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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이렇게 기도하라 5 (마 6:9-13)

에반젤(복음) 2020. 10. 3. 20:22

이렇게 기도하라 5 (마 6:9-13)


계속하여 산상보훈에 나타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본받지 말고 이렇게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럼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이 시간에는 주기도문 중에서 죄 사함을 위한 기도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12절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8. 예수님은 죄 사함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죄 사함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죄는 빚과 같습니다. 그래서 정리해야 할 문제입니다. 사람이 빚지고는 살 수 없지요. 무엇보다 죄의 빚은 철저히 정리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이 기도는 원문으로 살펴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채무자를 이미 용서하여 준 것처럼 우리의 채무를 이제 용서하여 주옵소서.”입니다. 이 기도는 더 이상 죄악의 채무에 시달리지 않고 죄책감을 훌훌 떨쳐 버리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미국 뉴욕시 근교에 있는 한 공동묘지에 특이한 비석이 하나가 서 있다고 합니다. 다른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고 쓰여 있는 비문이 특이합니다. 한 단어만 쓰여 있습니다. 이름도 태어난 날도 부름 받은 날도 아니고 딱 한 단어만 적혀 있을 뿐입니다. "Forgiven" 곧 "죄 사함을 얻었다."는 한 마디입니다. 모든 죄를 용서함 받고 평안하게 잠들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서 그렇게 적게 한 것이었습니다.


죄 사함이 없이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 사함 없이는 영원한 안식도 평안도 임재의 기쁨과 즐거움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죄 사함은 예수 믿는 자라면 다 받은 것입니다. 롬8:1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랬습니다. 나를 위해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공로를 믿는 자는 아무도 정죄할 수 없는 죄 사함 받은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왜 죄 사함을 기도하라고 하셨을까요?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았는데 또 사함을 위한 기도가 필요합니까? 죄 사함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면 그 영역은 무엇이고 왜 그렇게 해야 할까요?

 

그 영역은 자범죄이며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위해서입니다.


그 사실을 요한복음 13장에 잘 나타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실 때 베드로가 못 마땅해서 발 씻기를 거부할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베드로야,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여기 상관이란 관계를 뜻합니다. 이 상관은 다른 단절이 아니라 교제의 단절입니다. 마치 아브라함 경우처럼 잠시 믿음 없어 하갈을 첩으로 맞았다가 13년이나 침묵하셨습니다. 교제의 단절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베드로가 깜짝 놀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만일 그러하시다면 내 발뿐만 아니고 내 손과 내 머리도 함께 씻겨 주옵소서" 그때 예수님은 “이미 목욕을 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여 졌느니라” 하셨습니다. 여기 발은 우리가 매일의 삶 속에서 더럽혀진 심령상태나 주님을 슬프게 해드린 여러 자범죄들입니다. 주님을 슬프게 하면 교제가 막힙니다. 기도가 막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롭다 선포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법적인 죄 사함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아버지와 자녀의 친밀한 관계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목욕이 우리가 믿을 때 받는 영원한 죄 사함이라면 발 씻음은 매일 매일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완악한 마음과 행위를 가리킵니다. 잘못을 회개할 때 그 겸손함을 보시고 아름다운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맘을 서운하게 했다면 잘못을 고백해야 합니다. 성도의 죄는 부자지간을 파괴할 만큼의 죄는 아니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슬프게 하고 아프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잡혀 있던 방탕한 아들을 빚을 갚고 빼내왔지만 집에 와서 감사할 줄 모르고 자꾸만 아버지에게 대항하면 아버지께서 기뻐할까요? 법적으로 영원한 내 자식임은 틀림이 없지만 관계는 나빠집니다. 그래서 잘못할 때는 징계도 하십니다.


그런데 구원파는 법적인 속죄만 강조하고 삶속에서 하나님을 서운하게 하는 일에는 상관이 없다 합니다. 그래서 죄를 고백하는 사람은 죄 사함도 모르는 자이고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잘못된 주장입니다. 우리가 보혈의 공로로 양심의 자유를 가지고 살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렸다면 고백되어야 합니다. 악한 마음을 버리고 죄송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상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 사함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죄 사함의 기도는 최소한 양심적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12절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이 기도 속에는 최소한 양심적인 기도여야 함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님의 크고 영원한 속죄를 받았음에도 남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아버지의 용서를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살다보면 용서해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때마다 하나님의 큰 용서를 받았으니 우리도 용서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천인공노할 양심불량입니다. 그래서 죄 사함에는 하나의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라는 단서입니다.


그런데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잘 해주는 이웃만 사랑했습니다. 원수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축복하지도 않았습니다. 마5:43∼44에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기에게 해를 끼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자기만 "용서해 주세요. 용서해 주세요."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민망한 일입니까? 눈 뜨고 볼 수 없는 일이죠?


그런데 주님은 그들을 통해서 우리들의 모습을 해부하고 계십니다. 우리들의 모습이 그 모습은 아닌지, 어쩌면 그렇게도 정확하게 지적하시는지 예수님의 지적이 놀랍습니다. 산상보훈을 강해하면서 번번이 우리 주님의 날카로운 지적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수들을 긍휼히 여기고 축복하지는 않는 체 내 죄만 용서해 달라고 얼마나 기도했습니까?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같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거져 주시는 영원한 속죄를 받고서도 감사하지 못하고 남에게 베풀지 못한다면 그것은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기도를 아버지께서 받으실 리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18장을 보면 임금에게 큰 빚을 진 신하가 나옵니다. 금 일만 달란트면 상상할 수 없는 금액입니다. 임금은 신하가 빌기에 불쌍히 보고 빚 전체를 탕감해 줍니다. 그런데 그 신하는 그런 큰 은혜 받고서도 자기에게 빚진 동관을 용납하지 못하고 갚겠다는 동관을 잡아 가둘 때 그걸 본 사람들이 심히 민망하여 임금에게 고할 새 임금이 그 듣고 노하여 신하에게 다시 빚을 갚으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말씀을 하시면서 주님은 마18:35에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죄 사함의 기도를 드리면서도 하나님의 평안과 긍휼과 회복과 기쁨을 얻지 못했다면 오늘 말씀 가지고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욥이 벗들을 위해 빌매 여호와께서 돌아보시고 건강을 회복하시고 전보다 갑절이나 복 주셨습니다. 죄를 자백했는데도 이 회복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내가 사랑하지 못한 사람은 없는가 하는 반성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사랑하고 용서한 만큼 사랑과 용서를 누린다는 사실입니다. 최소한 주님 보시기에 민망하지는 않게는 믿어야 합니다. 사랑을 베풀면서 사랑을 구하고 용서를 베풀면서 용서를 구할 때 아버지의 사랑의 영이 흐르고 용서의 영이 우리에게 흐르는 것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혹시라도 우리의 기도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기도였다면 고치시기 바랍니다. 남을 용서하지 못하면서 내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크신 용서를 우리도 함께 실천하여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의 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