에 기초하여 히브리서 10:25-26에서 언급되고 있는 엄한 경고의 말씀을 살펴보기로 하면 :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영감을 받아 본서를 기록한 기자는 주님을 예배하는 곳에 참석할 것을 경고하여 모든 죄의 결과는 심각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과 모이기를 꺼리는 자들은 이미 죄를 지었음을 알라고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Ⅲ. 그곳에서 축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교회에 간다.
내가 다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신앙의 증거와 마음의 격려, 영혼을 강하게 하는 등의 축복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어느 곳에 가서 어떤 일을 하여도 내 생명이 교회에 받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예배는 나의 생활을 겸손케하여 마음을 성스럽게 하고 영혼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만이 나를 동물의 자리에서 보다 높은 곳으로 올려 주실 수 있는 분이시며 내가 그에게 의지해야 함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내가 교회에 감으로써 받은 축복은 피상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알아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의 이름으로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면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분은 결코 그 약속을 어기지 않으십니다.
Ⅳ. 가장 좋은 사람들을 그곳에서 만날 수 있기에 교회에 간다.
나는 다른 곳에서는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들을 만날 수 없다고 얘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거의 어느 곳에서나 좋은 사람을 조금씩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항상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좋지 못한 사람이 교회에 다니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예외적인 것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부도덕하고 부정직하며, 이기적이고 육적 욕망에 사로 잡혀 있으며 교회에서 안식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간다 하더라도 찬송, 열렬한 기도, 감동적인 설교도 그들의 불행에서 그들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Ⅴ. 나를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에 교회에 간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나의 창조주께 예배드릴 때에 그것은 내가 한 주일간의 의무와 책임을 강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줍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관여되어 있는 모든 곳의 일부임을 기억하게 해 주기도 합니다. 우리는 좋은 사람들과만 교제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세상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을 좀더 조심하여 상대해야 하는 것이며 이러한 이유로 해서 가능한 한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최선의 사람들과 교제하기를 힘쓰는 한편 우리를 끌어내리게 될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향상되려는 노력을 통해서만 자신을 향상시킬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하며 만일 우리가 우리를 향상시킬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신 하나님께 의지한다면 그분에게까지 이를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인간 진화론을 믿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인간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로 인간 이상으로 진화할 수 없다는데 있기도 합니다. 만일 우리가 동물과 어떤 연관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결국 우리 자신을 끌어내리는 결과일 뿐 결코 향상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손을 잡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끝내는 우리를 영원한 영광의 자리로 올려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기만 하면 하나님께 의존하고 그 손을 잡기는 쉬운 일입니다. 그들도 역시 우리를 이끌어 줄 것이지만 세상의 사람들이 이것을 방해하고 있는데 그들이 의도적으로는 그렇지 않을지 몰라도 결국은 그렇게 하고 있는 셈입니다.
Ⅵ.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도 영적인 면만큼의 이익을 얻을 수 있으므로 교회에 간다.
물려 다니는 것이 싫어서 교회에 참석치 않는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생각할 시간을 갖기 위해 혼자"있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소위 "영적인 명상"을 즐기는데 이는 그들이 자기 중심적으로 되어 있으므로 타인과 함께 생활하고 협조하지 못한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그들은 비 사교적이며 타인들의 모임에 스스로 적응하지 못합니다. 만일 그러한 마음을 가진 채로 하늘을 가게 된다고 하면 그들은 하늘의 생활의 기쁨조차도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역시 혼자 떨어져서 자신에 관한 것만을 생각하고자 할 것이니까요. 교회에 나가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스스로의 아집을 벗어버리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일들을 잊을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타인과의 교제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면 이는 정신적인 불건강의 징후입니다. 타인이 내게 냉정히 군다고 여기거나 나 아닌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만 대화하려고 한다고 지레 짐작을 하지 맙시다. 만약 그렇다면 본인에게 결점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때로는 씁쓸한 표정을 짓거나 비웃는 경우도 있겠고 때로는 공연히 지나치게 간섭을 하는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 관심도 끌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할 것입니다. 사실 아무의 관심도 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집에 틀어 박혀서 투정이나 부리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남과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을 배움으로써 타인들이 우리와 대화하고 싶어지게 만들어야만 합니다. 교회에 가기 싫어하는 태도가 생기거나 교인들과 접촉하는 것을 피하려는 생각이 늘어난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그 결과로써 우리 주변의 모든 친구들까지 멀리하게 되고 결국은 직업도 잃고 육신의 건강을 해치며 영혼조차 잃어버리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경우에 따라서는 전도자의 말 중의 일부를 부정할 수도 있고 모든 교인이 다 좋게 보이지만은 않을 때도 있을 수 있으며 다른 일들도 비판할 만한 것이 있는지도 모릅니다만 우리가 노력하기만 하면 많은 좋은 것을 교회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교인들 모두는 우리들만큼 선해지고 사귀기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Ⅶ. 좋은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교회에 간다.
나는 아내가, "내 남편을 모시고 갈 수 없어서 나도 교회에 안 갑니다."라고 말하게 되기를 원하지 않으며 또한 아이들이 "아빠가 교회에 가시지 않으므로 나도 못 가요."라고 말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데 사실 아이들은 "아빠"가 하시는 일은 모두 옳다고 믿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애들이 계속 그렇게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것도 인간의 욕심입니다만 그러려면 항상 옳은 일만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나는 교회에 가는 일은 좋은 일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나는 실천해 보이지 않는 한 그들을 인도할 수 없음을 알고 있으며 아이들이 교회를 사랑하고 관심이 항상 교회에 머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 애들이 정기적으로 교회에 나간다면 선량한 시민, 좋은 이웃으로 커 갈 것이며 성격도 좋아질 것이기 때문이지요. 또한 나는 내 가족에게만 아니라 친구들과 이웃들에게도 모범이 되고 싶은 것이니 그럼으로 인해서 그들이 내가 교회에 가는 것을 비평하지 않게 될 것이고 그들도 교회 참석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인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명한 사실은 내가 교회에 가지 않을 때보다는 다닐 때에 사람들이나를 존경할 수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Ⅷ. 교회가 나를 필요로 하기에 교회에 간다.
만일 모든 사람이 집에만 있으려고 한다면 교회의 모임 장소는 폐쇄되고 말 것이며 결국은 교회가 모이기를 중지하게 되고 이 나라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의 나라가 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 수준도 낮아질 것이며 세계 최고의 문학인 성서도 의미를 잃고 찬송은 잊혀지고 세계적인 명화들도 잿더미에 들어가 버릴 것입니다. 우리의 법이나 헌법은 폐기되고 자유는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니 교회가 문을 닫게 되면 이러한 불행들이 생길 것인즉 나는 그러한 사태를 원하지 않지만 만일 교회에 참석하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그렇게 되고 말 것입니다.
Ⅸ. 가야 할 필요를 느끼므로 교회에 간다.
교회는 나 같은 개인이 없어도 존재할 수 있으나 나는 교회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아, 나는 교회 없이 잠깐은 "존재"할 수 있을지라도 진정으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고상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 교회의 정화 능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 본성의 거친면을 깍아내고 보다 원만하고 자비로우며 품위 있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생활이 이 세상을 위해 좀더 필요해 질 수 있도록 할 뿐 아니라 내 자신이 하늘의 사회에 맞을 수 있도록 준비해 줄 것입니다.
Ⅹ. 주님을 만나서 직접 "잘하였다"는 말씀을 주심을 듣고자 교회에 간다.
주께서 거짓을 말씀하실 리가 없으므로 만일 내가 잘 하지 못하였다면 그 분은 "잘 하였다"고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만일 내가 교회에 가지 않는다면 그의 명령을 따르지 못할 것이며 그가 보시기에 "좋을"수가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언제 내 생애의 끝이 올지 모르므로 언제가 내 교회 참석의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알지 못하니 만일 그 마지막 기회에 하나님의 백성을 만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뵈올 기회를 놓친다면 하늘에서의 첫 번째 모임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것이 될까 걱정하는 것입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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