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직 신학 >>>/- 구 원 론

구원론 1 (계 5:1)

에반젤(복음) 2020. 2. 22. 15:33



구원론 1 (계 5:1)


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이 시간에는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알아보는 구원론 첫 시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구속사역을 이루셨는데 그 구원을 우리 각인에게 적용해 주시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 고통의 십자가 위에서 몸 찢고 피 흘려주셨어도 우리에게 적용이 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계시록 5장의 해석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계시록 5장은 그 뒤로부터 나오는 일곱 인과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 그리고 계속하여 전개 되는 계시록의 성격을 규명하는 중요한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은 복음의 힌트들로 가득한 책입니다. 제가 부대를 뒤집어쓰고 있는데 여기저기에 구멍을 뚫어놓았다고 칩시다. 개인적으로 저를 모를지라도 사람이 들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고, 저는 아는 사람들은 정확히 부대 안의 사람이 저라는 것을 밝혀낼 것입니다.


이처럼 아무리 살펴보아도 계시록 5장에는 복음의 냄새만이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속의 어린 양이라든지, 메시아를 지칭하는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라든지, 하나님 백성들을 비롯 피조물들의 구원의 찬양, 그리고 일곱 영이라 하여 온전케 하시는 성령을 강조한 표현 등 결코 달리 해석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큰일이신 구원의 놀라운 진리를 담고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구원의 역사는 어떻게 각인에게 적용 될까요?


1. 성부 하나님의 주권대로 적용하십니다.


1절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여기 보좌에 앉으신 이는 성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보좌에 앉으셨음은 구속 사역의 중심이 성부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십니다. 즉 모든 죄인 구원의 역사가 아버지의 주권 하에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없는 한 아무 것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이 보좌에 앉으신 좋으신 하나님의 생각은 이러하십니다. 딤전2:4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에도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구원에 대해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예정을 부정할 수 없어요. 예정론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것인데요. 로마서 9장에서 바울이 예정을 말할 때도 사람들이 불합리하다 할까 그렇게 생각했던 걸 보면 오늘날 우리가 예정을 합리적으로 꼭 설명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정은 누구도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영원한 예정 속에서 부르셔서 믿는다고 말할 수 있고요.


또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예정하셨고, 또 하나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고전1:21) 예정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또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을 때 구원해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놀라운 부흥의 현장에는 수많은 헌신적인 기도가 있었습니다. 예정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이지만 숙명이나 방관에 빠지지 않고 우리가 할 일은 다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앞에 간구하고 엎드리는 것입니다. 바로 그 곳에 성부 하나님의 주권대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2. 예수가 구주라는 복음을 통해 적용하십니다.


다시 1절에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성부 하나님의 손인데 왼손도 아니고 왜 오른손일까요? 성부의 오른손은 강하신 팔입니다. 그런데 오른손에 대한 성경적인 관념은 그냥 강한 팔이 아니라 자기 백서에게 구원을 펴시는 구원의 능력과 힘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성부의 오른손이 어떻게 나타납니까? 사53:1에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했는데 여기 하나님의 팔이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52:10에도 “그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모든 땅 끝까지도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오른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룩하신 구원의 복음을 암시합니다. 이 예수 복음이 우리의 구원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구원의 복음을 전해 듣고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성경의 대 진리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주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롬10:8-9에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요3:16-17에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셨고, 행16:31에도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3.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구원을 적용하십니다.


1절에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했습니다. 이 두루마리 책은 겔2:10과 같은 모양으로 양피지 같은 두루마리의 안팎에 써진 글로서 둘둘 말아진 책입니다. 양피지 두루마기는 당시로서는 일반인은 소유하기 어려운 귀한 책입니다.


그런데 안팎에 기록했음은 그 모양 자체가 암시하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기록된 내용은 하나님께서 실행하실 내용인데 안팎으로 기록함은 본질적으로는 같지만 구원을 개인에게 집행하시는 데 있어서 양상은 다른 즉 성령의 내적 사역과 외적 사역을 가리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이중적 사역인데 그것은 교회와 그 지체와 각종 은사 등을 통해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과 아울러 우리 안에 성령께서 내주하사 우리의 생명이 되심입니다. 교회에서 각종 은사를 받은 하나님의 종들이 여러분을 가르치고 기도하거나 여러분이 여러 상황을 통해서 훈련받는 것은 구원의 확신과 그 완전함에 거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인을 구원받게 하시고 온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그리고 일곱 인으로 봉했는데 일곱이란 완전수로서 완전한 적격자가 아니면 아무도 열 수 없음을 뜻합니다. 그 인은 오직 예수님만이 뗄 수 있는데 그럼 과연 이 땅에 구속을 집행하실 성령을 보내실 자격자가 누구이겠습니까?


그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래서 요14:26에 예수님께서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이시라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보내시지만 예수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이십니다. 이 성령이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구원을 우리에게 적용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없이 구원을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성령 없이 구원을 체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구원의 공로를 다 이루어놓으셨습니다. 이 구원의 부름은 성부 하나님의 주권대로 이루어지며, 각인에게 구원의 적용은 예수의 복음을 믿음으로 이루어지고, 생명 안에서 자라고 온전케 하심은 성령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죄인들이 구원에 이르기를 기도하고, 예수님이 구주이심을 전도하고 가르치고, 성령으로 구원을 온전히 누리도록 주의 일에 함께 동참하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조직 신학 >>> > - 구 원 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존 구원론의 관점  (0) 2020.02.22
구원론과 성령론과의 관계  (0) 2020.02.22
바울의 구원론  (0) 2020.02.22
개혁주의 구원론  (0) 2020.02.22
조직신학 구원론  (0) 2020.02.22